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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1 18:03 수정 : 2015.01.21 18:35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 및 광주광역시당 정기대의원대회가 지난 18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려 문재인, 이인영, 박지원 후보(왼쪽부터)가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광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역량·진정성·절박감 모두 ‘미달’
다음 대선, 벌써부터 패배감 드리워

언제나 역동성만큼은 앞섰던 야당
지금 가장 절실한 건 ‘자신감’ 회복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④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를 앞두고 시도당 대의원대회 및 합동연설회가 전국을 돌며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행사는 정치부 기자들이 모처럼 지방으로 출장을 가서 생생한 현장의 분위기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저는 20일 전북도당 대회에 다녀왔습니다. 오전 9시 국회 국기게양대 앞에서 출발한 버스를 탔습니다. 서울을 빠져나갈 즈음 잠이 들었습니다. 전주까지는 세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다

전주시내 유명한 비빔밥 식당 앞에 버스가 멈췄습니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오영식 의원이 기자들에게 점심을 사는 자리였습니다. 오영식 의원은 정읍 신태인 출신으로 고향에서 초등학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오영식 의원은 “전북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바닥에서 가장 강하게 받쳐준 지역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전북 소외가 너무 심각하다. 지금 장·차관 중에 전북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전당대회 얘기가 빠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번 전당대회에 나선 후보들이 자꾸 과거를 들먹이는 것을 무척 못마땅해 했습니다. ‘친노-비노’ 논쟁이 잘못됐다는 지적입니다. 그는 당원·대의원들이 결국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를 보고 대표와 최고위원들을 뽑아줄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최고위원 중에서 몇 등 정도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표가 없어서 4~5등에서 헤매고 있다”고 엄살을 부렸습니다. 그는 86세대지만 3선의 중진의원이고 얼마 전까지 서울시당 위원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인 오펠리스 웨딩홀로 이동했습니다. 일찌감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른 한 분이 “내가 1987년 평화민주당(평민당) 시절부터 이 당을 지켰다”며 기자들을 미소로 맞았습니다.

후보들의 연설이 시작됐습니다. 연설회는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잔칫집처럼 함성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후보들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는 보좌진들은 “전북이라 그런지 다른 지역보다 분위기가 훨씬 더 좋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다른 지역보다 활기찬 분위기

당대표 후보는 박지원-이인영-문재인 순으로 연설했습니다.

박지원 후보는 “문재인 후보가 호남을 위해 한 일이 뭐냐”고 공세를 취했습니다. 호남과 전북을 위해 그동안 자신이 한 일을 열거했습니다. 목이 약간 쉬었지만 전달력은 뛰어났습니다. 연설 도중 연호와 박수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이인영 후보는 세대교체를 강조했습니다. 세대교체로 집권에 성공한 영국과 미국의 사례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친노-비노 후보가 아닌 통합의 적임자라고 했습니다. 젊은 후보답게 패기가 넘쳤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국민과 당을 잇는 대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민심과 달리 당심에서 별로 앞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의식하는 것 같았습니다. 2012년 대선 때에 비해 연설 솜씨가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8명의 최고위원 후보들도 차례로 연설했습니다. 당대표 후보들의 연설은 7분씩, 최고위원 후보들의 연설은 5분씩이었습니다. 최고위원 후보들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겠습니다.

후보들의 연설이 끝나고 오후 4시쯤 행사장을 빠져 나와 버스에 올랐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 달리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정반대 의도 가진 두 비판

궁금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욕을 많이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는데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당대표에 출마한 사람들이 시원치 않아서 그럴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은 각각 개성이 무척 강하고 장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박지원 후보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 ‘주류’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경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일한 계승자로 남았습니다. 큰 스승에게 오랫동안 사사한 덕분인지 지금까지 야권연대, 남북관계 등 큰 판단에서 한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이인영 후보는 젊지만 겸손한 사람입니다. 세대교체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그의 당선은 그 자체로 새정치민주연합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경제와 통일·외교·안보 공부를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했습니다. 정책 정당으로 변화시킬 적임자라는 의미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무려 1469만표를 받았습니다. 유권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한번 찍었던 후보에게 애착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대선 이후 지금까지 줄곧 반성하며 자숙했습니다. 당 지지기반을 영남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처럼 매우 괜찮은 후보 세 사람이 대표 자리를 놓고 겨루는데도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온갖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새정치민주연합을 향한 비난의 내용을 가만히 뜯어보면 전혀 다른 두 종류가 뒤섞여 있습니다.

우선 야권 지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판이 있습니다. 큰 선거에서 오랫동안 한번도 이기지 못한 제1야당과 정치인들에 대한 항변일 것입니다. 지금 이대로는 정권교체의 희망이 없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입니다. 이들 중에는 아예 신당 창당과 야권 재편을 추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런 사람들의 비판을 잘 새겨듣고 정치혁신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야당 무력화 의도 감춘 변화 요구

다음달 8일 열리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난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표·최고위원 후보 예비경선을 통과한 후보들이 두 손을 맞잡은 채 들어올리고 있다. 왼쪽부터 문병호·정청래·이목희·전병헌 최고위원 후보, 박지원·문재인·이인영 대표 후보, 주승용·유승희·오영식·박우섭 최고위원 후보.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하지만 차원이 전혀 다른 비판도 있습니다. 친여 성향 신문의 논객들, 종편 채널 출연자들이 펴는 정치 공세입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야당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언뜻 보면 야권 지지자들의 정당한 비판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살피면 전혀 다릅니다.

