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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2.22 15:13 수정 : 2018.12.28 13:11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 건물 앞에서 태안화력 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연 집회에서 한 노동자가 ‘중단! 발전소 위험의 외주화’라는 글을 써 붙인 헬멧을 쓰고 서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더(The) 친절한 기자들]
‘위험의 외주화’ 본질은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아니다?
하청노동자들 “시설 관리·감독권 모두 원청에 있어…
원청-하청 갑을관계 때문에 안전한 설비 개선 말 못해”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 건물 앞에서 태안화력 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연 집회에서 한 노동자가 ‘중단! 발전소 위험의 외주화’라는 글을 써 붙인 헬멧을 쓰고 서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업무,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고용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촛불이 바랐던 상식이고 정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2018년 1월10일 ‘신년사’에서-

2년 전 열아홉살 정비공 김군이 숨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일어났을 때 언론과 전문가들은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습니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업무를 스스로 하지 않고 하청업체에 떠넘기는데, 그 결과 원청 노동자와 견주어 하청 노동자가 안전사고 등으로 숨질 위험성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한동안 뉴스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위험의 외주화’는 지난 11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사고 직전 김씨가 했던 설비 순회점검은 작업의 위험성 때문에 ‘2인1조 근무’를 해야 하는데, 이를 규정한 내부지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위험한 ‘1인 근무’에 내몰렸기 때문입니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방조가 핵심 문제였습니다. 김씨와 함께 일한 한아무개(26)씨는 사고 발생 직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컨베이어벨트가 힘이 세니까 기계에 몸이 달려가는 일이 종종 있는데, 2인1조로 일하면 안전 스위치가 있어서 다른 동료가 줄을 당기면 기계가 멈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100인 대표단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 건물 앞에서 태안화력 고 김용균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청와대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그런데 지난 15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언론의 상식을 뒤집는(?) ‘신박한 주장’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얼마 전 탈선 사고가 일어났던 강릉선 케이티엑스(KTX)의 운영을 맡은 한국철도공사 소속 직원이 올린 글이었습니다.

제목: 태안 비정규직 근로자 순직사고 관련해서 드는 생각

“(김용균씨 사망 사고는) 비정규직 문제가 아니라 기술 개발을 안 하는 게 문제임. (중략) 위험 업무는 사람이 하면 안 된다. 무인화 등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중략) 정치논리 말고 근본 원인을 보자.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도) 위험 작업을 하는 건 정규직도 똑같고, 정규직도 죽을 수 있다. (중략) 법을 바꾸긴 해야 하는데,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근본 해결방안이 전혀 아님.” (닉네임 ‘메리크리스마스웅’)

‘위험의 외주화’를 풀 해법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무인화 등 안전한 작업 환경이라는 얘기입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게 이번 사고를 기회 삼아 정규직화 요구를 하지 말라는 얘기도 됩니다. 이 주장에 의하면, 그동안 언론과 전문가, 현장 노동 활동가들은 지난 2년 동안 ‘위험의 외주화’ 해법에 대해 헛다리를 짚은 셈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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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들이 안전 개선 요구를 하지 못하는 이유

고 김용균씨와 함께 태안화력에서 근무한 하청 노동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위험한 작업 환경을 안전하게 바꾸면 정규직 전환을 안 해도 되지 않나요?’라고요. 하청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시죠.

“현장에서 컨베이어벨트 관련 설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한 게 올해만 10건이 넘어요. 회사(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가 2015년 8월 태안화력 9·10호기가 처음 가동될 때 입찰을 따서 (석탄) 이송설비를 운영해 왔는데, 처음부터 설비가 좀 안 좋았어요. 시설 개선 요청이요? 저희는 하청업체 소속이라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직접 설비 개선을 요구할 수가 없어요. 저희가 문제점을 발견해 사무실(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에 서면으로 보고하면, 회사는 그걸 취합해서 한국서부발전에 전달하는 식이에요. 그런데 보고하는 즉시 원청에 알리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에 한 번씩 올리나 봐요. 개선이나 수리가 빨리빨리 안 되는 거죠. 발전소에서 몇십년 일하신 과장님이 그러세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 설비는 달라진 게 없다. 개선된 게 전혀 없다’고요.” (태안화력 설비 운영 하청 노동자 ㄱ씨)

“가동이 중단됐던 컨베이어벨트를 복구하는 작업을 하려면 저희(하청업체)가 자체적으로 판단해서 복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에요. 감독을 맡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이 지시를 내리지 않는 이상 저희 마음대로 가서 복구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거죠. 무조건. 저희 마음대로 그런 걸 했다가는 아휴… 더 큰 일 나는 거죠.” (태안화력 설비 정비 하청 노동자 ㄴ씨)

