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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총리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베란다에서 굳은 표정을 지으며 밖을 살펴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m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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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17)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무총리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한계
개인 역량에 기대 총리 제도 유지할 것인지 고민해 볼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무총리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그 자리를 놓고 온 나라가 시끄러워야 하는가’라는 생각 말입니다. 차라리 국무총리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이제 4월27일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하면 이완구 국무총리는 국무총리 공관을 나와 국회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완구 총리의 신분이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나면 또 후임 총리 인선과 청문회를 놓고 온나라가 시끄러울 것입니다. 김용준-정홍원-안대희-문창극-이완구에 이어 벌써 여섯번째입니다.
얼마전 <한겨레> 기자들과 만난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이 “국무총리라는 제도 자체가 이제 수명을 다한 것 같다”는 조심스런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김세연 의원의 말에 꽤 일리가 있었습니다.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아는 얘기지만 대통령중심제에 국무총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좀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 국무총리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연구소 민주정책연구원의 한상익 연구위원이 2014년 6월 발표한 ‘이슈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국무총리제는 역사적 연원은 깊으나 현 제도 구성은 정치세력간 타협의 산물로 출발부터 이중적 특수성을 가졌다.”
“국무총리는 한국 정치체제의 특징인 ‘재상제’의 유산이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왕정을 유지해 오면서도 특정한 기능적 역할 없이 국왕을 보좌하되 국왕을 견제하며 조정을 통할하는 이중적 임무를 가진 독특한 ‘재상제’를 발전시켜 왔다. ‘재상제’의 전통은 개항 이후 내각총리대신으로 이어졌고 임시정부 역시 초기 대통령중심제를 택하면서도 행정권은 국무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국무원에 귀속시켰다.”
“1945년 광복 이후 공식적인 제헌기구인 ‘헌법기초위원회’와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의 갈등에 의해 현재 국무총리제가 형성됐다. 헌법기초위원회는 유럽식 의회정부제 헌법을 제안했으나 이에 불만을 품은 이승만의 하야 위협에 굴복해 단 하루만에 대통령중심제로 번복되었다. 유진오 등 헌법학자와 다른 정치인들의 반발에 국회의 임명 승인을 요하는 국무총리를 두는 것으로 타협하여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행정부의 제1장관이자 국회의 임명 동의, 또는 임명 승인을 요하여 대통령의 견제 역할을 기대하는 이중적 지위인 국무총리가 탄생했다.”
이에 따라 1948년 제정 헌법은 부통령과 국무총리를 동시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부통령은 이시영, 초대 국무총리는 이범석이었습니다. 제정 헌법의 국무총리 조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국회의원 총선거 후 신국회가 개회되었을 때에는 국무총리 임명에 대한 승인을 다시 얻어야 한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국무회의의 부의장이 된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승하여 행정각부장관을 통리감독하며 행정각부에 분담되지 아니한 행정사무를 담임한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의 국무총리들이 이승만 대통령을 ‘보좌’하면서도 ‘견제’하는 이중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국무총리와 국무총리서리는 이범석-신성모-장면-허정-이은영-장택상-백두진-변영태-백한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총리가 영 못마땅했던지 1954년 그 유명한 ‘사사오입’ 개헌을 하면서 국무총리 제도를 아예 폐지했습니다.
1954년 개정 헌법은 “국무원은 대통령과 국무위원으로 조직되는 합의체로서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한다. 국무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무위원 총수는 8인 이상 15인 이내로 한다.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위원에 임명될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무총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국무총리는 4·19 혁명으로 들어선 2공화국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내각책임제에서 국무총리는 정권의 중심이었습니다.
“국무총리는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의장이 된다. 국무총리는 법률에서 일정한 범위를 정하여 위임을 받은 사항과 법률을 실시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에 관하여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국무원령을 발할 수 있다. 국무총리는 국무원을 대표하여 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행정각부를 지휘감독한다.”
대통령이 아니라 국무총리에게 행정각부를 지휘 감독하는 내각수반의 지위를 부여한 것입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 장군은 3공화국을 다시 대통령중심제로 설계했습니다. 따라서 국무총리 제도를 다시 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1963년 개정 헌법에 국무총리 제도를 부활시켰습니다.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0인 이상 2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군인은 현역을 면한 후가 아니면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국무회의의 부의장이 된다.”
이승만이 없앤 국무총리 제도를 박정희는 왜 되살린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군출신으로 행정 경험이 전혀 없는 박정희로서는 자신과 장관들 사이에 중간단계를 하나 더 두고 싶어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부의 국무총리는 최두선-정일권-백두진-김종필-최규하 5명이었습니다. 1963년부터 1979년까지 16년 동안 대통령을 하면서 5명의 총리만 뒀으니 당시에는 총리 임기가 꽤 길었던 셈입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세력들은 국무총리를 앞세워 자신들의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신현확-박충훈-남덕우 총리로 4공화국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5공화국 헌법을 만들면서 국무총리 제도를 유지했습니다. 5공화국의 총리는 유창순-김상협-진의종-신병현-노신영-이한기-김정렬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 노태우 정부에서는 이현재-강영훈-노재봉-정원식-현승종 총리였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 시절 국무총리는 대체로 학식과 인품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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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회창 고건 이해찬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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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책연구원의 한상익 연구위원은 역대 총리를 순응형, 소신형, 관리형, 분담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순응형은 독재 정권이나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운영이 두드러지는 정부에서 주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국무총리의 역할 인식과 행사가 소극적인 국무총리들은 순응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 독재 시기의 국무총리들과 민주화 이후에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 이명박 정부와 현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대부분은 전자에 따른 순응형 총리로 분류된다. 김대중 정부의 이한동 총리, 노무현 정부의 한명숙 총리는 후자의 순응형 총리 사례다.”
“소신형은 비교적 강한 역할 인식과 명성을 가졌던 4공화국의 김종필 총리,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총리, 참여정부의 고건 총리 등이며, 대통령과의 갈등 속에 사임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관리형은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노태우 정부의 현승종 총리, 김영삼 정부의 고건 총리, 김대중 정부의 김석수 총리, 노무현 정부의 한덕수 총리,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총리를 이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분담형은 공동정부를 운영했던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총리, 그리고 최초이자 최후의 책임총리인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만이 이 유형에 속한다.”
어떻습니까? 명쾌하지요?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무총리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 총리 가운데 본인의 노력과 대통령의 배려로 이 한계를 극복한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개인 역량에 기대어 총리 제도를 유지할 것인지 고민해 볼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국무총리 제도를 없애려면 반드시 개헌을 해야 합니다.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우선 대통령중심제냐, 내각책임제냐, 분권형대통령제냐 등 권력구조를 놓고 대토론이 벌어질 것입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린 국무총리 폐지론은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중심제가 유지된다면 국무총리를 없앨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조건부 제안인 것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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