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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신문

등록 2018-01-03 18:05수정 2018-01-03 19:37

전우용
역사학자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대로, 옛날에는 거의 모든 정보가 소문, 즉 사람들의 입에서 귀로 전달되는 말로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말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는 과정에서 윤색, 과장되기 마련이어서 발생지와 도달지 사이의 거리만큼 사실과 차이가 있었다. 소문 말고 달리 믿을만한 정보를 입수할 방도는 문자로 된 서신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신은 전달받은 사람에게만 사실에 가까운 정보일 뿐, 그의 입을 통해 퍼지는 순간부터 다시 소문이 되었다. 새로 보거나 들은 바를 많은 사람에게, 큰 시차 없이, 균일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순식간에 다량의 문서를 찍어낼 수 있는 인쇄술, 빠른 교통수단과 우편제도 등 여러 기술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들 기술이 개발된 뒤에야, 새로운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글로 옮기고 한꺼번에 인쇄하여 대량으로 전달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져 유포되는 인쇄물을 ‘새로운 소문을 기록한 것’이라는 뜻에서 ‘신문’이라고 했다. 1882년 겨울, 수신사로 일본에 간 박영효는 일본 내 문명개화론의 선도자이자 신문 발행인이던 후쿠자와 유키치를 만나 조선 개화의 방도를 물었다.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신문을 발행해서 인민을 계몽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답했다. 귀국 직후 박영효는 이 사실을 고종에게 복명했고, 이듬해 봄 조선 정부는 후쿠자와의 제자인 이노우에 가쿠고로 등 일본인 7명을 초빙해 신문 발간 준비에 착수했다. 1883년 7월15일, 통리아문 산하에 박문국이 설치되었고 이듬해 10월1일 <한성순보>가 탄생하여 10일마다 한 번씩 발행되었다. 1896년 4월7일에는 <독립신문>이 창간되어 매일 새 소식을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날을 ‘신문의 날’로 기념한다. 신문은 이름과는 달리 소문과 사실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세웠으며, 국가를 동시적 정보 공동체로 만들었다. 신문은 시대에 맞게 사는 사람과 뒤처진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했다. 현대인은 매일 새 소문을 접하고 그를 생각과 대화의 소재로 삼는 사람들이다. 신문이 현대를 만든 대표적 물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미래를 여는 데에도 중추적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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