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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전자계산기

등록 2019-10-29 18:03수정 2019-10-30 13:27

전우용

역사학자

얼마 전 미국과 유럽 수학자들이 전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 50만대를 연결해 60년 넘게 풀지 못했던 수학계의 난제를 푸는 데 성공했다. 어떤 정수를 3번 곱한 수(입방수·세제곱수)끼리 더하거나 빼서 1에서 100 사이의 정수를 만드는 문제였다는데, 수학자들이 풀었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과거 알파고와 이세돌 간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의 승리’라고 했던 용례를 따르자면, 개인용 컴퓨터 50만대가 풀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시아에서든 유럽에서든 인류는 오랫동안 계산에 주판을 이용했다. 주판은 상인의 상징이었다. 1970년대까지도 상업고등학교에서는 주판을 이용한 계산, 즉 주산(籌算)이 필수 과목이었고, 초·중등학생들도 수학을 잘하기 위해 주산학원에 다니곤 했다. 주산에 능숙한 사람은 주판이 없어도 주판알이 움직이는 모양을 상상하며 암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머릿속으로 손익을 헤아리는 모습을 보면 ‘주판알을 튕긴다’고 한다.

계산기는 17세기부터 만들어졌다. 1614년 존 네이피어가 곱셈기를, 1642년 블레즈 파스칼이 가산기(加算機)를, 1671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가 사칙연산이 가능한 계산기를 만들었다. 1830년에는 찰스 배비지가 현재의 모든 종류의 정보를 처리, 저장, 검색할 수 있는 기계를 구상했다. 194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진공관을 이용해 매초 5천번씩 가감산할 수 있는 계산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전자계산기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컴퓨터와 동의어였다. 계산 기능만을 독립시킨 것은 ‘탁상용 전자계산기’라 하여 1968년부터 수입 판매됐고, 1971년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발명된 뒤에는 ‘마이크로컴퓨터’로도 불렸다. 1976년에는 민성전자가 ‘민트론’이라는 이름의 소형 전자계산기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했다.

45678+98762라는 수식을 계산할 때, 옛사람들은 한 숫자씩 더해가며 종이에 쓰거나 주판알이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답을 찾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숫자와 연산부호 순서대로 전자계산기 키패드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계산 과정은 그들의 시야 밖에 있다. 정보 처리는 기계에 일임하고 그 결과만 보는 데 익숙해진 것도, 현대인이 ‘생각하지 않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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