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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1 16:52 수정 : 2019.10.02 09:56

전우용
역사학자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데려다 노비로 삼으며, 속죄하고자 하는 자는 1인당 50만전(錢)을 내야 한다.” 고조선의 팔조법금 중 하나다. 남의 물건을 훔친 자를 데려다 노비로 삼거나 속전(贖錢)으로 50만전을 받는 주체는 누구였을까? 절도는 오늘날 기준으로 형법 위반이었을까, 민사소송의 대상이었을까?

타인에게 해를 입은 자가 전후 사정을 갖추어 억울함을 진술하는 것이 소(訴), 분쟁 당사자끼리 누가 법도에 어긋나는 짓을 했는지 따지는 것이 송(訟)이다. 삼권분립 이전의 국가는 만백성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백성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해 주는 것이 국가의 통합적 책무였다. 국가가 백성을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백성과 법도를 두고 다투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삼권분립은 말 그대로 국가의 기능과 권위를 쪼개 놓았다. 인류가 국가를 만든 이래 처음으로, 국가의 일부가 다른 일부를 향해 ‘백성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호소해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펼쳐졌다. 국가의 권위가 실추되고 백성의 권위가 높아짐에 따라 ‘국민’이 생겨났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법과 죄의 의미도 변해갔다. 법은 왕 또는 선왕의 의지에서 국민 사이의 약속이라는 의미로 바뀌었고, 왕의 권위를 침손(侵損)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단죄받는 행위가 늘어났다. 현대인은 길을 이용할 때조차 법을 지켜야 한다.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정부는 피해자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또는 정부 자신을 피해자로 상정하여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문서를 제출하고 판단을 구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사법 독립 원칙이 정해졌으며, 이듬해 3월25일 칙령 제50호 ‘재판소처무규정통칙’으로 검사가 공소장을 작성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공소장은 말 그대로 공공(公共)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법원에 하소연하는 문서다. 이 문서를 작성하는 검사가 지켜야 할 원칙은 멸사봉공(滅私奉公)이다. 하지만 검사도 사람이기에 애먼 사람이 공공에 대한 가해자로 지목되는 일은 수시로 발생했다. 이 문서에 검사 개인이나 집단의 사심과 사욕이 개입될 길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건, 현대사회의 숙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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