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한자어 혈관, 혈통, 혈연이 우리말로는 모두 핏줄이다. 옛사람들은 피를 생명의 원천이며 부계(父系) 가문을 지속시키는 질긴 끈이자, 수많은 사람을 연결하여 동포(同胞)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매개물질로 생각했다. 특히 인간의 피는 신성(神性)이 깃든 물질로서, 그 함유량에 따라 신분이 나뉘는 것으로 보았다. 사람의 피라고 해서 다 같은 피가 아니었다. 왕공귀족의 피는 신성하나 노예의 피는 천했다. 사람들은 이 물질에 신과 교감하는 인간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피를 관장하는 장기는 혈장(血臟)이 아니라 영혼과 마음의 장기인 심장(心臟)이다. 간접적으로라도 귀한 피와 천한 피를 섞는 것은 불경한 짓이었다. 과다출혈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타인의 피를 주입해서 치료해 보려는 시도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성공 사례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서 곧바로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의 피 사이에는 인종, 신분, 종교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물질적인 차이만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20세기 벽두의 일이었다. 1901년 오스트리아 태생 생물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는 사람의 혈구에 서로 다른 항원과 항체가 있어, 다른 것끼리 섞으면 응집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ABO의 세 가지 혈액형으로 분류했다. 그 얼마 뒤 AB형이 추가되었으며, RH식 혈액형 분류법은 1940년에야 만들어졌다. 일제 강점 전후에는 우리나라에도 혈액형 분류법이 알려졌을 것으로 추정되나, 6·25 전쟁 직전까지도 수혈이 필요한 경우 큰 주사기로 혈액 제공자의 피를 뽑아 환자에게 직접 주사하는 식이어서 치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는 자기 혈액형이 뭔지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혈액형 분류법은 오히려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신앙과 결합했다. 1920년대에는 혈액형 분포로 보아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야만적’이라는 담론이 널리 유포되었다. 근래에는 혈액형이 성격을 좌우한다는 얘기가 상식처럼 통용된다. 현대인은 자기 혈액형을 아는 사람이며, 가족끼리도 혈액형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서 혈연의식과 동포애가 옅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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