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2.23 19:49
수정 : 2018.12.23 20:21
구본권의 스마트 돋보기
시간의 속도를 어느 때보다 실감하는 세밑이다. 왜 시간은 이토록 빠르게 흘러가는 것일까. 이메일과 문자채팅, 모바일뱅킹 등 스마트한 기술과 시간절약 도우미들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왜 나의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줄어든 것처럼 여겨질까?
세탁기, 밥솥, 로봇청소기 등 시간을 아껴준다는 자동화 도구를 더 많이 장만했는데 아껴진 시간은 허공으로 사라진 느낌이다. 미국의 과학저술가 제임스 글릭은 현대인들이 ‘빨리빨리 병’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더 많은 시간절약 도구와 전략을 장만할수록 더욱 시간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브리짓 슐트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고 시간 부족을 호소하게 된다며 이런 현상을 <타임 푸어>라는 책에 담았다. 독일의 과학저술가 슈테판 클라인은 <시간의 놀라운 발견>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시간과는 별 관계가 없으며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빨리빨리’의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다. 느리고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는 습성과 문화는 우리나라를 초고속인터넷과 모바일통신의 속도와 스마트폰 보급에서 세계 1 등을 추구하게 만든 동력이다. 5세대 통신 기술의 가장 큰 변화로 전문가들은 ‘실시간성’ ‘대기시간의 소멸’을 든다. 다른 말로 하면 ‘기다림의 소멸’이다. 현재 통신속도보다 약 100배 빠른 5세대 통신에서는 다량의 데이터라도 대기시간 없이 생각하는 대로 실시간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엄청난 트래픽 때문에 구현할 수 없었던 홀로그램이나 촉각 기반의 가상현실 같은 서비스도 실감나게 제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일부 미래학자는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해 미래에는 ‘기다림’이라는 개념이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기다림은 이미 일상에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사실은 기다림이 아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대부분의 공간에서 기다림의 행위는 모바일 기기 이용으로 대체되고 있다. 무의미한 시간을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정보이용 시간으로 바꾸는 행위일 수 있다.
그러나 기다림이 우리에게 불안과 지겨움만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무료함 속에서 자신과 상대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도 기다림의 선물이었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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