친노-비노 싸움을 비판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부추깁니다. 당내 86세대를 비롯한 진보그룹을 이른바 ‘좌파 성향’이라는 이유로 쫓아내라고 합니다. 다른 정당과의 선거 연대나 후보 단일화는 야합이라고 몰아붙입니다. 정책적으로는 시장경제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신자유주의 테두리에 가둬두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당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무력화시키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자신들의 ‘밥그릇’에 손대지 못하게 야당의 체질을 변화시키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 지지율 얘기를 좀 해볼까요? 친여논객들은 야당을 비판하는 근거로 ‘오르지 않는 지지율’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1990년 3당 합당 이후에 현재의 야당이 현재의 여당보다 정당 지지율에서 앞선 적이 있었던가요? 없었습니다. 딱 한 번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정상 상태에서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을 앞섰을 뿐입니다.

여당과 야당의 정당 지지율은 40% 대 30%, 또는 40% 대 20% 사이를 오락가락 했습니다. 정당 지지율이 뒤집히지 않는 것은 보수 정당의 분단 프리미엄, 새누리당-영남-재벌이 결합한 카르텔, 보수 성향 언론의 편향 보도, 영남과 호남의 인구수 차이 등 여러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한국갤럽의 1997년 신년특집호 ‘갤럽리포트’를 보면 정당 지지도가 신한국당 25.2%, 국민회의 20.3%, 자민련 10.6%, 민주당 5.6%였습니다. 그해 연말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지지율, 야당이 앞선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

2001년 12월 ‘갤럽리포트’에는 선호하는 차기 대선후보 정당이 한나라당 31.0%, 민주당 20.8%, 무소속 8.2%, 자민련 1.2%였습니다. 1년 뒤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습나다. 2012년 대선 직전 정당 지지도는 새누리당 39%, 민주통합당 30%였지만, 대선득표율은 51.6% 대 48.0%로 확 좁혀졌습니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낮은 지지율은 어쩌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계파 싸움도 그렇습니다. 친여 논객들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친노-비노 계파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당내에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당에 계파가 존재하고 계파 간에 노선과 자리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현재 야당의 계파 싸움은 과거 한나라당 친이-친박 싸움보다 심하지 않습니다.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에도 주류-비주류 계파 싸움이 있었습니다. 공천과 당직 인사를 둘러싸고 주류와 비주류가 끊임없이 다퉜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 간 갈등은 리더십 붕괴의 결과물입니다.

야당 위기의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 환경적 요인이 몇 가지 있을 것입니다. 유권자 고령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종편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종편만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진짜 위기는 다른 데 있어…무엇보다 종편이 문제

종편의 효과는 위력적입니다. 고연령층 및 자영업자 유권자들의 정치적 균형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종편 출연자들은 정치를 희화화하고 특히 야당을 악마화하고 있습니다. 언론학자들은 미국의 <폭스티브이>보다 폐해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종편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당사자가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4대강 사업이 아니라 종편 허가”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야당은 종편 대책이 없습니다. 명백한 편파보도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않습니다. 전직 여당 의원이 종편 뉴스 앵커를 맡는 것도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야당이 종편을 지금처럼 방치하는 한 정권교체는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대중-노무현-김근태 정신을 계승한 정당이다.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건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회복이다.
야당 내부의 요인도 몇 가지 있습니다. 무엇보다 디제이 이후 리더십 붕괴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야당 지지자들은 지금도 ‘디제이의 카리스마’와 ‘노무현의 매력’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포기해야 합니다. 더이상 디제이와 노무현 같은 정치인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야권의 새로운 리더십 출현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일정부분 해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의 기득권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정권교체를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별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한계 상황에 내몰리는 국민이나 지지자들보다 절박감이 떨어져 있습니다. 이건 참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가마솥 안의 개구리’라는 비유는 참 적절한 것 같습니다.

2·8 전당대회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떻게 될까요? 새 대표는 곧바로 4·29 재보선이라는 암초를 만날 것입니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의 특성, 신당 출현 가능성, 야권연대가 불가능한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하면 4·29는 야당이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 전망도 밝지 않습니다. 201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이길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권역별 의석수 차이, 정당 지지율 격차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대표 후보로 나선 사람들이 모두 상향식 공천을 약속했는데 상향식 공천을 하면 현직 의원들이 대거 재공천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에 비해 다선 의원들이 많습니다. 수도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노쇠한 후보들과 새누리당의 젊은 후보들이 맞붙으면 어느 쪽이 유리할까요?

그럼 새정치민주연합은 아예 가망이 없는 것일까요?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패배하는 것일까요? 대한민국은 일본처럼 새누리당 장기집권 체제로 가는 것일까요?

일본처럼 되지 않으려면…

그렇게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일입니다. 유권자들이 정당을 보고 찍는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대통령 선거에서는 후보 요인이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6년 4·13 총선에서 겨우 79석을 차지해 정계은퇴 압력을 받는 처지에 몰렸지만, 1년8개월 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은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지만 그 정당의 노무현 후보는 6개월 뒤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길어졌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 야당은 전당대회를 하면서도 분위기가 축 처져 있습니다. 다음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고 자신하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 무력증에 빠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은 잘못이 많습니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과 정치인은 죄인입니다. 역량뿐 아니라 진정성과 절박감도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도 너무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역동성에서 앞선 쪽이 대체로 이겼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뜻을 세우고 정성을 다하면 이루어집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대중-노무현-김근태 정신을 계승한 정당입니다. 어쩌면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자신감 회복이 아닐까요? 아닐까요?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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