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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3 11:36 수정 : 2015.03.13 18:15

지역구 중심의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출제도는 유권자 대표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비례대표 의석 수를 늘리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다.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⑪

대한민국 헌법 41조 1항은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항은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회의원 수는 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4명을 더해 모두 300명입니다. 3항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대표성일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자신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출 제도는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선거구별로 유권자가 행사하는 표의 무게에 차이가 있습니다. 둘째,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율이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정치 불신’ 탓 반대 정서 심하지만
그럴수록 기득권 세력만 반사이익

첫번째 문제부터 따져보겠습니다. 지난 2012년 4·11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 영천의 정희수 후보(새누리당)는 2만3331표를 득표해 당선됐습니다. 그런데 서울 강남갑의 김성욱 후보(민주통합당)는 4만1509표를 얻었는데도 낙선했습니다. 경북 영천의 인구는 10만3003명이고, 서울 강남갑의 인구는 30만9776명인데도 그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각 1명씩이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입니다.

출마한 후보의 숫자 등 각 선거구별 사정에 따라 더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울 강서을의 경우 민주통합당 김효석 후보가 6만1098표를 얻었지만, 6만1967표를 획득한 새누리당 김성태 후보에게 낙선했습니다. 광주광역시 동구에서는 후보 난립 속에 무소속 박주선 후보가 겨우 1만5372표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어쨌든 선거구별 인구편차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0월30일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수 편차를 ‘3 대 1’에서 ‘2 대 1’로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3 대 1에 달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선거구 인구 편차를 2 대 1 이내로 줄이는 선거법 개정을 2015년 연말까지 완료해 위헌 요소를 없애라”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것입니다. ‘1인1표’ 선거제도에서 모든 유권자 표는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게 민주주의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행 선거구제는 이를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으니 바로잡으라는 뜻입니다.

이 결정으로 국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선거구 인구 편차를 2배 이내로 조정하려면 246개 선거구 가운데 37곳이 인구 상한(27만7966명)을 초과하고, 25곳이 하한(13만8984명)을 밑돌게 됩니다. 선거구를 대폭 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인구가 적은 농촌지역은 선거구를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5~6개 시군을 한 선거구로 묶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농촌지역 선거구는 현행대로 유지하고 인구가 많은 도시지역 선거구를 늘리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도시지역 선거구를 50개 정도 늘려야 합니다. 결국 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얘기지요.

국회의원 선거 개표 장면.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둘째, 정당 간 대표성의 문제를 따져보겠습니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의 지역구는 246개였습니다. 지역구 투표에서 새누리당은 모두 932만4911표를 얻었습니다. 득표율로 환산하면 43.3%였습니다. 그런데 지역구 의석은 그보다 훨씬 많은 127석(51.6%)을 차지했습니다. 민주통합당도 815만6045표를 얻어 37.9%를 득표했지만, 지역구 의석은 그보다 많은 106석(43%)를 차지했습니다. 소선거구제의 승자독식 원리 때문이지요.

반면에 작은 정당들은 손해를 봤습니다. 통합진보당은 129만1306표(6.0%)를 득표하고서도 지역구 의석은 7석(2.8%)에 그쳤습니다. 자유선진당은 47만4001표(2.2%)를 득표했지만 3석(1.2%)을 가져갔습니다. 그밖에 득표율 2% 미만의 수많은 군소정당은 아예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봐도 불공평한 의석배분이 이뤄진 것입니다. 1당과 2당 거대정당들이 작은 정당의 득표율을 빼앗아 의석을 차지하다니 치사하지 않습니까?

정당 지지율과 의석에 차이가 나는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정당정치를 중시하는 유럽에서는 여러가지 보정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정당의 득표율과 실제 의석을 가급적 일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정치학자와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처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소선거구제의 수혜집단인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때문에 제도가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놀라운 방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비례성과 표의 등가성을 높이기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2월24일 발표한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눠 배분하고 각 정당은 이 권역에 맞춰 지역구 후보와 권역별 비례후보를 내도록 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 대 1로 해 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100명의 의원을 뽑는다. 지역구 당선자는 현행과 같이 1위 득표자가 되고, 권역별 비례대표는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당선자 수가 정해진다. 이 과정에서 각 정당이 지역구 후보자를 권역별 비례대표로 동시에 등록해 해당 권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낙선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석패율 제도를 도입한다.”

현 지역구 중심 의석수는 1인1표제 훼손
비례대표 늘려야 보정 가능

중앙선관위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면서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묶은 것은 국회의원 증원에 대해 국민들이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쨌든 중앙선관위 제안을 19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 반영해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습니다. 152석을 얻었던 새누리당의 의석수는 139석, 그리고 127석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의 의석수는 117석으로 줄었습니다. 13석에 머물렀던 통합진보당(2014년 해산)은 34석, 5석에 그쳤던 자유선진당(새누리당에 흡수)은 10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소수정당이 약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편중을 완화하는 효과도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영남에서 지역구 3석을 얻는 데 그쳤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당득표율이 14.4%였던 대구·경북권에서 5석, 정당득표율 27.6%를 기록한 부산·울산·경남권에서 14석을 확보하게 됩니다. 호남·제주권에서 단 한석도 얻지 못했던 새누리당은 이 지역에서 얻은 정당득표율(10.0%)에 따라 4석을 할당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새누리당이 이래저래 지금보다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손해를 볼 것이 명백한 데 찬성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중앙선관위 제안에 대해 새누리당은 “선거관리 전문기관의 입장에서 본 현 선거제도의 개선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이해한다. 여야가 신중하게 숙의해야 할 것이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신중론을 가장한 반대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환영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지역구 의원들도 사실은 반대론자들이 더 많습니다.

