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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11 10:34 수정 : 2015.02.11 14:01

박우섭 구청장, 새정치 최고위원 투표 아쉽게 낙선…
폭발적 연설로 대의원투표 1위했지만 여론조사 밀려
문재인 후보, 당 혁신에 지방 기초단체장들 활용해야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⑦

정치부 기자를 하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직접 만나는 현장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가 선출된 새정치민주연합 전국대의원대회가 끝난 지 며칠 지났습니다. 그런데 제 귀에는 아직도 강렬한 한 마디가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웃어봐 웃어봐 기호 2번 웃어봐!”

이게 무슨 말일까요?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8일 오후 3시쯤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의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대표 후보로 출마한 박지원 문재인 이인영 후보의 연설이 끝나고, 최고위원들의 연설이 시작됐지만 대의원들의 집중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이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를 지지하는 대의원들이 행사장 뒤쪽에서 “우섭아 우섭아”라고 연호했습니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박우섭 후보가 연설을 시작하며 갑자기 단상에서 구호를 외쳤습니다. “웃어봐 웃어봐 기호 2번 웃어봐!”

대의원들이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박우섭 후보의 이름 ‘우섭아’와 ‘웃어봐’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구호를 만든 것입니다.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은 최고위원 후보 8명 가운데 현직 의원이 아닌 유일한 후보였습니다. 지방 정부에서 일하는 구청장이 도대체 왜 중앙당 최고위원에 출마한 것일까요? 그의 연설에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연설문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웃어봐 웃어봐 기호 2번 우섭아.

우리당과 당원에게 새로운 희망과 승리의 웃음을 가져다 줄 기호 2번 박우섭입니다. 변방에서 불어와 중앙을 확 바꿀 반란의 돌풍, 지방의 힘 기호 2번 박우섭입니다.

저 박우섭 40년 전 과학자의 꿈을 안고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대학에서 세번 제적 당해 22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배되어서 3년간 도망다녔습니다. 김근태 의장과 민청련 활동을 하다가 세번 감옥 가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1987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해냈고 1997년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습니다.

이제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하고자 ‘두꺼비 정신’으로 최고위원에 출마했습니다. 새로운 희망,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저 박우섭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의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꿈은 김대중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균형발전 분권의 꿈이며, 김근태 의장의 따뜻한 시장경제,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의 꿈입니다. 우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총선 대선에서 승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총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리 당의 잃어버린 두꺼비 정신을 되찾아야 합니다. 두꺼비는 뱃속에 품은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뱀의 아가리에 몸을 던집니다. 이러한 자기 헌신과 ‘필사즉생’의 두꺼비 정신이 바로 우리당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당에서 두꺼비 정신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당의 뿌리가 4·19 혁명과 부마항쟁, 5월 광주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를 지켜주신 하늘에 계신 민주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우리 당이 되어야 합니다. 저 박우섭 우리당의 지도부를 당과 당원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두꺼비 지도부로 만들겠습니다. 저 박우섭이 새로운 희망이 되겠습니다. 기호 2번 두꺼비 정신 박우섭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세월호 참사는 서서히 침몰해가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방향을 바꿔라, 판을 갈아 엎으라고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장 제일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타심과 배려, 협동과 신뢰에 기반한 사회로 바꿔야만 합니다. 공유 경제, 공유 정치, 분권 국가, 자치 분권 개헌이 우리의 비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 당의 지방정부는 그 희망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평생 학습과 마을 만들기를 통한 공동체 회복, 사회적 경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생활임금제 도입, 로컬 푸드 사업, 혁신 교육, 친환경 무상급식 등 모두 우리 당의 지방정부가 일궈낸 국민을 위한 자랑스러운 성과입니다.

이제 중앙이 지방의 소리, 현장의 목소리 들어야 할 때입니다. 지방의 움직임을 보고 방향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지방의 반란, 지방의 역습이 가능해야 건강한 민주주의가 이룩되고 대한민국이 살 수가 있습니다. 저 박우섭이 해내겠습니다. 기호 2번 지방의 힘 박우섭을 선택해 주십시오.

