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⑨ 정치부 기자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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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출입기자들이 지난 2월16일 국회 본청에서 걸어나오는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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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겨레 정치부 이유주현 기자가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띄웠습니다.
1.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블랙홀을 공전하는, 중력이 엄청 강한(그곳의 1시간이 지구의 7년에 해당할 정도로) 위험한 행성이었다. 그 행성 이름이 밀러였다는 것을 그저께 팟캐스트를 듣다가 다시 깨닫게 됐다.
2. 열흘전, 그러니까 설 연휴 직전 나는 갑자기 안구가 움직이지 않아 초점이 안 맞춰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 잘 걸을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각종 검사와 의사, 가족, 지인들의 도움과 지혜가 합산된 결과, 사흘 전 ‘밀러피셔 증후군’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희귀병이긴 하나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완치가 잘 된다고 한다. 희귀완치병. 지금은 좀 불편하지만, 희망이 있는 운 좋은 상황이다. 공상컨대, 난 뜻하지 않게 밀러 행성에 불시착했으나, 긴긴 하루하루들을 좋은 마음으로 잘 보내면 올 봄 지나기 전에 인듀어런스호로 귀환하게될 것이다. 00살 첫날 아침, 이렇게 생각해봤다.
이유주현 기자는 한겨레 정치부에서 일하는 저의 동료입니다. 갑자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에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너무 많이 하니까 “곧 완치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띄웠다고 합니다.
밀러피셔증후군은 후천적인 신경질환입니다. 눈근육이 약화되고 불안한 자세로 걷게 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수주 동안 진행되다가 특별한 치료 없이도 점차 호전되며 2~3개월 뒤에는 완전히 회복됩니다. 재발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정치부 동료 몇 사람과 함께 문병을 다녀왔습니다. 눈을 잘 돌리지 못하고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동료들 앞에서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유주현 기자의 입원을 계기로 오늘 ‘정치 막전막후’는 정치부 기자들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정치부 기자는 프로야구로 치면 허구연이나 하일성
기자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스포츠로 치면 해설가들입니다. 해설이 빠진 스포츠 중계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전두환 신군부 집권 이후 국민 유화책으로 1982년 시작됐습니다. 출범의 계기야 어찌됐든 프로야구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좋은 선수들과 좋은 감독들 덕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프로야구 조기 정착의 공로자로 허구연 하일성 두 분의 해설가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명해설자로 이름을 떨치던 분들입니다. 허구연씨는 한때 청보 핀토스 감독을 맡았지만 실패하고 다시 해설가로 돌아왔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자들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인을 직접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신문 정치면의 기사를 읽거나 방송 리포트를 보고 정치에 대한 안목과 지식을 기르게 됩니다. 정치부 기자는 평상시 유권자가 정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 구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정치부 기자들이 제대로 일해야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소신입니다.
무려 1300여명에 이르는 국회 출입기자들
정치부 기자들, 그 중에서도 정당을 담당하는 기자들은 주로 국회에 출입기자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국회 사무처에 등록된 기자가 모두 몇명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모두 1300명 정도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엄청난 숫자였습니다.
국회의원 숫자가 300명이니까 국회의원 한 명을 4명 이상의 기자가 취재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1300명을 언론사 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신문사가 400명, 방송사 300명, 인터넷 300명, 통신사 및 외신 300명이라고 합니다. 또 직군별로는 취재기자가 1000명, 정사진(스틸 카메라) 기자 100명, 촬영 기자 200명이라고 합니다. 이 가운데 취재기자 1000명이 정치부 기자입니다. 물론 이들이 모두 다 매일 국회에 드나들거나 상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부 정당팀 기자들의 일상을 좀 소개할까요? 국회 본청 1층 정론관이란 곳이 있습니다. 국회 브리핑룸과 언론사별 부스를 합쳐서 부르는 명칭입니다. 기자들이 주로 머무는 공간은 언론사별 부스라고 보면 됩니다. 언론사 규모에 따라 8~9석, 5~6석, 3~4석 등 다양한 크기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선임기자인 제 테이블과 의자도 한겨레 부스 한구석에 있습니다. 저같은 현장 기자들은 회사 안에는 고정된 자리가 없습니다. 아침에 국회로 출근하고 국회에서 기사를 쓰다가 국회에서 퇴근하는 날이 많습니다.
부스를 사용하려면 사용료를 내야 합니다. 한 자리 당 중앙언론사는 월 3만원, 지방언론사는 2만원입니다. 이 돈은 부스 소모품과 간단한 음료를 마련하는 데 쓰입니다.
부스를 배정받지 못한 작은 규모의 언론사 소속 기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브리핑룸 안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에 앉아 기사를 씁니다. 고정석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오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취재의 기본 소스는 정치인들의 수많은 말
정치부 기자들이 하는 취재의 가장 기본은 정치인들의 ‘말’입니다. 기자들이 정치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아침 라디오 방송입니다. 꽤 많은 라디오 방송에서 매일 아침 현안과 관련이 있는 정치인을 전화로 연결해 인터뷰를 합니다. 그리고 그 텍스트를 인터넷에 띄워 놓거나 보도자료로 기자들에게 제공합니다. 1990년대까지 정치부 기자들은 아침 일찍 주요 정치인들의 집에 찾아가 식사를 하며 취재하던 관행이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런 관행은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지금 정치부 기자들은 아침에 나오면 라디오 인터뷰를 찾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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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가 국회에서 한 정당의 회의 내용을 노트북으로 받아치고 있다. 네일아트로 개성을 살렸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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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공개 회의입니다.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등 각 정당은 거의 매일 아침 회의를 합니다. 최고위원회의, 원내대책회의,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 주요간부회의 등의 이름으로 회의가 열립니다. 이런 회의의 앞부분은 기자들에게 공개됩니다. 정치인이 말을 하면 수십명의 기자들이 일제히 노트북 자판을 치는 소리가 “촤르륵”하고 회의실을 울리는 장관이 벌어집니다. 정치인이 말을 멈추면 “촤르륵” 소리도 따라서 멈춥니다.
