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상기자(上記者)는 품행이 방정(方正)하고 성적이 우수하여 타(他)에 모범이 되므로 자(玆)에 이 ○○을 수여함.” 여기에서 ○○에 들어가야 할 글자는 상장일까, 표창장일까? 잘한 자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자에게 벌을 주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은 예로부터 권력이 사람을 통제하는 기본 수법이었다. 벌(罰)은 말로 욕하거나 칼로 베는 등의 행위를 뜻하며, 상(賞)은 ‘조개 패(貝)’ 자가 들어간 글자들이 대개 그렇듯이 재화를 의미한다. 옛날에는 상을 재물이나 벼슬로 주었을 뿐, 따로 상장을 주지는 않았다. 생활에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종이 쪼가리 한장을 받기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고대나 중세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유교 경전의 하나인 <중용>에는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간다”는 문구가 있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몸과 의식’을 근대인의 특징으로 포착했다. 하지만 이 자발성을 모든 개인의 의식에 심어 두는 데에도 전근대적 신상필벌의 원칙이 필요했다. 근대 이후에는 권력이 사회 각 영역으로 분산되는 만큼 상벌의 주체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특히 학교와 군대 등 대규모 집단을 통솔하는 사람들은 구성원들에게 수시로 상과 벌을 내려야 했다. 상과 벌의 대상도 특정한 행위뿐 아니라, 태도 일반으로까지 확장됐다. 상이 흔해짐에 따라 그 의미도 ‘자기가 소속된 집단이 요구하는 규율을 모범적으로 내면화한 삶’에 누적된 표식으로 변해갔다. 상장이 본상이 되고 상품은 부상(副賞)이 되었다. 아예 상품 없이 상장만 주는 경우도 생겼는데,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를 따로 표창장이라고도 했다. ‘표시가 나게 드러내는 문서’라는 뜻이다. 물론 상장과 표창장의 경계는 모호하다. 몇점 이상, 또는 몇등 이상 등 ‘정량적 지표’가 있으면 상장, 수여자의 ‘정성적 판단’에만 따르면 표창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표창장이라는 물건이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다. 이 종이 쪼가리는 처음부터 주는 자의 권위를 표상하는 물건이었다. 표창장을 발명한 덕에, 각 집단의 우두머리들은 돈 들이지 않고 상 주는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고작 표창장 한장 때문에 온 사회가 시끄러운 지금의 이 현상은, 후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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