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11 05:46
수정 : 2018.06.11 09:55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20여년전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유행가가 인기였다. 정보기술 발달은 진짜같은 가짜를 만드는 도구로 사용되며 가짜와 진짜의 구별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짜 뉴스의 범람, 매크로를 이용한 댓글과 추천 조작, 연예인 위조 음란동영상 등으로 인한 피해가 늘고 있다. 가트너는 지난해 미래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2년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짜보다 가짜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진짜같은 가짜로 인한 다양한 피해가 생겨날 것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적·제도적·문화적 접근도 시도된다. 가짜 판별에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 생산 유통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규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기술과 법규는 아무리 업그레이드해도 악용과 우회방법을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최종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사용자의 비판적 수용력을 높이는 게 궁극적 방법이라는 문화적·교육적 접근이 강조된다.
이런 접근법의 공통점은 모두 진짜같은 가짜를 막아내는 방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생각이다. 구글이 지난달 개발자회의에서 선보인 예약 대행기능의 인공지능 음성비서 듀플렉스는 앞으로 사람 전화와 인공지능 전화를 식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임을 예고했다. 우려와 공포가 제기되자 구글은 “듀플렉스가 실제 사용될 때에는 인공지능임을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가트너 보고서처럼 가짜 정보가 진짜보다 많아지는 세상이 올 수 있다.
정보 내용과 형식으로 신뢰 여부를 판별할 수 없으면 결국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아지게 된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정보에 대한 신뢰를 대체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에서 한국과 중국을 저신뢰사회, 일본과 독일을 고신뢰사회로 구분하며 특징을 설명했다. 타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저신뢰 사회에서는 “믿을 것은 가족뿐”이라는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가짜를 식별하기 어려워지는 환경 속에 한국 사회는 법원이라고 하는 제도적·사회적 신뢰 시스템의 마지노선마저 붕괴 위험을 맞고 있다. 점점 더 신뢰가 희소해져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신뢰의 최후보루마저 위협받는 상황은 비극이다.
구본권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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