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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05 10:10 수정 : 2015.04.05 11:02

지난 2010년 1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시 한나라당의 단독 예산안 처리를 놓고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경호 기자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14) 정치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②
정치인은 싸움 잘하는 사람…불의 보고 침묵하는게 더 나빠
정당 내 계파 갈등도 오히려 발전과 집권의 동력이 될 수 있어

오늘 이야기는 마르틴 니묄러의 ‘처음 그들이 왔을때(First they came)’라는 유명한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어릴 때 부모님에게 “동생과 싸우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친구와 싸우는 것은 나쁘다”고 배웠습니다. 지각없는 어린이들은 형제나 친구들과 싸웁니다. 이유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쪽이 이깁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그런 싸움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며 모든 종류의 싸움을 회피하게 됩니다. 어떻게든 남들과 충돌하지 않아야 다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윗사람에게 대들면 손해라는 것을 체득하게 됩니다. 복종과 굴복을 배운 것입니다. 그런 성향이 심해지면 길거리를 지나다가 누가 억울하게 두들겨 맞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게 됩니다. 험한 세상에서는 조금 비겁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런 경향이 지극히 개인적 차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역사적 배경이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는지요?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복종과 굴복을 배웠습니다. 지배자나 그 마름과 싸우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1945년 해방 뒤 우리는 그런 집단 트라우마를 걷어낼 기회를 잡았습니다. 치열한 좌우 이념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시대에 이념논쟁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어떤 이념으로 세워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념논쟁은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외세에 의해 나라가 통째로 분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남한에서 수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몰려 죽었습니다. 북한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반동으로 몰려 처형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목숨을 희생하고서도 우리는 아직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와 함부로 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분단과 전쟁의 후유증입니다.

유럽에서는 수백년 동안 치열한 이념논쟁을 벌였습니다. 심지어 내전으로까지 발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를 토막내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공존의 문화가 형성되었습니다. 치열한 논쟁으로 차이를 확인하되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입니다. 똘레랑스입니다.

군이라는 특수조직이 있습니다. 군은 전쟁을 수행하는 조직입니다. 전쟁을 하려면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병사는 지휘관의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때로는 지휘관이 부하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1961년 박정희 장군이 이끄는 군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거의 30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습니다. 군 출신 대통령들은 명령과 복종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의사결정을 하면서 토론과 논쟁, 합의와 절충의 과정이 왜 필요한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치열하게 논쟁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비효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사석에서 “국회의원놈들” “기자놈들”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조선시대 당파투쟁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식민사관도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는 데 한몫 했습니다.

어쨌든 정치가 비효율적이고 귀찮은 것이라는 군 출신 대통령들의 잘못된 사고는 재벌, 관료 등 한국사회 주류집단으로 확산되어 갔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싸움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싸우는 것이 나쁜 것일까요? 누군가 정치인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토론과 논쟁을 어린아이 수준의 싸움으로 둔갑시키고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누가 그러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싸움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침묵이 나쁜 것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정치는 왕의 횡포에 맞서 시민들이 대표를 뽑아 의회를 구성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시민의 대표는 당연히 잘 싸우는 사람들이어야 했습니다.

정치인은 싸움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불의를 보고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보고 침묵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정치인 중에 운동권 출신이나 시민단체 출신들이 많은 이유를 아십니까? 그들은 젊은 시절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서서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정치인들은 출세 욕구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회악이나 불의를 참지 못하고 싸우던 기질이 그들을 정치의 길로 이끈 것도 사실입니다.

계파 갈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 나쁜 것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왜 그럴까요? 오랫동안 언론이 계파 갈등을 나쁜 것으로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질문이 가능합니다. 첫째, 계파는 나쁜 것일까요? 둘째, 갈등은 나쁜 것일까요?

