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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9대 국회 개원 당시 만들어진 국회의원 배지. 배지 문양은 지난해 한자 ‘國’ 대신 한글 ‘국회’로 변경됐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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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15) 정치인에 대한 오해와 진실 ③
국회의원들이 의원 늘리기 반대하는 이유
‘국회의원 정수 조정’ 설문조사, 의원 65% ‘유지’ 찬성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 위해서 증원 반대하는 측면도
한국일보가 지난 3월9일치 신문에 선거제도 개편안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의견을 조사해 기사로 실은 적이 있습니다. 전체 300명 가운데 74.3%인 223명이 응답했으니 응답률이 꽤나 높은 조사였습니다.
조사 항목 가운데 ‘국회의원 정수 조정’ 항목이 있었습니다. 65.9%가 ‘300명 유지’에 찬성했고, ‘확대’는 29.2%, ‘축소’는 4.9%였습니다. 정당별로 의견이 좀 달랐습니다. 새누리당은 81.5%의 압도적 다수가 정수 유지에 찬성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지 48.9%, 확대 50.0%로 유지와 확대가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원들이 의원 정수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일보 기자는 “정치불신에 대한 여론이 강한 마당에 국회의원 정원 확대를 주장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론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올바른 분석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측면도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입 장벽이 높을수록 장벽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장벽을 더 높게 쌓으려 드는게 세상 이치입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현직 국회의원들에게 지나치게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직 의원은 사실상 1년 내내 무제한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원외 정치인이 평소에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은 거의 없습니다. 원외 정치인이 조금만 방심하면 선거법 위반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원외 정치인이 일단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나면 그렇게 비판하던 선거법을 고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법조인들을 양산하는 로스쿨 제도를 도입할 당시 가장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던 사람들은 바로 현직 법조인들이었습니다.
현직 의원들이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것도 같은 원리일 것입니다. 그래도 좀 이상하지요?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현직 의원들에게 왜 불리할까요?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국회의원 정원을 36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지역구 의원을 240명, 비례대표 의원을 120명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비용을 감안해 국회의원 세비 등 ‘총유지비’는 동결하도록 했습니다. 의원 정수 증원에 찬성하는 정치학자들도 국민들의 반감을 고려해 총유지비를 묶는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총 유지비가 동결되면 국회의원 1인당 돌아가는 세비와 보좌진 숫자는 당연히 줄어들게 됩니다. 재선 가능성이 높은 현직 의원들로서는 자신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반길리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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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6일 국회에서 막을 올린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에 참가한 각 지자체와 단체의 부스를 돌아보던 중 청년유권자연맹 부스에서 바람직한 국회의원의 수를 묻는 설문에 351명 이상이라고 답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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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표가 지난 6일 국회의원 숫자를 4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한마디 했다가 난리가 났습니다. 정확히는 이렇게 된 일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회에서 개최한 ‘2015 다 함께 정책엑스포’ 행사장에서 문재인 대표가 한국청년유권자연맹이 진행한 스티커 설문조사에 참여했습니다. 적정 국회의원 수를 묻는 항목에서 ‘351명 이상’에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현장을 취재하고 있던 한겨레신문 이정애 기자가 왜 스티커를 거기에 붙였는지 물었습니다.
“우리 의원 수가 부족하다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인식되고 있지 않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400명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정당명부 비례대표를 하고, 직능 전문가를 비례대표로 모실 수도 있고, 여성 30%도 가능합니다.”
옆에 있던 유승희 의원이 ‘여성 30%’ 대목에서 환호했습니다.
국회의원 개인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텐데 당대표의 발언이다보니 파장이 일었습니다. 새누리당의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문제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려는 것 같아 유감”이라고 논평했습니다.
당내에서도 이견이 불거졌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우선은 국민들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2012년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의원 수 100명 축소’를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행사장에서 기자가 왜 40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수습에 나섰습니다.
“오늘은 그게 하나의 퍼포먼스였으니까요. 제가 가볍게 그렇게 한 것이고, 의원정수에 관한 제 나름의 생각이 있는데, 오늘은 그걸 말씀드리면 또 정책엑스포에서 관심이 넘어가게 되니까, 제가 다음에 더 준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퍼포먼스로 가볍게 말한 것입니다. 장난스럽게 한거죠.”