회의장에 가서 말을 받아치는 일은 주로 정치부에 늦게 온 ‘말진’들이 합니다. 말진 중에는 받아치는 솜씨가 워낙 뛰어나 숨소리까지 받아친다고 소문이 난 기자들도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 소속이라도 말진들끼리는 취재한 내용을 공유하는 등 유대가 강한 편입니다. 말진들은 간사를 투표로 선출하기도 합니다.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는 공개됩니다. 기자들이 회의장에 가서 직접 취재를 할 수 있습니다. 본회의와 상임위원회는 각 언론사 부스에서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박 대통령, 의원 시절 기자 스마트폰에 얼굴 맞기도
셋째, 기자들의 집단 취재입니다. 국회 본회의나 각 정당 주요 회의가 벌어질 때 기자들은 회의실 앞에 서서 대기하다가 회의실에 입장하는 정치인을 붙잡고 현안과 관련한 질문을 합니다. 정치인들은 대개 기자들의 질문에 몇 마디는 답변을 하고 회의실에 들어갑니다. 전에는 정치인들의 말을 기자들이 수첩에 받아 적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에 녹음을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스마트폰을 들이대고 질문을 하던 기자들과 뒤엉켜 스마트폰에 얼굴을 얻어맞은 일도 있었습니다.
정론관 브리핑도 집단 취재에 해당합니다. 주로 브리핑룸에서 하는 정치인들의 브리핑은 각 언론사 부스에 실시간 중계됩니다. 정치인이 공식 브리핑을 마치면 대개 복도에서 ‘백브리핑’을 합니다. 일종의 비공식 보충 설명을 하는 것이지요. 이 자리에도 기자들이 몰려듭니다.
넷째, 개별 취재입니다. 기자들이 정치인을 별도로 만나 취재하거나 전화로 취재를 하는 경우입니다. 정치인들은 개별 취재에서 솔직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섯째, 기자들은 식사 시간도 중요한 취재입니다. 점심 식사나 저녁 식사를 정치인들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언론사 기자들이 정치인과 식사를 하기도 하고, 여러 언론사 기자 몇 사람이 정치인과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정치인들과 만나기 위한 기자 모임을 일본말로 ‘꾸미(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폭탄주 자주 마시던 예전에는 ‘술 실력’이 중요했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 같습니다. 정치부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 뭘까요?
옛날에는 ‘술실력’이었습니다. 정치인들과 기자들이 양주(주로 발렌타인 17년)와 맥주를 섞어 폭탄주를 마시던 시절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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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3일 박진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폭탄주를 없애자며 망치로 폭탄주 잔을 깨뜨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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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민자당에는 이한동 김영구 등 ‘폭탄계’ 의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KBS 별관 뒤쪽 스페인하우스라는 술집에 자주 모여 폭탄주를 마셨습니다. 지금은 없어졌더라고요.
어떤 정치인들은 꼭 술을 마셔야 기자들에게 정보를 주었습니다. 술이 약한 기자들은 고역이었지요. 저도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를 화장실에 가서 수첩에 적어 놓았는데 다음날 술이 깬 뒤에 제가 쓴 글씨를 못 알아봐서 난감하던 그런 기억이 있습니다.
밤에 그렇게 술을 먹고 다음날 새벽에는 또 정치인 집을 찾아가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낮에는 부스에 앉아 기사를 쓰거나 의원회관을 돌며 의원이나 보좌관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니 몸이 견디겠습니까? 정치부에 온 지 6개월째 되는 어느날 부스에서 원고지에 기사를 쓰다가 앞으로 기절하듯이 쓰러져 잠이 드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급성 지방간’이라고 하더군요. 좀 무능한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술을 몇달간 끊었더니 다행히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일이었습니다. 미련했던 것이지요.
어쨌든 지금도 정치부 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입니다.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는’ 예비군처럼, 생각하며 뛰어다니고 뛰어다니며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부 기자들입니다. 기동력과 사고력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뜻입니다. 옛날처럼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문의 지면이 크게 늘어났고 인터넷 기사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업무량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대체로 정치부 기자들은 하루종일 취재하거나 기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뭐든지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정치부 기자라는 인종이 뭐 따로 있겠습니까? 일도 좋지만 사람이 쉴 때는 쉬어야지요.
이유주현 기자의 조속한 쾌유를 빕니다
이쯤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이유주현 기자는 사실 ‘일중독증 환자’에 가깝습니다. 좀 쉬면서 하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빈둥거리는 모습을 단 한순간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사람 있지 않습니까.
밀러피셔증후군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자가 면역 질환’인 것으로 미루어 과로 및 면역력 저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유주현 기자의 조속한 쾌유와 업무 복귀를 기원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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