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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9 16:55 수정 : 2016.01.06 15:02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 60주년 기념식에서 뿌리당원들에게 감사장을 수여한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40. 세 원로의 절규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합니다. 헌법 전문이 그렇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유래는 어디일까요? 정당법을 기준으로 하면 2014년 3월26일 민주당(대표 김한길)과 새정치연합(대표 안철수)의 합당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1955년 9월18일 창당한 민주당(대표최고위원 신익희)을 자신들의 정치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1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창당 60년 기념 행사를 했습니다. 국회 의원회관 로비와 본청 지하복도에 창당 60년 사진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행사장에 가 보았습니다.

“서로의 주장이 다를수록 타협하고 절충해서 타협점을 찾든가 또는 자기의 주장을 설득함으로써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국회 본청 지하복도 전시장 출발 지점에 써 있는 해공 신익희의 글입니다. 글을 읽으며 해공이 60년 뒤 지금의 갈등을 미리 내다보고 그런 말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사진으로 보는 민주 60년’ 사진집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1만원을 주고 한권 샀습니다. 에코백과 티셔츠도 팔고 있었습니다.

대회의실 안에는 방송기자 출신 박광온 의원의 굵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국민의례를 한 뒤 참석자들을 소개했습니다. 외빈인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가장 먼저 소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정당의 큰 행사에는 다른 정당에서 축하사절이 참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날 행사에 새누리당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새누리당이 행사에 불참한 이유는

짐작되는 바가 있었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지난 10일 “새정치연합이 정통 야당이라며 60주년 행사를 하는 것은 한마디로 역사적 왜곡”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장우 대변인은 지난 17일 현안 브리핑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60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고 야당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남의 정당 족보에 시비를 거는 이유가 뭘까요?

“정통 야당의 중심 산맥은 통일민주당을 이끌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더 정확하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정통 야당의 뿌리다. 1987년 두 전직 대통령은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이후 상도동계의 통일민주당이 와이에스(김영삼)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 동교동계가 탈당하여 디제이(김대중)를 대선후보로 추대하면서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게 됐다. 하지만 이 평화민주당은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으로 명맥이 이어지다가 2003년 친노파는 디제이 중심의 야당을 파괴하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이장우)

그럴듯하지요? 법적으로 따지면 새누리당의 이런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도동계 출신인 김무성 대표나 새누리당은 이런 주장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등 상도동계는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및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과 3당합당을 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집권세력과 아무런 명분도 없이 합당을 한 사람들이 뒤늦게 야당의 정통성에 대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새누리당의 주장은 새정치민주연합을 구성하는 ‘디제이 세력’과 이른바 ‘친노파’를 이간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정당의 역사는 두 차례의 큰 단절이 있었습니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주도한 5·16과, 1980년 전두환 합수부장이 주도한 군사쿠데타 때문입니다. 법적으로 따지면 지금 새누리당은 전두환 세력이 창당한 민주정의당(민정당)의 법통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을 배출했으니 두 차례 군사쿠데타의 혈통을 새누리당이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는 셈입니다.

창당 행사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행사 준비위원장인 전병헌 의원이 단상에 올라 인사를 했습니다. 제가 앉은 객석 뒷줄에서 어느 나이든 당원이 “제발 싸우지 말라”고 넋두리를 했습니다.

민주 60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물이 방영되었습니다. 야당 정치지도자들의 모습이 차례차례 화면에 등장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아나운서의 음성이 귀를 파고 들었습니다. 객석 곳곳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차례차례 축사를 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축사를 했습니다. 인삿말을 마무리하면서 “사진전을 보니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오래된 정치 구호가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단결, 또 단결하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운데)가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창당 60주년 기념식에서 임채정·김원기 상임고문, 이종걸 원내대표, 전병헌 최고위원(왼쪽부터)와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어서 권노갑 김원기 임채정 상임고문이 차례차례 단상에 올랐습니다. 세 사람은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 겪고 있는 내부갈등을 질책하고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세 사람의 연설을 여러차례 들었지만 이날처럼 절박하게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세 원로는 피를 토하듯 연설했습니다.

“우리 민주당이 제1기 장면 총리, 제2기 김대중 대통령, 제3기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제4기 민주당 대통령을 탄생시켜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주당이 단결해야 한다. 하나가 돼야 한다. 분열해서는 절대 안 된다. 반드시 내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되고 2017년에는 우리가 바라는 정권교체를 해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권노갑)

“오늘 우리는 과거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웠던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군사 독재의 후예인 박근혜 정권은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군, 검찰, 정부, 심지어 일부 언론까지도 장악해 반대세력을 분열시키고 우리 야당을 옥죄어들고 있다. 똘똘 뭉쳐도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아집과 독선에 빠져 위기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총선을 맞으면 필패할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정권을 수구 특권세력에게 헌납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장기집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갈등하고 분열하는 모든 사람은 어느 편이든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반성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유언으로 남긴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70%를 내주고서라도 함께 손잡고 통합해 나가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 당내 각 계파뿐만 아니라 예전 동지들과도 손잡고 나가야 수구특권세력의 재집권을 막을 수 있다고 호소한다.”(김원기)

