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영화나 보러 갈까요?” 시쳇말로 ‘썸타던’ 젊은 남녀 중 한 사람이 관계를 한 걸음 더 진전시키기로 작정했을 때 흔히 하는 말이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극장은 첫번째 데이트 장소다. 영화에 친밀감을 높여주는 묘용이라도 있는 것일까? 한 장소에서 수백명이 같은 영화를 함께 보지만 서로 가까워지는 현상은 커플 단위로만 나타난다. 이들의 주된 목적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극장이 제공하는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같이 극장에나 갈까요?”가 본심을 더 솔직하게 표현하는 말일 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데 모여 같은 스펙터클에 열광하는 장소인 극장은 고대 도시의 필수 시설이었다. 고대의 극장은 다양한 직업으로 나뉜 도시민들을 공동체로 묶는 장소였다. 고대 로마인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콜로세움이었다. 동아시아에는 동시에 수만명을 수용하는 대극장은 없었으나 소규모 실내 극장은 곳곳에 있었다. 그러나 유교적 엄숙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된 탓인지, 조선시대에는 서울에조차 실내 극장이 없었다. 1902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행사로 기획된 ‘고종황제 어극 40년 망육순 칭경기념 예식’을 앞두고 서울 야주개(현 당주동)에 콜로세움을 본뜬 500석짜리 원형 극장이 개관했다. 당대에는 희대(戱臺) 또는 소춘대(笑春臺)라 불렸지만, 이 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던 국립 연예단의 이름을 따 협률사 극장이라고도 한다. 극장은 1908년 민간에 넘어가 원각사로 개칭되었으며, 같은 무렵 광무대, 단성사, 연흥사, 장안사 등 500~1000석 규모의 극장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1910년에는 일본인 가네하라 긴조가 현 을지로에 활동사진 상설 상영관으로 경성고등연예관을 설립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제공한 스펙터클에 침묵하며 집중하는 군중, 다중 속에 있으면서도 고립된 개인들, 한 공간에 밀집해 있으면서도 시선을 교환하지 않는 사람들, 공감하나 교감하지 않는 사람들. 극장은 사람들에게 개인과 대중이 관계 맺는 현대적 방법을 가르쳐온 특별한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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