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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4 18:23 수정 : 2018.04.04 19:32

전우용
역사학자

“옛날에 옛날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옛날 어린이들은 저녁상 치우고 나면 할머니 할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다. 귀신, 도깨비, 호랑이, 까치, 구렁이, 나무꾼, 선녀 등 세상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존재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입에서 튀어나와 어린이들의 머릿속을 채웠다. 키득거리다가 놀라다가 하며 살포시 잠이 들면, 꿈속에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화가 언제 발생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린이들은 글자를 배우기도 전에, 아니 글자를 배우지 않고도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오래된 세계관과 가치관을 물려받았다. 착하게 살기, 은혜 갚기, 효도하기, 거짓말 않기, 게으름 피우지 않기,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않기 등. 어릴 때 옛날이야기를 통해 배운 ‘선한 가치’들은 평생의 삶을 지탱하는 도덕적 규범이어야 했으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잊어버렸다. 이렇게 선량함과 순수함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우리말로는 ‘닳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어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동화’(童話)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을사늑약 이후인 1907년께부터의 일이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1915년 ‘아이차지’라는 난을 두어 동화를 실었다. 이 무렵부터 안데르센, 그림 형제 등의 동화가 국내에 소개되었으며, 1923년에는 방정환이 최초의 어린이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여 어린이용 읽을거리들을 실었다. 이듬해에는 조선총독부가 이 땅 최초의 동화집인 <조선동화집>을 출간했고, 이어 한국인들도 전래동화집 등을 발간했다. 1925년은 을미사변 30주년, 을사늑약 20주년이었으나 한국 어린이들에겐 안데르센 서거 50주년으로 알려졌다.

문자 해독 능력을 지닌 어린이가 늘어남에 따라 동화책은 어른이 읽어주는 것에서 어린이가 직접 읽는 것으로 바뀌었다. 백마 탄 왕자,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 동화 속의 몇몇 주인공들은 전세계 어린이들이 같은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인류가 함께 지향하는 보편 가치를 만드는 데에 동화책만큼 큰 구실을 한 물건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지구촌 한 가족은 여전히 먼 꿈이다. 사람이 닳기 때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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