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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8 17:58 수정 : 2017.10.18 19:44

전우용
역사학자

실력, 능력, 매력, 경쟁력, 경제력, 학력, 사고력, 창의력, 추진력, 통솔력, 면역력… 오늘날 힘(력(力))은 온갖 단어 뒤에 붙으며,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어떤 것이다. 힘이 뒤에 붙는 단어들은 합격, 결혼, 승진, 치유 등 인생 중대사들의 성패를 결정하는 다신교 사회의 신이다. 그런데 힘이 본래 좋은 것일까?

힘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을 ‘힘 든다’고 하고, 몸 밖으로 나가는 것을 ‘힘 난다’고 한다. 옛사람들에게 힘은, 들일 때는 괴롭고 내보낼 때는 즐거운 염치없는 불청객 같은 존재였다.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서 내보내려면 먼저 들여야 한다는 것은 알았으나, 힘쓰는 일을 숭상하지 않았기에 일부러 힘을 들이려 하지는 않았다. <논어>에는 공자가 힘에 관한 것은 아예 말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동에서 서양인들의 테니스 경기를 관람하던 고종이 “귀빈들이 저렇게 힘든 일을 아랫것들 시키지 않고 어찌 직접 하는고?”라고 하며 혀를 찼다는 일화는 사실 여부를 떠나 ‘힘’에 대한 저 시대의 일반적 생각을 알려준다.

20세기 벽두에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을 강령으로 삼는 사회진화론이 유입되면서 힘에 대한 오래된 관념이 무너졌다. 잠깐 사이에 힘이 들었다 났다 하는 운동경기도 힘에 대한 감각을 바꿨다. 오랫동안 많은 힘을 내기 위해서는 평소에 많은 힘을 들여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이 땅에 운동기구 수입상이 생긴 건 1909년이었고,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 사장 여운형의 상반신 누드 사진이 <현대철봉운동법>이라는 책에 실리기도 했다. 학교나 체육관 등에나 있던 운동기구들은 1990년대부터 급증하여 오늘날에는 가정, 공원, 산자락과 강변 등 어디에나 있다.

부처는 뭇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고행했으나 현대인들은 제 한 몸을 위해 운동기구 위에서 고행한다. 현대인은 제 몸 안에 갖가지 힘을 채워 넣기 위해 일부러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다. 운동기구는 인간에게 ‘힘신’이 깃들도록 하는 현대의 샤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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