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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28 10:46 수정 : 2018.10.08 08:48

한겨레

[더 친절한 기자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수사결과를 보며

경찰 출신 총괄, 운동권 출신 자문한 노조파괴
사용자단체 경총은 삼성 위해 ‘발연기’
“법과 검찰은 노동자·사용자에 평등한가?”

한겨레
“사람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요.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웹툰 <송곳>에서 노동운동가 구고신이 했던 말입니다. 지난 27일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 김수현)는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사건을 수사해 삼성전자 임직원 등 28명과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부당노동행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습니다. 검찰의 수사 결과 보도자료를 보면서 바로 이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전·현직 경찰과 전 노동부 장관 보좌관, ‘노조파괴 자문’ 노무법인 출신 노무사, 그리고 법정 사용자단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까지 폭넓게 연루된 이번 사건은 ‘서는 곳’이 ‘삼성’일 때 풍경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 풍경에는 ‘삼성공화국’에서 가능한 불법 행위가 망라돼 있습니다. 삼성은 2013년 6월부터 ‘비노조 디엔에이(DNA)를 체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노조가 생기자 ‘신속 대응’했습니다. 그에 따라 협력업체 사장들은 자신의 업체를 삼성이 폐업시킬까봐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그린화(무노조화)하겠다”고 맹세해야 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생계를 위협받아야 했으며, 결혼·이혼 여부, 임신·정신병력 등 건강 상태까지 사찰당했습니다. 삼성은 노조의 세력이 커질까봐 자살한 노조 조합원의 아버지를 돈으로 매수하기도 했습니다. 현직 경찰은 삼성에서 돈을 받고 회사 쪽 교섭대리인 행세를 했습니다. 삼성의 이러한 노조와해 공작은 최근까지 이어졌습니다.

■ 경찰 출신이 총괄하고 운동권 출신이 자문한 노조파괴

‘관리의 삼성, 인화의 엘지(LG)’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화의 엘지’가 과장됐다는 반론이 있지만 ‘관리의 삼성’에 이견을 다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이 ‘관리’가 긍정적으로 발현되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53조6천억원 영업이익과 같은 엄청난 실적으로 돌아오지만, 부정적으로 가면 바로 이런 사태가 벌어집니다.

검찰 수사 결과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의 강한 위계를 바탕으로 한 노조 와해를 위한 ‘관리’의 전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번에 기소된 삼성 임직원만 18명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고 또한 놀랍게도,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만든 것은 서는 곳을 달리해 다른 풍경을 택한 ‘드라마틱’한 인물들입니다.

검찰이 기소한 피고인 명단 중 가장 위에 있는 강경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 부사장과 그 아래 김아무개 전무는 각각 경찰대 2·3기 경찰간부 출신입니다. 이들은 경찰에서 퇴직한 뒤 삼성에서 인사·노무관리 업무를 두루 맡았습니다. 이들은 노조 와해를 위해 협력업체 기획 폐업, 노조 탈퇴 종용 등의 부당노동행위를 총괄한 혐의를 받습니다. 경찰 출신이 불법을 총괄한 셈입니다. 현직 경찰(경찰청 정보국 김아무개 경정·구속)은 3년 동안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노조와 교섭하고 그 대가로 삼성에서 6100만원을 받았습니다.

기소된 삼성 직원 가운데 ‘특이 경력’을 가진 이는 경찰 출신뿐만 아니라 ‘노조파괴 자문’으로 유명한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도 있습니다. 박아무개 과장은 ‘신속대응팀’의 실무를 맡았습니다. 경총에서 협력업체를 대신해 교섭 업무를 하던 전문위원도 삼성전자에 영입됐습니다.

