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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따라 의원직을 상실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19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정부와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죽였지만, 우리는 진보정치의 거대한 물줄기를 국민들과 함께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김재연, 이상규, 오병윤, 김미희 의원.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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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③ 진보당 해산, 그 뒤 한 달
헌법 제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법 제59조(결정의 효력)는 “정당의 해산을 명하는 결정이 선고된 때에는 그 정당은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참 간단하지요?
2014년 12월19일 통합진보당은 그렇게 해산되었습니다. 정당이 해산됐다는 것은 모여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어디로 증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궁금했습니다.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정당을 다시 만들려고 할까요? 아니면 다 포기하고 집에 간 것일까요? 물어보기 참 어려웠습니다.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저하고 있는데 오병윤 전 의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광주에 머물다가 서울에 며칠 올라왔는데 같이 식사라도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병윤 전 의원과는 전에도 한두 차례 식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병윤 전 의원은 1957년생입니다. 온갖 고생을 하다가 늦깎이로 전남대에 들어가 1985년 총학생회장을 지냈는데 2012년 야권 연대로 광주 서을에서 당선됐습니다. 성품이 소탈하고 지역에서 발이 무척 넓은 사람입니다.
만나기로 날을 정했고, 약속한 1월9일이 됐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아침 신문에서 오병윤 전 의원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고법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후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오병윤 전 의원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는 기사였습니다. 1심의 벌금 500만원보다 형량이 크게 높아진 것인데 이 형량이 그대로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을까?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정당을 다시 만들려고 할까?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집에 갔을까?
의원, 보좌관, 비서관 그리고
운전을 하던 비서는 어디로 갔을까?
대법원의 이석기 판결에 따라 더 심각한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진보당 해산은 먼훗날 한국 정치사의 큰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오병윤 전 의원은 2008~2009년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을 지낼 때 노동조합 수십 곳에서 불법 후원금 7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는데, 2심은 당원 명부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빼돌린 혐의(증거 은닉)에 대해서도 원심과 달리 유죄를 인정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여의도 식당에서 오병윤 전 의원을 만났습니다. 표정이 차분하고 담담했습니다. 궁금한 것부터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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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윤 전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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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된건가. 앞으로 정치활동 못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됐다.”
- 4월29일 재보궐선거에는 출마하나.
“에이~, 안하려고 한다. 2심에서 당선 무효형도 나왔고..”
- 대법원 판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그럴 일이 아니다. 지역 선후배들과도 의논하고 있다.”
- 다른 의원들은 4·29에 출마하나? 출마 여부를 의원들이 같이 의논했나.
“출마 여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해산 선고 뒤 당분간 낮은 자세로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는 얘기는 나눈 적이 있다.”
오병윤 전 의원과 편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헌법재판소의 야만적 처사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고 통합진보당과 의원들에 대해서도 솔직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는 정권 교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얘기도 했습니다. 그는 정치 자금 사건 2심 재판부에 의원 130명 정도가 서명한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했습니다. 상임위원회에서 알게된 정갑윤 국회 부의장이 새누리당 소속인데도 자신의 일처럼 적극 나서줘서 고마웠고, 놀랍게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탄원에 동참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서명을 해주며 오병윤 전 의원에게 “새누리당 대표 자격이 아니라 의원 개인 자격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막걸리 세 통을 비우고 헤어졌습니다. 택시를 타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조금 쓸쓸해 보였습니다.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으니 보좌관, 비서관, 비서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운전을 하던 비서는 또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습니다.
통합진보당에서 대언론 창구 역할을 맡았던 홍성규 전 대변인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고향인 경기도 화성에 머물며 서울에는 올라가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것이겠지요. 홍성규 전 대변인은 2013년 10·30 재보선 화성갑에 출마해 8% 이상 득표율을 올리는 기염을 토한 일이 있습니다.
또 다른 당직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평소 안면이 있던 실무 당직자 한 분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습니다.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그를 통해 통합진보당 실무 당직자들이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를 조금 들었습니다. 자세히 전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직자들 가운데 일부는 2월19일까지 마쳐야 하는 잔여 재산 처분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당이 해산되면 그 정당은 해산일부터 2개월 이내에 국고에 귀속시켜야 하는 잔여 재산 상세 내역을 중앙선관위에 보고하고 그 잔여 재산을 납부하도록 중앙선관위 정당사무관리규칙은 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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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을 결정한 통합진보당의 한 당직자가 지난해 12월 21일 오전 서울 동작구 대방동 당사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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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깊은 상처를 받았을까? 그는 “지난 10여년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했다는 생각 때문에 무척 힘들다. 눈물은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몸이 자꾸 아프다”고 했습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로 손가락질을 받게 됐는지 참담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쌍하고 딱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다들 꿋꿋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갑자기 실직자가 됐으니 당장은 실업급여를 받을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정치를 다시 하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이 대목은 통합진보당 사람들 그 누구도 답변을 할 수가 없는 처지였습니다.
정당이 해산된 지금 이 순간이
최악의 상황인지 알 수 없다
대법원의 이석기 판결에 따라
더 심각한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진보당 해산은 먼훗날
한국 정치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눈앞으로 다가온 이석기 전 의원의 대법원 판결 때문이었습니다. 2심에서 무죄로 나온 내란 음모 혐의가 유죄로 뒤집히거나 RO의 실체가 있다고 판결할 경우 그 파장이 어떻게 나타날지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검찰은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근거로 1월5일 대법원에 상고이유보충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석기를 수장으로 하면서 그를 중심으로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전쟁 발발시 북한에 동조해 폭력 수단 실행을 목표로 활동해 온 세력의 존재를 헌법재판소가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석기 전 의원의 상고심은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고 있습니다. 전원합의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거나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법원장을 재판장으로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모두 참여해 심리하는 재판 절차입니다. 대법원 선고는 이르면 이달 말에, 늦어도 2월 중순이면 내려질 것입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약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2심 판결을 뒤집어 내란 음모를 유죄로, 그리고 RO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선고하게 되면 통합진보당 구성원이었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몰리게 됩니다. 전직 의원이나 주요 당직자들은 이적단체 가입 혐의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라 줄소환될 수도 있습니다. 통합진보당과 그 구성원들은 정당이 해산된 지금 이 순간마저도 과연 ‘최악의 상황’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얘깁니다.
‘통합진보당 사람들’은 다시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다른 정당을 만들어 진보정치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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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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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을 이상규, 경기 성남중원 김미희, 비례대표 김재연 등 통합진보당의 다른 전직 의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며칠 뒤 이상규 전 의원을 한겨레 텔레비전 ‘정치토크 돌직구’에 초청해 얘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은 먼훗날 우리나라 정치사의 큰 오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국가 권력이 그 권한을 남용해 국민의 일부를 ‘비국민’으로 낙인찍고 잘라내버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통합진보당을 해산한다”고 선고한 그 순간 어떤 사람들은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겠지만, 대한민국은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통증으로 두고두고 몸부림쳐야 하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참 슬픈 일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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