중앙선관위 제안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솔직한 생각은 <한국일보>가 의원 전수조사를 해서 3월9일치 신문 1면에 보도했습니다. 제목은 ‘국회의원 58% 권역별 비례대표제 찬성’이라고 되어 있지만,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새누리당 의원의 65.3%는 권력별 비례대표제에 반대하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89.4%는 찬성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여야 합의가 불가능합니다.

한국일보 조사에서는 오히려 다른 수치를 주목해야 합니다. 지역구 축소와 비례대표 확대에 대해 의원들의 78%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의원정수 조정에 대해 현행대로 300명으로 유지하자는 의견이 65.9%로 많았습니다. 쉽게 말해 의원들은 현행 제도의 변화를 원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앙선관위 제안대로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과연 줄일 수 있을까요? 비유하자면 의사가 자기 신체를 잘라내는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왕적 총재의 시대가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에게 당신들 몇십명을 스스로 잘라내라고 그 누가 명령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중앙선관위의 제안을 놓고 몇 차례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의원정수와 관련한 대목만 골라서 소개하겠습니다.

3월2일 정의당 정치똑바로특별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이 흥미로운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만약 330석 정도로 정수를 늘린다면 지역구 의원 반발을 최소화하면서 2대 1 비율을 유지할 수 있음. 시민들이 의원 정수 증원을 바라지 않는 것은 현재의 낡은 정치에 대한 혐오 때문이므로 비례대표 확대를 계기로 정치개혁의 전망을 제시하고 의원 세비총액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시민들을 설득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님.”

의원 세비 총액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30석 정도 늘리자는 얘깁니다.

여야 의원들의 몸싸움은 시민들에게 ‘정치혐오증’을 불러일으켰다. 2010년 말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당의 단독 예산안 처리를 둘러싸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국회의원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심상정 정치똑바로특별위원회 위원장도 국회의원 증원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중앙선관위 안의 취지를 살려서 지역구 수를 240석으로 조정하고 지역구와 비례 의석수 2대 1을 유지하여 비례의석을 120석으로 늘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국회운영 비용은 세비삭감 등의 노력을 통해 전체 입법부 예산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국민들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입법부 예산을 현재 수준에서 동결하고 국회의원을 360명으로 늘리자는 제안입니다. 역시 지역구 의원들의 저항과 국민들의 국회의원 증원에 대한 반발을 감안한 일종의 타협안입니다.

3월10일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최태욱 한림대국제대학원대 교수는 발제에서 “농촌지역은 그대로 둔 채 수도권 등 도시지역 지역구만 증가시키는 방안”을 국민적 수용 및 정치적 타협 가능성이 가장 높은 개혁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지역구 의석을 현행 246에서 270으로 24석 증가시키고 비례대표 의석은 54석을 유지해 국회의원 정수를 324석으로 늘리자는 얘깁니다.

한상익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 배분을 전제로 비례대표 보정 의석을 부여하자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 지역구 축소는 최소화하고 300석에 맞게 각 권역에 의원정수를 배정한 뒤, 권역별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원을 배정하되 부족한 의석은 보정의석으로 보정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19대 선거 결과에 적용하면 22석의 보정의석이 발생합니다. 이 제안의 현실적인 장점은 명시적으로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므로 국민들의 반대를 다소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3월10일 저녁 사단법인 ‘행동하는 양심’ 주최 특별토론회에서도 제안이 나왔습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원장은 “정당학자들은 대체로 비례대표 강화 등의 목적과 더불어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민여론을 감안할 때 의원정수는 늘리되 의원 세비 등 비용 총액은 현 정원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고 밝혔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비용을 동결하고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국회의원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수를 늘리지 않으면 지역구 의석이 지금보다 늘어나고 비례대표 의석은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군소정당이 큰 피해를 보는 현재의 문제가 악화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입법부를 기득권자들이 장악하게 됨으로써 정치가 퇴행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정치개혁특위, 시간 끌다 ‘개악’할 가능성
유권자가 두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국회의원 몇십명 늘리는 것이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쉽게 답변하면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해왔기 때문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정치 이데올로기는 대통령, 관료, 재벌, 학계, 언론, 심지어 현직 의원까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끊임없이 확산시키고 있는 음모입니다.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가급적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정치는 나쁜 것” “정치인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정치혐오증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시작되어 매우 뿌리가 깊고, 지금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당분간 이를 극복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이제 다음주가 되면 여야가 국회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여야 의원들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서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거기에 들어가야 자신의 지역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걱정입니다. 정치개혁특위가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질질 끌다가 연말에 가서 “이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만행’을 저지를 가능성 때문입니다.

정치개혁특위에 대한 감시는 1차적으로 저같은 정치부 기자들의 몫이지만 결국 유권자와 국민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든 딱 그 나라 국민 수준의 정치 시스템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눈을 부릅떠주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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