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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5 18:18 수정 : 2018.04.25 19:13

전우용
역사학자

“호~텡, 호~텡” 일제 강점기 경성역(서울역)에서 북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차장이 외치던 소리다. 호텡은 봉천(奉天)의 일본어 발음으로 중국 랴오닝성 성도인 선양(瀋陽)의 당시 이름이다. 이 열차를 타면 곧바로 선양까지 가거나 중간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갈아탈 수 있었다.

인류는 인지 발달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저 길의 끝은 어디일까?”라고 자문하는 습성을 키워 왔다. 이 의문이 인간의 자의식을 확장시켰고, 먼 곳에 떨어져 사는 사람들 사이의 교류를 매개했으며, 문명 발달을 촉진했다.

1945년 8월11일, 미국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그 남쪽은 미군이,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소련의 동의를 얻었다. 이에 따라 38선은 ‘사실상의 국경선’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 선은 지도에 그려진 선일 뿐 ‘넘지 못할 선’이 아니었다.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 즉시 양측 군대에 전투중지 명령이 하달되었고, 그 시점의 전선이 군사분계선이 되었다. 휴전 직후부터 남북 양측이 모두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그 안쪽에 지뢰를 매설하기 시작했다. 38선은 지도 위의 선이었으나, 휴전선은 지표 위의 선이었다.

휴전선 철조망은 한반도 남북 모두를 이상한 땅으로 만들었다. 남쪽은 대륙과 끊어진 반도, 섬보다 못한 땅이 되었다. 북쪽은 바다가 양쪽으로 단절되어 동해의 배와 황해의 배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땅이 되었다.

한반도 남쪽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던 모든 길은 휴전선 앞에서 끊겼다. 한반도 남쪽 사람들의 ‘상상 속 여정’도 휴전선을 넘을 수 없었다. 세계 어느 곳이든 비행기로 갈 수 있는 시대지만, 비행기 여행은 변화하는 육상 풍경을 소거한 차원 이동과 비슷해서 공간 감각을 확장해 주지 못한다. 휴전선 철조망은 현대 한국인들에게 기차 침대칸 이용을 사치로 여기게 만든 물건이다. 그래서 종전은, 한국인들에게 인간 보편의 공간 감각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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