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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4 12:13 수정 : 2015.08.14 13:17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특별기획전 개막 행사를 마친 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함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안내글을 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3
미국서 꺼내든 ‘진보좌파 역사관’ 비판
광복 70주년 앞두고 되풀이
아버지 친일행적은 ‘애국’으로 둔갑
‘좌-우 대결’ 프레임으로 역사도 왜곡
그렇게 해서라도 정권 꼭 잡고 싶은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열린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또 느닷없이 ‘진보좌파’와 ‘야당 일부’의 역사관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광복 70년의 우리 현대사는 일부 편향된 진보좌파세력이 얘기하는 것처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야당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친일, 변절, 독재가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지난 70년은 그들만의 조국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주장은 그릇된 역사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미래세대는 과거 매일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절대적 가난과 무지 상태, 우리는 안 된다는 자학적인 절망감이 팽배했던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미래세대에게 우리 역사를 치욕과 실패의 역사라면서 부정적 역사관을 심어주는 진보좌파세력도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순국선열과 기성세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실을 진보좌파세력도 함께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며 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70년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여정’이라고 치켜세우고 우리나라의 몇 가지 경제적 성과를 열거한 뒤에 꺼낸 말입니다.

표현은 과격하고 맥락은 없고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표현도 과격하지만 무엇보다 얘기의 맥락이 느닷없습니다. 최근 새누리당을 비롯한 정가에서는 물론이고 학계나 언론계에서도 현대사에 대해 특별한 논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언급한 “야당 일부에서 제기하고 있는 ‘친일, 변절, 독재가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지난 70년은 그들만의 조국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주장”이 어디서 나온 말인지 찾아보았습니다.

지난 2일 서울시가 주최한 여성독립운동가 전시회에서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축사 원고에 들어있던 표현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이종걸 원내대표는 “해방된 조국은 김구의 조국이 아니라 그들의 조국이었다는 말은 했지만 친일, 변절, 독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연합뉴스> 기자에게 밝혔습니다. 당사자가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는 사전원고를 집권여당 대표가 구태여 끄집어내서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달 26일 미국 워싱턴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내 월턴 워커 장군의 묘비에 절을 한 뒤 묘비를 닦고 있다. 연합뉴스
김무성 대표는 얼마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거의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한 일이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한 발언의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지금이 5000년 민족 역사의 최고 중흥기라고 본다. 진보와 좌파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죽었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동의하시느냐. 진보 좌파의 준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우리 새누리당이 진보좌파가 준동 못 하도록 노력하겠다. 이걸 공고히하는 방법은 새누리당이 더욱 선거에 이기는 것이다.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로 봐야 한다. 만약 대한민국이 좌파들의 주장대로 사회주의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종걸 원내대표의 축사가 나오기 며칠 전인데도 “진보와 좌파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죽었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동의하시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김무성 대표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내에서 누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죽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던가요? 제 기억에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기회주의 득세한 역사’ 주장에 파르르 떠는 이유

그렇다면 김무성 대표가 도대체 왜 이렇게 현대사 해석에 집착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 ‘기회주의 득세’ 주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요? 혹시 자신이나 가족의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 가지 의심스런 부분이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무성 대표의 선친은 해촌(海村) 김용주(1905~1985)입니다. 전남방직 창업주였던 인물입니다. 해방 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로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는 동명이인 때문에 친일파로 오해를 받았다는 것이 김무성 대표의 주장입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왼쪽)와 아버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
그런데 김용주는 1943년 경북도회 의원으로서 전선공직자대회(全鮮公職者大會)에 참석해 매우 심각한 친일 발언을 한 것으로 <대한매일> 등이 전하고 있습니다. 발언 내용을 얼마 전 <한겨레> 토요판에 김의겸 기자가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김의겸 기자의 말대로 이 발언만으로 김용주가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 공직을 맡았던 모든 사람을 친일파로 모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그 김용주가 최근 애국자로 집중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신문에 김용주 평전 광고가 등장했습니다. ‘<강을 건너는 산> 광복 70주년 기획, 새로운 역사인물 찾기 ① 해촌 김용주’입니다. 광고의 제목이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제거 명단중 포항지역 총살대상 1호였다. 현대사의 격랑 중 오해와 왜곡 속에 감춰진 한 애국자의 진실”이라고 달려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최근 이 책을 의원회관에 쌓아놓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김용주 평전’ 신문 광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유은혜 대변인이 13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아버지의 행적을 미화하지 말라’고 논평을 냈습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평전이 발간됐다. 일부 신문에 광고도 나가고 있다. 이 광고에 담긴 김무성 대표 부친의 발자취를 보면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항일운동가의 행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친일’ 김무성 아버지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있다던 한 언론사의 기사가 떠오른다. 기사에 따르면 광고와는 달리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은 친일 행적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한다.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을 지냈고,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로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을 펼쳤다고 한다.”

“이러한 부친의 행적에 대해서 김무성 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과 광고는 김무성 대표의 정치행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홍영표 의원이 조부의 친일행적을 사죄하는 글을 올려 많은 사람의 공감과 큰 울림이 있었다. 김무성 대표가 홍영표 의원처럼 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아버지의 삶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김무성 대표는 어제 ‘독립을 향한 여성 영웅들의 행진’ 전시회에 참석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 위에 무궁화를 달아드렸다. 광복 70주년의 광복절에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생각하면 여당 대표의 이러한 관심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에 앞서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스스로를 먼저 돌아보고 성찰하는 진실한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일간지에 실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의 평전 광고.
얼마나 더 야당에 색칠을 할 건가

김무성 대표의 최근 발언이나 김용주 평전 발간 등 모든 행위를 부친의 과거를 미화해서 자신의 대선 행보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김무성 대표의 진정한 의도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좌파진보-우파보수’ 대결 프레임은 매우 위험한 흉기라는 점은 반드시 지적하고 싶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자신을 비롯한 새누리당은 ‘우파보수세력’이고 현재의 야당은 ‘좌파진보세력’이라는 식의 이분법 프레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단국가로 참혹한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오랫동안 ‘좌파’나 ‘진보’는 곧바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빨갱이’, ‘좌익사범’, ‘용공’의 굴레를 쓰고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했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진보당수 조봉암은 사형을 당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희석됐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정치에서 ‘좌파’나 ‘진보’의 복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선거를 좌파 대 우파, 또는 진보 대 보수의 대결로 치르면 언제나 후자가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야당을 좌파진보로 보는 시각도 전혀 사실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는 길게 보면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이라고 봐야 합니다. 민주당은 보수야당이었던 한민당과 자유당에서 이탈한 정치인들의 결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뿌리를 1987년 창당된 평화민주당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보좌파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보수야당의 보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를 용공 세력으로 몰아간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일부 측근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해 현재의 야권 전체를 진보좌파로 분류하는 김무성 대표의 이분법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매우 악의적이기까지 합니다.

‘통큰 정치인 김무성’을 더는 볼 수 없는가

이유가 뭘까요? 현재의 집권세력을 우파보수로, 나머지를 좌파진보로 분류하는 프레임을 자꾸 사용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렇게 해야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유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망입니다.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출신으로 민주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의 순기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는 보기 드문 ‘통큰 정치인’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에도 김무성 대표를 좋아하는 의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김무성 대표가 어쩌다가 더러운 이념의 굴레를 야당에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인지, 그렇게 해서라도 꼭 정권을 잡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참 궁금합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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