저는 현직 구청장입니다. 8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국회의원이 아닌 후보입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지방정치인 기호 2번 박우섭을 최고위원에 뽑아주셔서 당원의 반란, 대의원의 반란을 일으켜 주십시오.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의 반란은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정부의 반란입니다. 우리의 반란은 국회에 대한 원외, 지방의회의 반란입니다. 우리의 깃발은 찬란하게 빛나는 지방자치와 분권의 깃발입니다.

지방자치의 깃발은 김대중 대통령께서 목숨을 내건 처절한 단식투쟁으로 쟁취해낸 깃발이며, 분권의 깃발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탄핵의 광풍을 뚫고 지켜낸 깃발입니다.

저 박우섭 반란군의 선봉장이 되어 자치와 분권의 깃발을 높이들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겠습니다. 자치와 분권, 지방의 힘으로 여의도에 갇혀있는 정치를 해방시키겠습니다.

생활정치의 힘, 현장의 목소리로 여의도의 권력 독점을 종식시키겠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당원도 최고위원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변화를 국민들에게 보여 줍시다. 이번 전당대회 변화와 혁신의 상징인 반란의 선봉장 저 기호 2 번 박우섭을 지지해 주십시오. 반란의 선봉장 저 박우섭을 선택해 주십시오.”
 

여기서부터 박우섭 구청장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습니다.

“당원·대의원 동지 여러분, 지방의원 여러분, 지방정부 의장 여러분, 원외 지역위원장 여러분, 한국노총 동지 여러분, 청년 대학생 여러분, 우리 다함께 지방의 반란에 동참합시다.”

대의원들이 “와~”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다함께 당원의 반란에 동참합시다. 우리 모두 다함께 유쾌한 반란의 주역이 되어 새로운 희망을 세웁시다. 우리 모두 다함께 승리의 웃음을 웃읍시다.”

연설이 끝나자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일제히 터져 나왔습니다. 저도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수많은 정치인들의 연설을 들었지만 이처럼 청중을 압도하는 폭발적인 연설을 들어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대의원석에 앉아 취재하던 <한겨레21> 정치팀장 송호진 기자는 대의원들이 “저 사람 대표해도 참 잘 하겠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박우섭 구청장의 평소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겸손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를 1993년부터 알고 있지만 남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지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8만6214표를 얻어 8만5516표를 얻은 여당 후보를 겨우 698표 차로 이기고 인천 남구청장에 당선됐습니다. 개표하는 동안 밤새 여당 후보에 뒤지고 있다가 마지막 부재자 투표에서 뒤집었습니다. 인천남구는 갑과 을 국회의원이 모두 새누리당인 여당 우세 지역입니다. 따라서 그의 당선은 ‘박우섭 개인기’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으로 출마한 것은 그가 새정치민주연합 기초단체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기초단체장들이 결의하여 자신들의 대표인 박우섭 구청장을 최고위원에 출마시킨 것입니다.

아무튼 연설이 끝나고 저는 박우섭 구청장이 최고위원에 당선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개표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

 

현장 대의원 투표에서 1등을 차지했지만 일반 국민과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꼴찌를, 권리당원 투표에서는 7등에 그친 것입니다. 결국 45% 비중의 대의원 투표에서 1등을 한 후보가 합산에서는 6등에 그쳐 낙선을 하는 희한한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입니다.

경선 기간에 박우섭 후보의 공보특보를 맡았던 김정식씨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대역전극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최고위원 후보 여덟 분 가운데 전국 대의원 지지율 16.24%를 얻어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4.2%의 미미한 지지에서 출발한 박우섭 후보는 전국을 다니면서 당원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조직선거라 할 수 있는 권리당원 투표와 인지도 조사라 할 수 있는 당원 투표·국민 투표에서 꼴찌를 하였습니다. 지상파 방송 토론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권리당원들에게 문자 한번 제대로 보내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당원의 반란, 지역의 역습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도전이었습니다. 이 의미있는 도전, 두꺼비 정신, 그냥 가슴 속에 묻어버리기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수도권의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단체장들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박우섭 구청장을 내세운 이들의 ‘반란’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생활정치 현장에서 쌓아올린 이들의 정치적 자산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새정치연합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당대표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도 당 혁신에 이들의 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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