가장 극적인 인물은 검찰이 ‘고용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의 노조전문가’로 표현한 송아무개 자문위원입니다. 그를 아는 노동계·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그는 원래 사용자보다는 노동계에 더 가까웠던 사람으로 전해집니다. 고려대 학생운동권 출신인 송씨는 민주노총의 한 연맹 산하 노동조합에 강의를 다니고, 이와 관련한 석사논문도 썼던 사람입니다. 1999년 노사정위원회를 시작으로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거치는 등 공직에도 몸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노동자쪽이 아닌 사용자 쪽에 서기 시작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그에 대해 “개인자격으로 운동권의 역사나 노동조합의 역사 등을 강의하러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다른 인사는 “4~5년 전부터 노사관계 관련 토론회에서 사용자 편에 선 발제를 하더라. 우리끼리 ‘저 형님 왜 저러시나’ 하는 말을 했다”고 떠올렸습니다. 그가 삼성 노조와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인사는 “사람 변하는거 무섭네요”라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송씨는 2014년 6월부터 지난 3월까지 모두 13억원을 지급 받고, 노조에 대한 이른바 ‘번 아웃’ 전략을 수립해 삼성에 자문한 혐의를 받습니다. 여론전을 통해 노조를 고립시키고, 조합원·비조합원을 분리시키고 선별적 고용승계로 조합 역량을 소진시킨다는 ‘전략’입니다.

검찰은 이를 두고 “삼성이 노조와해를 위한 전문인력을 ‘인 하우스' 형태로 다수 보유하여 고도의 전문성을 확보했다”며 “외부 컨설팅 업체를 한시적으로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를 채용하거나 자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등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로 전문가들을 영입·육성하여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공작을 벌였다”고 밝혔습니다.

나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이 지난 4월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던 중 삼성 마크가 달리지 않은 작업복을 가리키며 사쪽의 노조파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삼성 위해 ‘발연기’한 법정 사용자단체 경총

경총은 원래 협력업체를 대신해 노조와의 교섭에 나섰지만, 실제로는 협력업체가 아니라 그 위의 원청인 삼성 쪽에 섰습니다. 경총은 삼성의 요구대로 교섭을 지연시킨 혐의로 임직원 2명(전직 포함 3명)이 기소됐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경총이 협력업체 대표들을 상대로 했다는 ‘역할극’입니다. 경총은 2013년 7월 협력업체 대표들을 경기도에 있는 한 콘도로 불러 모은 뒤, 경총 직원들을 노조 조합원으로 분장시켜 협력업체 대표들에게 생수병을 던지거나 책상을 발로 차고 욕설하는 등의 행동을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대표들에게 노조에 대한 공포심과 왜곡된 인식을 심게 한 것이죠.

경총은 경영계를 대표하는 법정 사용자단체입니다. 경총은 최저임금 결정 등을 비롯한 노사관계 전반, 노동정책 수립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합리적 노사관계’를 줄기차게 강조해왔습니다. 그런 경총이 말하는 ‘합리적 노사관계’가 삼성과 함께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직원들을 노조 조합원으로 분장시켜 어색한 ‘발연기’를 하게 했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 모든 역량을 동원해 치밀하게 관리한 삼성

재판에 넘겨진 삼성 임직원들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에 걸쳐 18명에 달합니다. 협력업체 대표와 외부 자문위원까지 포함하면 26명입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5명이었고,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때는 이건희 회장 등 10명이었습니다. 이에 견줘 인원수가 훨씬 많은 셈입니다.

또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각 영역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에 어떤 형태로든 연관되면 즉각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현직 경찰이든, 전직 노동운동가든, 노무사든, 경총 관계자든, 협력업체든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불법임을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저마다 모두들 별다른 고뇌의 흔적 없이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습니다. 특히 자살한 조합원의 아버지는 삼성의 요구에 따라 아들의 장례를 ‘노동조합장’으로 치르지 않는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6억여원을 받고, 법정에서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위증까지 했습니다. ‘관리의 삼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가족적 비극이 아니었을까 판단됩니다.

