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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22 19:31 수정 : 2018.10.22 21:07

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석한 뒤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The) 친절한 기자들]
EU 보도자료서 찾아낸 ‘노동 의제’

2010년 맺은 한·EU FTA 조항에
“ILO 핵심협약 비준” 명시했지만
‘결사의 자유’ 등 8개 중 4개 미뤄

EU, 수차례 이행 요구해왔고
19일 정상회담서도 강조했지만
한국 정부는 언론에 언급 안 해

정부 “노사 합의부터” 소극 태도
전문가, 무역 분쟁 가능성 우려
“EU가 FTA 재협상 압박할 수도”

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석한 뒤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언론의 관심은 주로 한반도 평화체제 관련 공조, 철강 세이프가드 조처 등이었습니다. 반면 유럽연합이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노동기본권에 관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2010년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노동기본권 보장 약속을 했지만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인데요. 어쩌다 정상회담 자리에서 이런 지적을 받게 된 걸까요?

정상회담 뒤 유럽연합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유럽연합은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여러 중요 이슈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해묵은(long-standing) 그리고 구속력 있는(binding) 노동기본권 약속을 완전하게 이행할 것….” 여기서 ‘노동기본권 약속’이란 ‘노조 할 권리’(혹은 결사의 자유) 등과 관계된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 비준을 뜻합니다. 한국-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은 ‘무역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관한 장’(이하 지속가능발전 장)에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의 비준을 위해 노력하고 이 협약을 이행한다’고 했습니다.

핵심협약 비준이 뭐길래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것일까요?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는 1948년부터 전 세계 노사정 대표자가 모인 총회에서 국제사회가 지켜야 할 노동기본권의 대원칙을 논의했습니다. 그 결과가 8개의 핵심협약인데요. 한국은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한 협약 4개를 아직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국제노동기구 187개 회원국 가운데 76%가 8개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했지만, 한국은 겨우 4개만 비준했습니다.

자유무역협정에는 노동기본권 조항이 반드시 들어갑니다. 노동기본권 보장에 들이는 사회적 비용을 ‘최저한’으로 두어 기본권을 희생해가며 무리하게 경쟁하는 일을 막기 위함입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핵심협약 비준을 하지 않으면 한국은 계속 노동기본권 문제에서 방어만 하는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국내의 그릇된 노무관리 관행을 외국에서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럽연합의 문제 제기가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5월 유럽연합 의회는 “한국이 노동기본권 약속을 여전히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대응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지난 4월 유럽연합 의회의 베른트 랑게 국제통상위원회 위원장은 한국의 핵심협약 비준을 압박하기 위해 “무역분쟁 해결 절차를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노력하고 있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로스쿨)는 “한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유럽연합은 전문가 패널을 소집하거나 협정 재협상을 하자고 나올 수 있다. 유럽연합의 정치적 압박은 점차 강해질 것이고 한국이 유럽연합과의 협정을 불이행했다는 점이 공식화되면 미국이나 캐나다도 이를 문제 삼기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문제가 무역분쟁으로도 치달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비준을 미뤄왔습니다. 이전 정부보다 문재인 정부가 더 적극적이긴 하지만, 역시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태도입니다. 노동계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왜 사용자들과 합의해야 하느냐”고 주장합니다. 정작 경영계는 비협조적입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 산하 소위원회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협약 비준 관련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정상회담에서 유럽연합이 노동기본권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은 유럽연합 쪽 보도자료에만 포함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아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경영계를 설득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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