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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9대 국회 개원 당시 만들어진 국회의원 배지. 배지 문양은 지난해 한자 ‘國’ 대신 한글 ‘국회’로 변경됐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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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3 / 정치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①
‘정치인은 사리사욕이 없어야 한다’는 반만 맞는 얘기
정치인은 현실 세계 속의 존재…그들의 욕망 인정해야
정치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정치인은 사리사욕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대표적입니다.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반만 맞는 말입니다. 정치인이 개인적 이익을 먼저 챙기면 안됩니다. 정치인은 공익의 수호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사익을 챙기는 정치인은 감옥에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사욕이 없어야 할까요? 이건 좀 이상합니다. 정치인도 인간입니다. 명예욕이 있고, 식욕이 있고, 성욕이 있는 인간입니다.
오히려 명예욕이 강한 사람이 바로 정치인입니다. 명예욕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정치인에게 명예는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공동체를 위해 앞장서서 일을 하고 그 일로 평가를 받고 다시 그 평가를 기반으로 지위를 획득해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예욕이 없는 정치인’은 형용모순입니다. 현실 세계에 그런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자기 자랑이 심합니다. 자신이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천성이 겸손한 사람은 정치를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모두 대식가
제가 관찰한 바로는 정치인들이 식욕도 왕성합니다. 정치는 체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입니다. 잘 먹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밥그릇을 앞에 놓고 ‘깨작깨작’하는 정치인을 저는 본 일이 없습니다. 식욕이 좋은 어떤 의원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음식만 존재한다. 하나는 ‘맛있는 음식’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식사는 그 자체가 중요한 정치활동이기도 합니다. 국회 안팎에서는 아침식사를 하며 진행하는 조찬 정책간담회나 조찬 토론회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은 점심과 저녁식사 자리 두 세 곳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합니다. 미국에서 정치인에게 식사 자리는 정치자금을 모으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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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에서 19대 여야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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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모두 대식가였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 청와대에 가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점심시간에 영수회담을 했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손님들에게 꼭 칼국수를 대접했습니다. 영수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김대중 총재는 먼저 당사 지하에 있던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고 난 뒤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칼국수 한 그릇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정계에서 은퇴한 손학규 전 대표도 대식가입니다. 그는 특히 김치를 아주 좋아합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김치를 남기면 가져다 먹곤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성욕도 왕성
성욕은 어떨까요? 저는 정치인들이 성욕도 왕성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정치인들은 스캔들이 많고 혼외자 의혹도 많습니다. 제가 세운 가설은 이렇습니다.
“모든 욕망의 코드는 통한다. 명예욕이 강한 사람은 성취욕도 강하고, 권력욕도 강하고, 소유욕도 강하고, 식욕도 강하고, 성욕도 강하다. 한 마디로 모든 욕망이 다 강하다.”
미국에서 상원의원이 웃통을 벗은 사진을 인터넷에 띄웠다가 의원직을 사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의 유별난 성욕이나 과시욕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인간이 욕망을 다 채우고 살 수는 없습니다. 왕성한 욕망을 적절한 선에서 제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욕망이 성취를 향한 강한 동기나 추진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정치인들이 하는 말도 잘 가려서 들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욕심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오직 나라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거짓말입니다.
“제가 대통령을(국회의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면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진심입니다.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반정치 이데올로기’
우리가 정치인들의 욕망을 나쁘게 보게 된 이유가 뭘까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 현실 정치에 대한 동양철학의 부정적 시각이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는다는 뜻입니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도 있습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뜻입니다. 노자의 무위사상도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덧씌웠습니다. ‘정치는 나쁜 것’,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오해 때문에 정치와 정치인이 억울하게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하긴 동양철학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 사상도 저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를 뒷받침하는 정치사상은 유럽에서 여러차례의 혁명을 거치며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킨 끝에 서서히 형성되었습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 사상은 현재 우리에게 도저히 적용할 수 없는 잘못된 철학입니다.
둘째, 재벌·관료·언론 등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서 끊임없이 확산시키고 있는 ‘반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세력은 정치에 대한 목표를 비현실적으로 과도하게 설정해 놓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정치인들을 매도하는 고도의 술수를 쓰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귀찮은 존재이기 때문에 정치인들과 국민들 사이를 끊임없이 이간질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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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회 국회 본회의가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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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싫어한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바로 공격하지는 못한다. 대신 반정치주의를 동원하고 정당 가입과 투표 참여 등을 무가치한 일로 치부하고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거 없다고 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얻을 수는 있다. 이로부터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반정치주의는 분명한 권력 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보다 더 명확하게 반정치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폭로한 글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치인은 현실 세계에서 공동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도덕 선생님도 아니고 수도승도 아닙니다. 도덕 선생님이나 수도승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정치인은 우리처럼 욕망을 가진 인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인의 욕망을 인정해야 합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급여를 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명예욕을 충족시켜 줘야 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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