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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2 16:55 수정 : 2015.05.19 11:43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왼쪽)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지금까지 공갈치지 않았다. 사퇴하겠다. 지도부도 사퇴하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려하자 문재인 대표가 손을 뻗어 만류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0

새정치민주연합 민주정책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민병두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습니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강자였던 서울 동대문을 홍준표 의원에게 도전했으나 1만표 이상 차로 완패했습니다. 민병두 의원은 4년 동안 바닥을 훑었습니다. 19대 총선 ‘리턴 매치’에서는 거꾸로 민병두 의원이 6778표 차로 이겼습니다. 복수에 성공한 것입니다. 민병두 의원에게 패배한 홍준표 의원은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중앙정치무대에서는 퇴장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 민병두 의원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이런 극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민병두 의원이 내년 4월 20대 총선에 대해 극도로 비관적인 전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48석을 한나라당이 40석, 통합민주당이 7석, 창조한국당이 1석 차지했는데, 내년 총선에서 그 정도로 야당이 참패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 전망하는지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지난 10년간의 선거 결과를 분석했다. 어떤 경우에도 투표하는 여당 지지층이 야당 지지층에 비해 훨씬 두텁다. 콘크리트화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하거나 야당이 ‘메가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총선에서 야당이 이기기 어렵다. 수도권, 특히 서울은 17대부터 여야에 교대로 의석을 몰아주는 시계추 투표를 하고 있다.”

여론조사와 투표 결과 등 과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분석과 전망입니다.

서울 지역구 선거 결과

17대 - 열린우리당 32, 한나라당 16

18대 - 한나라당 40, 통합민주당 7, 창조한국당 1

19대 - 민주통합당 30, 새누리당 16, 통합진보당 2

민병두 의원은 그밖에도 비관적 전망의 근거를 여러가지 들었습니다. 그의 말을 자세히 전하지는 않겠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드러내놓기에는 조금 곤란한 얘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4·29 재보선 이후 수도권 의원들과 몇차례 만나서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와 현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수도권 의원들은 한결같이 내년 총선에서 야당이 불리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처음엔 엄살일지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민심의 흐름에 예민한 의원들의 얘기라 무척 생생했습니다.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문재인 리더십’ 향한 비주류의 대대적 반격

첫째,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입니다.

4·29 재보선 패배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표 주위 사람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선거 이후 책임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대표 자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결코 안된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거 패배 다음날 문재인 대표가 발표한 메시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민의 분노하는 민심을 대변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저희의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고 절체절명의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길게 보면서 더 크게 계획하고 더 크게 통합하겠습니다. 더 강하고, 더 유능한 정당이 되어 국민의 삶을 지키겠습니다.”

대표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얘깁니다. 선거 직후 분위기로는 비주류에서도 문재인 대표 사퇴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기류가 강했습니다.

그런데 주승용 최고위원이 5월4일 최고위원회에서 갑자기 문재인 대표 책임론을 거론했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메시지에 ‘그러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냐’고 치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후 8일에는 주승용-정청래 최고위원의 충돌, 유승희 최고위원의 ‘봄날은 간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동교동계의 박지원 의원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나가서는 안된다”고 뒤늦게 책임론을 제기했고, 전직 대표였던 김한길 의원도 문재인 대표를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의원들은 문재인 대표가 선제대응에 실패하는 바람에 비주류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선거 패배 직후 책임을 확실히 인정하고 자신의 거취를 상임고문단회의나 의원총회 등 적절한 회의체에 묻는 절차를 밟았더라면 비주류의 공세는 없었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아니면 전략홍보본부장과 사무총장 등 당직자들이라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최고위원회에서 반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최소한의 조처를 취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운명의 여신은 짖궂은 데가 있습니다. 시련을 안겨주고 그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살펴보곤 합니다. 선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4·29 재보선 패배 그 자체는 문재인 대표에게 위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재보선 이후 수습 과정에서 문재인 대표는 당대표로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비주류의 요구는 쉽게 말해 내년 총선에서 자신들의 지분을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는 비주류와 타협을 하거나 아니면 제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냥 쩔쩔매고만 있습니다.

앞으로도 당내 갈등을 지금처럼 방치한다면 내년에 문재인 대표는 공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4·29 재보궐선거에서 그랬듯이 ‘기계적인 경선’으로 현직 의원들이 대거 재공천을 받고 본선에서 젊은 여당 후보들에게 팡팡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의 부실한 리더십이 총선 패배로 이어진다는 얘기는 허황된 시나리오가 아닌 것입니다.

호남 이상 조짐에 분당 가능성도

둘째, 호남의 이상 조짐입니다. 4·29 재보선 이후 광주·전남에서는 문재인 때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호남의 이런 정서는 수도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야당은 ‘호남’과 ‘민주화 세력’과 ‘젊은 세대’의 연합으로 버텼습니다. 이제 그 한 축인 호남이 떨어져 나가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의원의 분석입니다.

“친노-비노의 갈등과 호남 민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집단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분당으로 갈 수도 있다. 수도권의 민심이 쪼개지면 지지자들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호남 의원들이 호남 민심을 지나치게 많이 거론한다. 수도권 의원들은 수도권 위기론으로 맞불을 놓는다.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가는 정말로 당이 깨질지도 모른다.”

기득권 누려온 공안세력의 기획

셋째, 분단체제에서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공안세력의 기획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세력이 크게 위축됐던 공안세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체제 수호를 명분으로 진보정당에 대한 분열과 제거에 나섰습니다. 통합진보당 내 일부 세력이 적절한 시기에 빌미를 제공했고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강제 해산됐습니다. 이른바 ‘종북기획’이 성공한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으로 출발해 계층에 기반을 쌓아가던 진보정당의 한 축이 와해됨으로써 야권 전체가 입게 된 피해는 숫자로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공안세력과 보수 기득권 세력은 앞으로도 보수야당과 진보정당에 ‘종북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라’는 요구로 끊임없이 정치적 타격을 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야권 연대가 가능할까요? 어려울 것입니다. 정치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종편’ 존재만으로도 여당에 유리한 환경 조성

넷째, 종합편성채널의 존재입니다. 2011년 12월1일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가 모태입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보수·친여 성향입니다. 종편은 내년 총선에서 여당 후보들에 유리한 정치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거기에 방송 특유의 시청률 지상주의와 제작비 사정 때문에 갈수록 정치를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정치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면 고연령층에 기반한 현재의 여당이 유리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

여당의 뛰어난 선거 역량

다섯째, 새누리당의 뛰어난 선거 역량입니다. 새누리당에는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도 있고, ‘선거의 왕자’ 김무성 대표도 있습니다. 최근 만난 새누리당 당직자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지는 바람에 정권을 빼았겼고 10년만에 되찾았다. 대통령 선거를 승자독식이라고 한다. 그거 진짜 맞는 말이다. 야당이 되니까 모든 것을 다 빼았겼다. 여당이 되니까 모든 것을 다 되찾아왔다. 이제 다시는 정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우리는 정권을 다시 잡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새누리당 당직자들의 태도가 대체로 이렇습니다. 좀 무섭지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새누리당이 재집권을 위해 끊임없이 개혁하고 변신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표를 많이 얻는 사람이나 정당이 나라를 맡아 운영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야당의 대대적인 각성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수도권 의원들이 내년 총선 전망을 어둡게 보는 다섯 가지 이유를 전해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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