고 김용균씨가 일했던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의 노동자가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관리자 두 명에게서 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 원청이 하청에 직접 지시를 하면 불법 파견이 됨에도 ‘평탄화하라’ 등의 지시를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고 김용균 대책위원회 제공
태안화력 하청 노동자들은 발전소 시설 관리·감독권한이 모두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청업체는 설비 개선을 하고 싶어도 시설 변경 등에 대해 아무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발전소 설비 개선이 필요할 때, 한국서부발전에 직접 말할 수도 없고, 원청이 그 요구를 즉시 들어주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문제인데,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왜 이렇게 ‘저자세’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냥 회사 대 회사로 원청에 ‘빨리 고쳐달라’ 큰 소리 한 번 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하청 노동자들은 이런 궁금증에 대해 원청과 하청 간 ‘갑을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라고 답했습니다. 2009년까지 한국남동발전 소속 노동자로 일했던 남성화 한국발전산업노조 사무처장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작업 환경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투자를 했으면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김용균씨처럼) 안 죽었을 수도 있어요. 문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하청업체 입장에서 원청은 ‘건물주’보다 더 높은 존재에요. 원청에 잘못 보이면 다음 계약 때 무조건 입찰에서 탈락한다고요. 물론 원청이 설비투자를 전혀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주력설비에만 투자를 하고, 비주력 설비에는 투자를 안 하거나 늦게 하는 거지. 하청업체가 비주력 설비를 개선·수리해 달라고 하면 원청은 ‘좀 있어 봐. 돈 없어’라고 나오는 거죠. 하청업체 관리자는 3~5년 단위로 원청에서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거기에 ‘이것 좀 고쳐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원청에는 말 못하니까 자기네 회사 하청 노동자들한테 ‘원청이 좀 있으면 고쳐주겠지, 그때까지 버텨라’고 달래는 거죠.” (남성화 한국발전산업노조 사무처장)

지난 11일 새벽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24)씨의 유품 사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제공
다시 말해 하청업체가 설비를 안전하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해도, 원청-하청 간 불평등한 갑을관계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요구는 무시당하기 일쑤라는 것이었습니다. 설비를 개선하려면 돈이 드는데, 그 분야에 투자한 돈만큼 원청의 이윤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원청 입장에서 설비 개선 요구 등으로 해달라는 게 많은 하청회사가 예뻐 보일 리 없습니다. 혹여나 설비 개선 요구 등을 밉보여서 다음번 입찰 경쟁에 낙찰을 받지 못하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원청이 주는 일감이 사라지니까요. 하청업체 정규직은 ‘진짜 정규직’이 아닌 이유입니다. 그래서 김씨와 같은 태안화력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에 ‘2인1조 작업을 하게 해달라’고 말도 못 꺼냈습니다.

“2인 1조 작업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 김용균씨 사고가 일어난 거잖아요. 만약 저희가 고용이 보장된 한국서부발전 소속 정규직이었다면 ‘이 업무는 너무 위험합니다. 이렇게는 일 못 하겠습니다’라거나 ‘2인 1조 작업을 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겠죠. 그런데 하청업체는 3~5년에 한 번씩 원청과 재계약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서부발전이 지시를 하면 ‘저희 겁나서 작업 못 하겠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얘길 하면 불이익이 돌아오니까.” (태안화력 설비 정비 하청노동자 ㄴ씨)

위험 업무를 맡는 노동자들이 최소한 원청 정규직이 되어야 그나마 단체 협약이나 단체 행동권 등을 통해 업무 환경을 안전하게 만들자는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의 외주화를 해결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입니다.

“위험의 외주화는 ‘내 노동이 누구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가’에 대한 문제잖아요. 고 김용균씨의 노동이 발전소에 돈을 벌게 해준 거라면 원청인 발전소가 그 노동에 대해 책임지는 게 맞고, 그 사람들이 직접 고용하는 게 맞는 겁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의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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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탄 설비 운전 무인화가 대안이라고?

그렇다면 ‘블라인드’의 글쓴이가 위험의 외주화 해법으로 제시했던 ‘무인화’는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실제 지난 14일 한국서부발전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보고한 ‘태안화력 안전사고 보고’ 문건을 보면, 재발방지 대책 가운데 하나로 ‘석탄설비 운전 무인화 추진을 검토, 사고 발생을 원천차단’이라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한국서부발전이 무인화를 추진한다면, 사람 없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가동이 가능해지고, 안전사고도 줄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한국서부발전 쪽은 <한겨레>에 “발전 5사가 연구개발 과제로 추진해온 ‘에어 브러쉬 클리너’(컨베이어벨트에 낀 낙탄을 제거하는 기계)는 현재 설치가 진행 중이고, 낙탄을 자동으로 회수하는 장치를 내년 10월까지 설치할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낙탄이 쌓였을 경우 화재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감지할 수 있는 열화상카메라와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 무인 복합 감시시스템을 내년부터 2~3년에 걸쳐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무인화는 어렵다는 점입니다. 한국서부발전은 김씨가 생전에 맡았던 설비 운영업무에 대해서 “점검 작업은 아직까지 기계가 하기 어려운 만큼 앞으로 컨베이어벨트 가동 중에는 절대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갖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고 재발방지 대책으로 거창하게 ‘무인화’를 언급했지만, 사실상 초보 단계의 무인화일 뿐이고 여전히 안전을 위협받는 위험 작업은 여전히 사람이 직접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무인화’ 시대가 대안인 것처럼 언급된 일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구의역 김군 사고’가 일어나기 두 달 전인 2016년 3월, 세상은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격파했다며 기계가 위험 업무로부터 인간을 구원해줄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예견했었습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 관련 업무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성화 한국발전산업노조 사무처장이 ‘블라인드’에 글을 쓴 한국철도공사 직원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원청 노동자가 죽으면 괜찮고, 하청 노동자가 죽으면 문제라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는 ‘다 같이 살자’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말하는 겁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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