아닙니다. 계파는 정치의 속성입니다. 계파가 없는 정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당을 의미하는 파티(Party)는 부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정당은 부분의 이익을 대표하는 조직입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정당 안에 다양한 계파가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갈등도 정치의 속성입니다. 사회 갈등을 조직화해서 해결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갈등이 없다면 정치가 필요없습니다. 두 어린이가 길에서 귤 하나를 가지고 서로 갖겠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끼어들었습니다. 왜 싸우는지 물었습니다. 한 어린이는 귤을 먹고 싶다고 했고, 다른 어린이는 껍질로 귤차를 끓여 어머니에게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그네는 귤껍질을 벗겨 속과 껍질을 각각 나누어 주었습니다. 정치의 역할이 이런 것입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끝나고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계파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친이-친박 갈등이 중요한 정치 뉴스였습니다. 갈등의 핵심은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알력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친이-친박 갈등으로 정권을 빼앗길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계파 해체를 선언하라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해체를 선언한다고 계파가 해체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실 친이-친박 갈등의 핵심은 밥그릇 나누기였습니다. 2007년 대선이 끝나고 친이계는 모든 자리를 독식했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친이쪽으로 줄을 댔기 때문에 친박쪽에 나눠줄 몫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 공천 싸움은 바다 위에 드러난 빙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세종시 백지화를 계기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친이명박-친박근혜 세력의 ‘밥그릇 싸움’이 국가의 미래와 효율성을 중시하는 현직 대통령과 국민과의 약속을 중시하는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의 ‘가치 논쟁’으로 순식간에 전환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숭고한 가치논쟁의 승자가 됐고 그 탄력으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좀 더 설명할까요? 이명박 정부 5년 내내 정치 지형은 ‘여당 이명박 대 야당 박근혜’ 구도였습니다. 정동영 정세균 손학규 등 야당 정치인들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유권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과 같은 정당의 후보가 아니라는 착각 속에 투표를 했습니다. 같은 정당이면서도 현직 대통령과 지속적인 갈등 관계를 맺음으로써 정권교체 효과를 누렸다는 얘깁니다.

사실 계파 갈등의 효용성은 지금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당원들은 지난해 7월 ‘친박 서청원’이 아니라 ‘비박 김무성’을 당대표로 선택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친박 이주영’ 대신 ‘탈박 유승민’을 원내대표로 선택했습니다. 그 덕분에 새누리당은 지금도 어느 정도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는 정치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서 중요한 정치뉴스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무너져도 새누리당 지지율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같은 ‘당정 갈등’ 또는 ‘당청 갈등’ 구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상명하복의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추는 것이 좋은 일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오히려 대통령과 여당의 이견, 각 계파간 갈등에서 국정을 이끌어 가는 힘이 나온다고 봐야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계파 갈등에 대해 얘기를 안할 수 없습니다. 야당 계파 갈등의 핵심은 ‘친노’입니다. 친노무현이라는 뜻의 친노는 악마의 주술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조중동과 종편에서 ‘친노 종북 386’ ‘친노 강경파’라는 말을 워낙 많이 써왔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친노집단이 야당의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새정치연합 비주류 인사들도 ‘친노 음모론’으로 당내 문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의원, 당직자, 학자 등 친노 인사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들이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한명숙 대표와 문재인 후보를 둘러싸고 다른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바람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문재인 대표 주위에 친노라고 할만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과거 친노 인사들은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들이 다시 뭉쳐 친노 계파를 복원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은 남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파가 다시 형성된다면 친문재인을 의미하는 ‘친문’이 출현할 수는 있겠지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과 부진은 친노라는 계파나 계파 갈등 때문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정치적 리더십이 붕괴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가 출현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정당 내부에 계파가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당내에서 계파 갈등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명박-박근혜의 세종시 백지화 논쟁처럼 ‘계파 갈등’이 ‘가치 논쟁’으로 승화하면 오히려 정치 발전과 집권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이제는 계파 갈등을 오히려 당의 진로와 집권 전략를 둘러싼 가치논쟁으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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