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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올림픽 금메달

등록 2018-02-21 18:39수정 2018-02-21 19:41

전우용
역사학자

1976년 8월1일,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로는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신문은 호외를 발행했고, 티브이(TV)는 양정모 선수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종일 연거푸 방송했다. 그에게는 대한민국의 국위(國威)를 선양(宣揚)한 영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올림픽 금메달은 선수의 영광을 넘어 ‘나라의 위세’를 표상하는 물건이었다. 한국민 모두 자기가 금메달을 따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원형의 금속판에 문양을 새겨 넣어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기념할 수 있게 한 메달은 고대 금속화폐와 장신구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15세기 유럽에서 오늘날 사용되는 것과 같은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메달을 주는 관행도 18세기 유럽에서 생겨났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1896년 제1회 올림픽에서 이 관행을 채용하여 우승자에게 은메달을 수여했다. 제2회 때에는 메달 대신 우승컵이나 트로피를 주었다가 1904년 제3회 올림픽에서부터 각 종목 1, 2, 3위에게 각각 금, 은, 동메달을 수여했다. 이후 이는 스포츠 경기 시상의 일반 관행이 되어 오늘날에는 월드컵 경기에서조차도 우승컵과 금메달을 함께 수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땅에서 스포츠 경기 우승자에게 메달을 수여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중반부터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회중시계, 가죽구두 등으로 시상(施賞)했다. 메달 시상은 스포츠 경기보다 글짓기 대회, 바둑대회 등이 앞선다. 금메달이 스포츠 경기 우승과 사실상 동의어가 된 것은 1920년대 중반 이후다.

1974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국가 과제로 설정한 정부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국위를 선양한 스포츠 선수에게 평생 연금을 지급하는 ‘체육 종신 연금’ 제도를 제정했다. 이후 올림픽 금메달은 무공훈장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되었으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자기 목숨을 던져 타인의 생명을 구한 의인보다 더 훌륭한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현대 한국인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국위’를 선양하는 최고의 영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이런 믿음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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