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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05 18:37 수정 : 2018.12.06 09:28

전우용
역사학자

1483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나사의 원리를 이용해 수직으로 상승할 수 있는 비행 물체를 그렸다. 하지만 그의 상상이 실현되는 데에는 4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19세기 말 엔진의 시대가 열린 뒤에야, 많은 과학자가 프로펠러의 힘으로 수직 상승해 비행하는 기계 제작에 몰두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1920년대 중반에야 수직으로 상승하여 수평으로 이동하는 초보적 유인 헬리콥터가 개발되었다.

신발명품은 대개 군사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실용화한다. 헬리콥터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6년, 독일군에 의해 실용적 이동 수단이 되었다. 미군이 헬리콥터를 본격 생산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였다.

1950년 여름, 미 제3공군 구조편대의 H-13 헬리콥터들이 육군을 지원하여 부상병 수송을 담당했다. 1951년 말부터는 미 육군과 해군도 별도의 구조 헬리콥터 부대를 운용했다. 헬리콥터는 이착륙에 걸리는 시간이 짧았으며, 산꼭대기에도 착륙할 수 있었다. 거친 도로 위에서 흔들릴 이유도 없었다. 헬리콥터는 부상병들을 부상 후 짧으면 20분 만에, 길어도 2시간 안에 이동외과병원(MASH)으로 후송했다. 헬리콥터 덕에 미군의 경우 전체 부상병의 88%가 부상 후 2시간 안에 수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헬리콥터의 약점도 만만치 않았다. 한꺼번에 많은 환자를 수송하면서 공중 치료도 할 수 있는 대형 H-19 헬리콥터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봄이었다. 그 전의 헬리콥터는 방어가 불가능하고 부상병을 태울 좌석도 없었다. 부상병은 들것에 묶인 채 헬리콥터 다리에 매달려 산바람과 프로펠러 바람을 함께 맞아야 했다. 다른 운송 수단에 비해 비용도 훨씬 많이 들었다. 효율 대비 비용 문제에 대해 미군 당국자는 “헬리콥터 이용은 국가가 자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장점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오늘날 헬리콥터는 곳곳에서 사람을 구하는 신의 사자(使者)로 활약한다. 소형 무인 헬리콥터에서 찍은 영상은 현대인에게 ‘신의 눈’을 선사했다. 하지만 사람이 신의 높이까지 올라가도, 그 마음까지 신을 닮지는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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