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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09 18:05 수정 : 2019.01.09 19:25

전우용
역사학자

몇해 전, 모 박물관의 구입 대상 유물 심사장에서 오래된 의료기구 세트를 구경했다. 매도 신청자는 “대한제국 시기 미국인 의료 선교사가 서울에서 사용한 것”이라는 설명서를 첨부했다. 그러나 설명서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손잡이가 플라스틱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 의료기구의 손잡이는 상아(象牙)나 나무로만 만들었다.

상아는 옛날부터 단단한 물건을 만드는 데 쓰는 최고급 재료였다. 코끼리가 살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2품 이상 고관의 호패는 상아로 만들었다. 조선 전기에는 상아를 명나라에 조공품으로 보냈고, 명나라한테서 회사품으로 받기도 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아는 세계는 중국, 일본, 류큐, 동남아시아, 인도 등 상아 무역으로 연결된 나라들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구공도 상아로 만들었다. 당구는 애초 극소수 귀족들이나 즐기던 스포츠였으나 자본주의 세계시장이 형성된 19세기 중엽부터는 사업가들의 스포츠로 그 저변이 확대되었다. 1910년께 한국인으로 당구를 가장 잘 친 사람은 전 대한제국 황제 순종이었다고 한다. 당구 열풍은 코끼리 사냥 열풍으로 이어졌고, 상아 값도 다락같이 올랐다. 원료를 구할 수 없게 된 미국 뉴욕의 당구공 제조 협회는 상아를 대체할 물질을 발명하는 사람에게 1만달러를 주겠다는 광고를 냈다. 이 광고를 본 존 웨슬리 하이엇이 1868년 셀룰로이드를 발명했다. 1909년에는 미국 화학자 베이클랜드가 송진과 비슷한 합성수지를 만들어 베이클라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열이나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는 합성수지들이 속속 발명되자 이것들을 통칭하여 플라스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양 내기 알맞다는 뜻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를 변형시킨 말이다.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동철(銅鐵)의 대용품으로 플라스틱 제품 생산을 독려했다. 한반도에 플라스틱 제품들이 들어온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한국인들이 플라스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57년부터였다. 플라스틱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한세기 만에 지구 전역을 뒤덮었다. 인간, 특히 현대인은 자연과 자신을 해치는 물질을 만드는 특이한 동물이다. 플라스틱은 그중 가장 많이 만들어진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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