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크리스마스와 새해 축하인사를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메신저로 보내고 받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됐다. 이모티콘을 첨부하기도 하고 글자의 행렬을 조정하여 특별한 무늬를 만들기도 하지만, 하나만 만들어 일괄 송신하면 그만이니 그에 담은 마음의 무게가 조금 가벼운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편함에 담기는 종이 연하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는 우표가 붙어 있어야 할 자리에 ‘요금별납’이라는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다. 보나 마나 내용은 천편일률의 미사여구이고 서명조차 인쇄된 것들이다. 이런 메시지나 우편물을 받을 때면, 손글씨로 카드에 인사말을 쓰고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적은 후 우표와 크리스마스실을 정성껏 붙이던 옛날의 아날로그 감성이 떠오르곤 한다. 1904년, 덴마크에서 처음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됐다. 다중에게 우표 값 정도의 소액을 기부받아 폐결핵 퇴치 자금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식민지 조선도 폐결핵의 땅이었다. 1936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내 폐결핵 환자 수를 40만명, 매년 이 병으로 죽는 사망자 수를 4만여명으로 추산했다. 1928년, 선교사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나 그 역시 선교사가 된 셔우드 홀이 황해도 해주에 결핵환자 요양원을 세웠다. 1932년 겨울, 그는 이 요양원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다. 그가 처음 생각한 도안은 거북선이었다. 조선 민족 최대의 적인 결핵을 퇴치하는 데에는 이것을 상징물로 쓰는 게 최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연히 총독부의 허가를 얻지 못해 부득이 남대문으로 바꿨다. 이후 크리스마스실은 세모(歲暮)를 알리는 상징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현재 크리스마스실은 대한결핵협회에서 발행하는데, 종이 연하장이 급감한 만큼 보기도 쉽지 않다. 10년쯤 전 이메일 시대에 맞춰 전자 크리스마스실이 발행됐으나 별 성과를 보지 못하고 중단됐다. 지금은 자동응답전화 한 통화로 언제든 기부할 수 있는 시대지만, 사회적 온기와 함께 새해 인사를 나눌 방안을 좀 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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