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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3 18:20 수정 : 2017.12.13 19:11

전우용
역사학자

“근래 혹독한 독감이 전국에 만연하여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서양, 아프리카, 동인도, 말레이반도 등 전세계에 이 병이 유행하여 어떤 나라에서는 매일 수백명 혹은 천명까지 죽는다. 이 독감을 일으키는 것을 인플루엔자라고 한다.” 5천만명 가까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1918년 11월, 가톨릭교단에서 발행하던 잡지 <경향>에 수록된 기사 일부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플루엔자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 무렵부터인데, 당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느 정도 크기의 물질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류라는 종적(種的) 자의식은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신, 귀신, 괴물 등 ‘실재하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크기는 인간과 비슷하거나 훨씬 컸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기보다 큰 존재들에게는 두려움을 느꼈으나 작은 존재들은 겁내지 않았으며, 훨씬 작은 존재들은 하찮게 여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존재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의 인식 안에서 가장 작은 것은 먼지, 티끌, 벼룩의 간 정도였다.

작은 것을 크게 보는 확대경은 아주 먼 옛날에 만들어졌으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는 17세기에야 발명되었다. 근대의 많은 신발명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물건 역시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차례 개량을 거쳤는데, 현재 사용되는 것과 같은 구조의 현미경을 개발한 공은 네덜란드인 레이우엔훅(Antoni van Leeuwenhoek, 1632~1723)에게 돌리는 것이 보통이다.

이 도구를 견미경이나 관미경이 아니라 ‘미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이라는 뜻의 현미경으로 번역한 것은 무척 적절했다. 이 물건으로 인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아 없는 것으로 취급됐던 미물들이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정받았다. 이 물건으로 인해 현대인은, 보이지 않는 위대한 존재보다 보이지 않는 미물들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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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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