역사학자 인간은 ‘일하는 개체’와 ‘시키는 개체’로 분리된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에서 침팬지나 고릴라보다는 개미와 비슷하다.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으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 소수의 사람이 있었던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만들면서도 늘 결핍 속에서 살아야 했다. 땀 한 방울 안 흘리고도 깨끗한 집에서 좋은 옷 입고 맛난 음식 먹으며 사는 것은 모든 이의 소원이었으나,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내세에서나 기약할 수 있는 꿈이었다. 신분제 해체와 기계문명 건설이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내세에 있던 꿈이 현세로 이동했다.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노예’에게 떠넘기면 모든 인간이 시키기만 하는 특권적 존재로 격상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시키는 자’의 특권을 확실히 누리기 위해서는 제자리에 앉아서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으로 기계를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1893년 미국인 테슬라는 무선 주파수 자극으로 가이슬러관에 불을 밝히는 데에 성공했다. 1906년에는 스페인의 레오나르도 토레스 이 케베도가 전자기파를 이용해 항구에 정박한 배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자라면 자고 깨라면 깰 줄만 아는 노예는 쓸모가 없었다. 1956년, 미국 제니스사의 엔지니어 유진 폴리와 로버트 애들러는 플래시매틱이라는 이름의 무선 티브이(TV) 조작 장치를 공동 개발했다. 이로써 인간이 직접 만지지 않고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첫 번째 기계가 출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에 금성사가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선풍기를 처음 출시했고, 1971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티브이 리모컨을 개발하여 동남전기 티브이에 적용했다. 이후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기계는 계속 늘어났다. 그런데 이 물건이 과연 모든 인간을 ‘시키는 자’의 지위로 올려놓을 수 있을까? 오늘날 리모컨은 가정 내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물건이다. 게다가 남의 손목에 전자팔찌를 채워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다수 인간을 ‘기계노예’와 같은 지위로 끌어내리려는 힘이 더 강력한 듯하다.
칼럼 |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리모컨 |
역사학자 인간은 ‘일하는 개체’와 ‘시키는 개체’로 분리된 공동체를 이룬다는 점에서 침팬지나 고릴라보다는 개미와 비슷하다.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으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는 소수의 사람이 있었던 반면, 대다수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 이상을 만들면서도 늘 결핍 속에서 살아야 했다. 땀 한 방울 안 흘리고도 깨끗한 집에서 좋은 옷 입고 맛난 음식 먹으며 사는 것은 모든 이의 소원이었으나,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내세에서나 기약할 수 있는 꿈이었다. 신분제 해체와 기계문명 건설이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내세에 있던 꿈이 현세로 이동했다. 인간이 하던 일을 ‘기계노예’에게 떠넘기면 모든 인간이 시키기만 하는 특권적 존재로 격상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확산되었다. ‘시키는 자’의 특권을 확실히 누리기 위해서는 제자리에 앉아서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으로 기계를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1893년 미국인 테슬라는 무선 주파수 자극으로 가이슬러관에 불을 밝히는 데에 성공했다. 1906년에는 스페인의 레오나르도 토레스 이 케베도가 전자기파를 이용해 항구에 정박한 배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자라면 자고 깨라면 깰 줄만 아는 노예는 쓸모가 없었다. 1956년, 미국 제니스사의 엔지니어 유진 폴리와 로버트 애들러는 플래시매틱이라는 이름의 무선 티브이(TV) 조작 장치를 공동 개발했다. 이로써 인간이 직접 만지지 않고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첫 번째 기계가 출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9년에 금성사가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선풍기를 처음 출시했고, 1971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티브이 리모컨을 개발하여 동남전기 티브이에 적용했다. 이후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기계는 계속 늘어났다. 그런데 이 물건이 과연 모든 인간을 ‘시키는 자’의 지위로 올려놓을 수 있을까? 오늘날 리모컨은 가정 내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물건이다. 게다가 남의 손목에 전자팔찌를 채워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다수 인간을 ‘기계노예’와 같은 지위로 끌어내리려는 힘이 더 강력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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