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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2 17:59 수정 : 2019.01.03 09:34

전우용
역사학자

영어 퍼블릭(public)은 한자어 공(公)에, 프라이빗(private)은 한자어 사(私)에 대응하지만, 어떤 번역어든 문명권 사이의 세계관 차이까지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영어 퍼블릭과 프라이빗은 지상의 공간을 구획하는 개념에 가깝다. 집 담장 안쪽의 가족끼리만 이용하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프라이빗,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그 바깥 공간과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이 퍼블릭이다. 유럽인들에게 세계는 퍼블릭과 프라이빗이 합쳐진 공간이다. 퍼블릭과 프라이빗은 상대되는 개념이지만, 서로 배척하는 개념은 아니다. 하버마스는 퍼블릭을 ‘여론이 형성되는 사회적 생활의 공간’으로 정의했다.

반면 한자 문화권에서 공(公)은 지상에 구현된 하늘의 도리를 뜻하며, 사(私)는 그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멸사봉공(滅私奉公)이나 선공후사(先公後私) 같은 규범이 생겼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이나 사심(私心) 등의 단어들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한국인들이 토지 공(公)개념과 사유재산제가 배치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전통적 공개념과 현대적 공개념 사이의 괴리 때문일 터이다.

유럽 도시들에서 공(公)이 표현되는 대표 공간이 광장이다. 유럽 역사 도시들의 옛 도심에는 대개 광장이 있다. 신전이나 교회, 정청(政廳)과 법원으로 둘러싸인 광장을 고대 로마에서는 포럼(Forum)이라고 했다. 광장은 당대 권력이 위세를 드러내는 공간이었고, 같은 이유로 민중이 권력을 전복할 때 점거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반면 고대와 중세의 동아시아 도시에는 광장이 없었다. 이 지역 도시들에서는 궁궐 앞에 길게 뻗은 대로가 지상에 펼쳐진 하늘의 도리를 표현하는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서도 ‘광장’이라는 말은 유럽식 공간 개념이 도입된 20세기 이후에야 쓰이기 시작했다. 훈련원 광장, 경성역 광장, 시청 앞 광장 등이 차례로 생겼고, 경복궁 전로(前路)라 불리던 대로도 최근에 ‘광화문 광장’으로 바뀌었다. 1960년의 4·19, 1987년의 6월 민주화운동, 2016~2017년 겨울의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중적 민주화운동은 모두 광장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도, 광장에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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