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왕이나 귀족들의 사적인 ‘수집품과 보물 컬렉션’을 보관하는 시설은 고대에도 있었으나, ‘진귀한 물건들’을 대중에게 전시하는 근대적 박물관이 처음 생긴 것은 17세기 말이다. 1682년 골동품 수집가이자 박물학자였던 일라이어스 애슈몰이 평생 모은 물건들을 옥스퍼드대학에 기증했고, 옥스퍼드대학은 이들을 한곳에 모아 대중에게 공개했다.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Museum)이라는 단어는 이 뒤에 생겼는데, 1706년에 간행된 신문물 용어 사전 <뉴 월드 오브 워즈>(New World of Words)는 이를 “교육받은 사람들을 위한 연구 공간이나 도서관, 또는 대학이나 공공장소”라고 정의했다. 즉 최초의 박물관은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 ‘물품’들을 모아 놓고 특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여 전시하는 시설이었다. 이후 17~18세기에 걸쳐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등 ‘국가적 규모’의 박물관들이 이른바 ‘문명국’들에서 속속 문을 열었는데, 이들 박물관은 개관하자마자 ‘국민 만들기’를 위한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국가적 규모의 박물관들은 뒤이어 전개된 제국주의 팽창의 ‘증거’들을 수집, 전시하여 자국민의 자부심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박물관 소장 유물들은 학문적 관심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자국 역사의 ‘눈부신 발전상’과 이국 문화의 ‘열등성’을 함께 증거하는 실물이 되었다. 반면 식민지에 건립된 박물관은 정반대의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박물관은 1909년 11월에 개관한 대한제국 제실(帝室) 박물관인데, 소장할 유물들을 수집하는 일도 유물들을 분류하고 배치하는 일도, 다 일본인들이 맡았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국의 박물관을 한국 문화의 ‘후진성’을 전시하는 시설로 만듦으로써, 식민 통치를 위한 이데올로기 생산, 유포 기관으로 삼았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원래의 시간적, 장소적 맥락에서 이탈되어 큐레이터의 통제 아래 놓인 물건이다. 현대인은 큐레이터가 보라는 물건들만, 큐레이터가 정한 순서대로 보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유물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이 많다. 보여주는 대로 본 것이 진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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