“근대화는 동학혁명에서 시작됐다. 국민은 살기 위해 정권을 바꾸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 뒤 일제강점기의 민족해방운동, 4·19 혁명,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은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었다. 그 꿈을 이루고 세상을 바꾼 것이 바로 우리 민주당 정부였다. 한국사에서 민주정부 10년은 빛나는 금맥이었다. 우리 당은 아직도 역사에 빚지고 있다. 이 세상을 바꿀 힘을 갖고 있는 정당은 우리 새정치민주연합뿐이다. 정권교체는 우리의 사명이다. 이를 위해 당이 단결하고 지도부가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를 배신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셔 역사를 바꾸자”(임채정)

피를 토하는 듯한 세 원로의 당부를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국회의원, 당직자, 당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궁금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야당 60년의 역사를 알고 계십니까? 나이가 아주 많은 분들이나 정당사를 공부한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워낙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정치부 기자인 저도 야당 60년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습니다.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에서 엮은 <김대중과 한국 야당사>라는 책,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60년 자료집’을 이용해 우리나라 야당사를 간략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1954년 이승만의 4사5입 개헌이 촉발한 야당 창당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 의도가 노골화된 사건이 1954년 4사5입 개헌이었습니다. 현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 규정 적용을 배제하는 헌법 개정안을 억지로 통과시킨 사건입니다. 이승만 독재 영구집권의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당시 의회에는 야당이라고 할 만한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미군정기에 준여당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던 한민당은 정부수립 이후 권력에서 배제되자 1949년 2월 신익희의 대한국민당, 지청천의 대동청년당과 합당해 민국당을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한민당과 민국당은 우익정당이었습니다.

1955년 창당한 민주당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 신익희-장면 후보를 지명했으나, 신익희 후보가 그해 5월 급서해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조봉암의 대결로 치러졌다. 한겨레 자료사진
4사5입 이후 민국당과 무소속 의원 등 60명은 개헌 파동 대책을 협의하기 위해 원내교섭단체를 결성하고 ‘호헌동지회’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호헌동지회는 단일야당 결성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호헌동지회는 조봉암 의원 등의 참여 여부를 놓고 보수 성향의 자유민주파와 진보 성향의 민주대동파로 갈려서 싸웠습니다. 처음부터 이념 논쟁을 벌인 셈입니다. 결국 보수 성향 인사들의 뜻이 관철됐습니다. 창당대회에서는 신익희를 대표최고위원, 곽상훈 백남훈 조병옥 장면 4인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했습니다.

민주당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 신익희-장면 후보를 지명했습니다. 신익희 후보의 급서로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조봉암의 대결로 치러져 이승만 대통령이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통령 선거에서는 장면 후보가 이기붕 후보를 꺾고 당선됐습니다. 1958년 5월 4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자유당 126석에 이어 79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서울 부산 등 대도시에서 강세를 보였습니다.

‘1기 민주당’ 분열…5·16 쿠데타로 사라져…굽이굽이 흘러흘러

민주당은 처음부터 구파와 신파의 파벌 갈등이 있었습니다. 호남 지주에 기반을 두고 한민당과 민국당을 거쳐 민주당에 입당한 세력을 구파, 1955년 9월 창당 당시에 새로 참여한 세력을 신파라고 불렀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구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파였습니다.

민주당은 4·19 혁명으로 집권했지만 구파와 신파의 갈등으로 분열했고 그 와중에 5·16 쿠데타를 맞고 사라졌습니다.

1963년 다시 출현한 민주당은 1965년 민중당으로, 민중당은 1967년 신민당으신이로 신설 합당했습니다. 신민당은 박정희 정권의 공화당에 맞선 야당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과 겨뤘습니다. 그러나 신민당은 박정희의 유신체제로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결국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5·18 쿠데타로 해산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은 신군부가 만든 민주정의당(민정당), 그리고 관제야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한당, 국민당이 있었습니다. 그 뒤 김영삼 김대중 등 야당 지도자들은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신한민주당(대표 이민우)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1987년 5월 통일민주당이 창당됐지만 양김의 단일화 실패로 87년 11월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평민당)이 만들어졌습니다.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합당이 이뤄졌습니다.

평민당은 이후 신민당으로 바뀌었다가 이른바 ‘꼬마민주당’과 합당해 1991년 9월 민주당이 됐습니다. 1995년 정계복귀를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었습니다.

2003년 10월27일 열린 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대회 모습. 당시 임시지도부는 김원기 의원(가운데)과 이태일 전 동아대 총장(왼쪽), 이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 등으로 꾸려졌다.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2003년 11월에는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2007년 대선을 거치며 야권은 대통합민주신당, 중도통합민주당 등으로 이합집산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2월 통합민주당(대표 손학규 박상천)으로 합당했습니다. 2008년 7월 당명은 다시 민주당으로 바뀌었습니다.

2011년 12월 민주당과 시민사회가 합쳐 민주통합당이 만들어졌습니다. 민주통합당은 2013년 당명을 민주당으로 다시 바꾸었다가 2014년 3월 새정치연합(대표 안철수)과 합당을 해서 오늘의 새정치민주연합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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