문재인 대표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마지막 말을 다시 문제삼았습니다. ‘장난스럽게’의 ‘장난’이라는 단어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다음날 김영우 수석대변인이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문 대표는 국회의원 숫자가 400명은 돼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것’이며 한 발 물러섰다고 한다. 야당의 정책 엑스포 행사 자체가 가볍고 장난스런 퍼포먼스임을 자인하고 말았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활동을 시작한 상황에서 야당 대표의 국회의원 정수 확대 발언은 장난으로 넘길 수 있는 가벼운 사안이 결코 아니다. 문재인 대표께서는 퍼포먼스 정치의 가벼움에서 벗어나 주시길 바란다.”
중앙일보는 8일치 신문에 ‘문재인 대표의 국회의원 400명 발언 경솔했다’는 제목으로 사설을 썼습니다.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겠습니다.
“유권자가 국회의원을 보는 눈은 싸늘하기 짝이 없다. 200가지가 넘는 온갖 특혜를 받으면서 서민이나 국가보다는 특권이나 지역의 편에 서려 한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문 대표의 발언은 정치개혁은 뒷전이고 밥그릇만 더 챙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국회의원 정수 축소’ 공약을 받아들여 조정 가능성을 공언한 바 있다. 이번 발언은 약속을 뒤집는 처사이기도 하다. 입이 가벼우면 ‘큰 정치’를 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는 최근 ‘심층진단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기획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사심예산, 날림입법, 청부입법, 특별교부세 등 국회의원들의 권한남용과 엉터리 의정활동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6일치부터 1면 기사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내가 280억 도로 유치”…그 길 옆엔 의원 땅 있었다
유병언·전두환법…표얻으려 몰아갔다
청부입법, 낙하산 자리 만드는 통로였다
‘정부 쌈짓돈’ 친박이 휩쓸었다
한겨레신문도 중앙일보 보도를 인용해 ‘어물전의 고양이 노릇 한 국회의원들’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습니다.
“물론 의원들은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지역구민의 숙원사업을 해결했을 뿐이고, 결과적으로 자신도 약간의 혜택을 보았을지 모른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 세금으로 모든 활동을 하는 국회의원들은 결과적일지라도 자기가 제기한 사안으로 스스로 이익을 보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걸 눈감기 시작하면 천문학적인 정부 예산과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은 입법 과정에서 언제든지 사적 이익을 끼워넣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 정치구조가 온존하는 이상, 국민은 항상 국회의원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란 인식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저는 중앙일보의 기획물이 훌륭한 기사라고 봅니다. 한겨레신문 기자로서 그런 좋은 기사를 쓰지 못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를 비판한 중앙일보 사설의 일부 논리는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중앙일보 사설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문 대표의 발언은 정치개혁은 뒷전이고 밥그릇만 더 챙기려 한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문재인 대표의 주장은 ‘밥그릇만 더 챙기는 행위’가 아닙니다. 의원 숫자가 늘어나면 당대표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갈까요? 총재가 공천권을 휘두르던 3김시대라면 이득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국회 전체의 권한과 국회의원 개인의 밥그릇을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일보 사설이 쓴 것처럼 국회의원이 200가지가 넘는 온갖 특권을 받고 있다면 오히려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고 의원 개개인의 특권을 줄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경찰 비리가 만연해 있다고 경찰 숫자를 줄이거나 동결할 수는 있을까요? 인구 증가에 따라 경찰을 적절히 늘려가지 않으면 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합니다. 경찰 비리는 비리 방지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할 별도의 문제입니다.
국회의원들의 권한 남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충돌 시스템을 도입해서 국회의원들의 사익 챙기기나 엉터리 입법을 막아야 합니다. 권한 남용과 의원 숫자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제대로 된 입법과 예산심의를 위해, 우리 사회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국회의원 증원이 필요하다면 국회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재벌, 관료, 보수언론이 반정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확산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확대되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받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정치는 3류도 아니고 4류”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의식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들은 정치의 영역 확대를 차단하기 위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도 가능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과 사람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권력의 단위가 1원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권력의 단위가 ‘한표’입니다. 따라서 정치에 대해 필요 이상의 반감을 품게 되면 자칫 자신도 모르게 자본을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국회의원 400명 증원 발언은 그의 진심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절반 정도가 의원들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들의 생각처럼 국회의원 숫자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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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회 국회 본회의가 열린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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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힘이 없습니다. 국회의원 증원 권한은 기득권자인 현직 국회의원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의원들의 다수는 국회의원 증원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찬성하는 의원들의 우선 관심사도 의원 숫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재선과 자신들이 소속한 정당의 정치적 이득입니다.
‘돈보다 사람 중심으로 사회질서를 짜야 한다’는 세력이 기득권 세력의 반정치 이데올로기와 일반 국민들의 정치혐오증을 넘어서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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