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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18 15:59 수정 : 2015.08.28 07:46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모식이 열린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가 추모객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4
‘광복 70주년’…더 특별한 김대중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
“MB 때부터 악화된 남북관계…새로운 전기 마련했을 것”

“당신은 민족 통일입니다. 미움의 세월 서로 겨눈 총부리 거두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그 누구도 바라마저 않는 것, 마구 달려오는 하나의 산천입니다. 아 당신은 우리들의 평화입니다. 우리입니다.”

6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고은 시인이 지은 ‘당신은 우리입니다’라는 시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고은 시인의 시에 신형원 경희대 교수가 곡을 붙여서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신형원 교수와 포스트모던 음악학과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가 추도식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눈물을 닦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최근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남북의 대치 상황 때문에 노래가 더 청중의 가슴을 울린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이 18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렸습니다. 현충관 입구에는 여러 개의 조화가 놓여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정의화 국회의장, ‘국무총리 외 국무위원 일동’ 명의의 조화가 눈에 띄였습니다.

김대중 6주기 추도식장 찾은 정치인들
한목소리로 DJ 햇볕정책 그리워해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과 김홍업 전 의원, 김홍걸씨 등 유족들, 권노갑 김옥두 박지원 한화갑 남궁진 이훈평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추도식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 한광옥 국민대통합추진위원장도 참석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김원기 임채정 이해찬 김한길 안철수 등 상임고문과 전직 대표들이 대부분 참석했습니다. 국회의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추도식은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회로 엄숙하면서도 간결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추모위원장 자격으로 추도사를 했습니다. 평소 남북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정의화 국회의장은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내용으로 추도사를 채웠습니다.

“대통령께서 열어 놓으신 한반도 평화의 길, 통일의 길이 컴컴한 안개 속에 갇혀버린 것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북한은 일방적으로 표준시를 변경하고 비무장지대에서 지뢰 폭발사고를 일으키는 등 한반도 평화에 역행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광복 70주년인 올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듯 통일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가 21세기 문명의 시대를 리드하고 진정한 선진강국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도 우리는 반드시 통일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대화와 교류, 인도적 지원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는 가운데 오고 가고, 그리고 돕고 나누면서 작은 신뢰를 꾸준히 쌓아가야 합니다.”

“저 역시 남북간 대화채널이 꽉 막힌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난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 국회의장 회담’을 공식 제안한 바 있습니다. 남북 국회의장 회담이 성사된다면 남북 국회 본회담과 당국간 회담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영상이 방영되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김대중 전 대통령 특유의 약간 쉰 듯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목이 메어 10초 정도 연설을 멈췄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고통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2000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처음 만나는 장면, 노벨평화상을 받는 장면이 이어졌습니다. 추도식장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습니다.

추모의 노래와 종교의식이 끝나고 김홍업 전 의원이 유족 대표로 인사를 했습니다. 김홍업 전 의원의 이날 인사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김홍업 전 의원은 자신이 6·25 직후 목포 방공호에서 태어난 사람인데 60대 중반이 되도록 남북이 긴장 상태에 놓여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혔습니다.

“아버님이 남북관계에서 쌓은 수많은 성과가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90이 넘은 어머님이 북한을 방문했다. 앞으로도 진정성 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아버님은 민족의 장래와 화합을 위해 평화통일에 평생을 바쳤다. 이제 여러분이 아버님의 빈자리를 메워 주기 바란다. 제2, 제3의 김대중이 속히 나오기를 바란다.”

추도식의 마지막 순서는 이희호 이사장의 헌화였습니다. 이희호 이사장은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올라가 남편의 영정에 꽃을 바치고 말없이 돌아섰습니다. 좀 쓸쓸해 보였습니다. 이희호 이사장이 바라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국 정치 이야기를 <한겨레>가 연재하고 있습니다.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정치인들을 기자들이 붙잡았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불굴의 의지로 우리나라 민주화를 만드신 그런 큰 지도자고 또 남북화해의 길을 여신 분이기 때문에 그러한 공을 더 크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은 ‘윤상현 의원이 오픈 프라이머리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여기서 그런 말 하지 말라. 추도식에 와서”라며 자리를 떴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현충관 앞에서 간단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김무성 “DJ는 남북화해의 길을 여신 분”
정의화 “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륜 그립다”
문재인 “DJ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6주기 추모식이 열린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씨가 김 전 대통령의 영정에 헌화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대중 대통령님은 통일의 문을 여는 대통령으로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님은 우리나라 정치 사상의 폭을 넓혀 주고 또 균형을 갖게 해주신 분이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정치이념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나라가 됐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님은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대북정책과 동북아 외교에서 우리의 입장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문을 열어 나갔던 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장 부족한 점이 바로 그 점이라고 생각한다. 서거 6주기를 맞아 고 김대중 대통령님의 경륜이 새삼 그립다.”

묘역으로 이동해 헌화를 마친 문재인 대표가 다시 기자들을 찾았습니다.

“아까 제가 빠뜨린 걸 추가하겠다.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 특별한 광복절인데 이 분단 70주년 광복절을 이렇게 허망하게, 남북관계에서 아무런 새로운 전기를 만들지 못하고 이렇게 넘어가는 것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할까 그렇게 생각했다.”

기자들이 남북 대치 국면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은 명백히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다.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이며 남북간 불가침 합의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그에 대해 우리가 단호하게 대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하면서 이런 식의 위기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그런 노력도 필요한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도 큰 위기가 다 있었다. 번번이 북한의 도발로 만들어진 위기 상황인데 그런 위기 상황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박정희 정부 7·4 공동성명, 노태우 정부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 정부 6·15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 10·4 선언을 했다. 박근혜 정부도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단호하게 대응한다고 해서 강경과 강경으로 맞서서 위기를 증폭시켜 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지원 의원도 분향을 마치고 기자들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 살아 계신다면 오늘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개선시킬까, 어떻게 지도력을 발휘할까 생각하게 된다. 오늘의 현실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을 존중하는 생각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

DJ 살아있었다면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 때 남북정상회담을 했을 뿐 아니라, 퇴임 이후에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박지원 의원 말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나빠지지 않도록 뭔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1994년 북한 핵 위기 때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의 담판으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던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 평양을 방문해 남북 정상회담을 취재했던 기자입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6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동교동 비서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일기를 작은 책자로 펴낸 일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좋아하는 몇 대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2009년 1월7일)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2009년 1월15일)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2009년 2월7일)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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