이러한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 이병철 창업주의 유지에 따라 이어져온 경영철학에서 시작된 것이겠지만, 총수 일가는 기소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총수 일가의 개입이나 공모 증거는 확보된 게 없다. 추후 에버랜드 등 삼성 계열사 수사 때 살펴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 검찰의 부당노동행위 봐주기만 없었다면

삼성이 이렇게 법을 무시하고 온갖 불법행위를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공권력이 삼성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삼성의 이번 행위를 ‘반헌법적 범죄’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노사관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격한 언사를 보면 ‘서는 곳’이 달라진 검찰이 이제 ‘풍경’을 이전과는 다른 쪽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검찰은 또 “노조의 불법행위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강하게 처벌해온 반면, 사쪽의 부당노동행위는 사쪽에 유리하게 해석·운영되어온 경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을 만든 것이 검찰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한 반성은 빠져 있습니다.

검찰은 2013년 심상정 의원이 폭로한 삼성그룹 차원의 노조파괴 문건인 ‘에스(S)그룹 전략문건’을 언급하면서 “그동안 의혹만 제기되어오던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에 따른 노조 와해 공작의 전모가 밝혀졌다”고 자찬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2013년에 벌써 밝혀냈어야 할 일입니다. 검찰은 당시 강제수사도 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한 바 있습니다.

노조파괴의 대명사 격인 유성기업을 비롯해 대부분의 회사 쪽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 검찰은 줄곧 무혐의 처분하기 일쑤였습니다. 검찰이 사쪽에 유리하게 법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노조는 법원 재정신청을 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고, 검찰은 공소제기 명령이 내려진 뒤에야 기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성기업의 경우 1심 선고가 나기까지 무려 6년 반이 걸렸습니다.

검찰이 ‘노조파괴 전문’이라고 언급한 노무법인 창조컨설팅도 검찰은 사건 발생 4년이 지나서야 공범이 아닌 ‘방조범’으로 ‘봐주기’ 기소했습니다. 이 때문에 창조컨설팅 전 대표 심종두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넘은 지난달 23일 징역 1년2월에 법정구속됐습니다. 서울남부지법은 “피고인들은 공인노무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나아가 헌법과 법질서를 경시하는 태도마저 엿보인다. 비록 방조범이긴 하나 더욱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고 일갈했습니다.

만약 검찰이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이번에 스스로 밝힌 대로 “전사적인 역량이 동원된 조직범죄의 성격을 갖고 있고 장기간에 걸쳐 다수의 노동자에게 피해를 입힌 것으로 사안이 중하므로 불법행위에 직접 가담한 주동자를 대거 기소하여 엄정한 대응을 했다”면 이런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곽형수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왼쪽)과 조병훈 통합사무장이 지난 4월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사무실에서 각각 고 염호석, 고 최종범 조합원의 영정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삼성은 어떻게 될까

2016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대전지검 천안지청장에게 “법은, 검찰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평등하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기소된 박효상 갑을오토텍 대표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회사를 비난하는 펼침막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모욕죄로 기소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에게 검찰이 똑같이 징역 8개월을 구형한 사례를 들었습니다. 검찰이 사용자 쪽에 서 ‘불평등’하다는 것이었죠. 검찰의 구형과 달리, 법원은 강 대표를 법정구속(징역 10월)했고, 유성기업 노동자에겐 벌금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럼 삼성은 어떤 처벌을 받을까요?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긴 하지만 부당노동행위의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불과합니다. 이 때문에 그리 높은 형량이 나오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 임직원들은 부당노동행위로 파생된 개인정보보호법·근로기준법 위반이나 뇌물공여로도 함께 기소됐는데, 이 혐의들이 유죄로 인정되어야만 법원이 높은 형량을 선고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고용부는 법정형 상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1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여당 의원들조차 개정안 발의가 없습니다.

삼성의 노조파괴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조합원 2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삼성공화국’에서 노동자와 사용자가 법 앞에 평등한지 법원의 재판과 판결을 통해 지켜보겠습니다.

박태우 최현준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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