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6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혁신전당대회 개최를 거듭 제안하고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하지않겠다"고 말한 뒤 인사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49
서울시장 후보 양보→대선후보 양보→신당창당 포기→탈당?
문재인의 한지붕 가족끼리 연대하자는 ‘문안박 연대’도 생뚱
문안을 여쭐 수 없는 ‘양초의 난’에 야권 지지자들 부글부글
안철수 의원이 6일 오전 10시30분 국회 기자실에서 회견을 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의 회견은 5일 오후 4시에 예고됐습니다. 장소도 1주일 전의 의원회관 간담회실이 아니라 본청 기자회견장이었습니다.
당연히 기자들은 탈당까지 포함하는 ‘중대선언’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의 이날 회견은 일단 혁신전당대회를 거듭 촉구하는 선에서 그쳤습니다.
“문재인 대표께 말씀드립니다. 현재의 체제와 리더십으로 당의 분열과 갈등을 잠재울 수 있습니까? 지금 우리 당으로 총선 돌파와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정치 리더십은 누르고 억압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짓누를수록 불신과 갈등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화합은 멀어져 갈 것입니다. 지금은 기득권에 연연할 때가 아닙니다. 혁신전당대회를 거부한 12월3일 결정을 재고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저는 회견의 내용보다도 안철수 의원의 표정과 어투에 더 관심이 끌렸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차분한 사람입니다. 버럭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날 회견에서는 평소와 달리 얼굴이 붉고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잔뜩 화가 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저 안철수의 미래나 문재인의 미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야당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정권을 바꾸어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저는 저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함께 우리 당을 바꿔나갈 생각이 없다면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 더 이상 어떤 제안도 요구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묻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낡은 정치를 바꿔달라는 시대 흐름과 국민의 요구에만 충실할 것입니다.”
남은 선택지는 탈당 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표가 전당대회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안철수 의원에게 남은 선택지는 탈당뿐입니다. 안철수 의원과 가까이 지내는 당직자에게 ‘탈당하는거냐’고 물었습니다. “외통수다. 다른 선택이 없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한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지난 몇년동안 안철수 의원의 행적이 떠올랐습니다. <한겨레> 김보협 기자가 안철수 의원의 정치 행보를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2009년 6월17일 문화방송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후부터입니다. 그 전에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국회의원 출마, 청와대 수석비서관, 장관직 등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2006년에는 한나라당이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한 일도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도 못하기에 거절했다. 실무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2009년 12월18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랬던 그가 정치를 염두에 두기 시작한 것은 2011년이었습니다. 법륜 스님, 시골의사 박경철씨 등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정치를 통한 사회적 기여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8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고 10월26일 보궐선거가 확정되자 안철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검토했습니다. 하지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히자 9월6일 20분가량의 짧은 대화로 조건없는 양보를 선택했습니다. 조건없는 양보는 그에게 ‘참신한 대선후보’라는 새로운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등에 업고 그는 2012년 9월19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가 실패할 위기에 처하자 11월23일 후보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습니다.
그 뒤 2013년 4월24일 노원병 재보선에 무소속으로 당선됐고 2013년 11월28일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를 출범시켰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창당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 3월26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합당에 전격 합의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서울시장 후보 양보를 ‘첫번째 철수’, 대선후보 양보를 ‘두번째 철수’, 신당창당 포기 및 민주당과의 합당을 ‘세번째 철수’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만약 안철수 의원이 실제로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을 결행한다면 4년여에 불과한 그의 짧은 정치역정에 ‘탈당’이라는 오점이 또 하나 찍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탈당을 하지 않고 주저앉을 명분도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든 ‘네번째 철수’라는 비판을 받게 될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이날 회견에 대해 문재인 대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안철수 의원의 회견 30분 뒤인 오전 11시부터 국회 대표실에서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의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비정규직 구직수당제 등 4대 개혁안을 제시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비정규직 기자회견을 마치고 대표실 옆에 붙어 있는 작은 회의실에서 안철수 의원의 회견문을 받아서 읽어봤지만 별다른 코멘트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즉답을 내놓으면 안철수 의원을 자극할 수 있어 답변을 미룬 것인지, 아예 무시하고 ‘나의 길’을 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의원의 혁신전당대회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안철수 의원이 탈당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중재안을 마련할 중진이나 의원들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연합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각자 자리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런데 참 궁금합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의 관계는 왜 이렇게 꼬이는 것일까요. ‘혁신’이라는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도 손을 잡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선 두 사람을 이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내 주류는 안철수 의원을 비판하고 비주류는 문재인 대표를 비판합니다. 주류와 비주류의 상호 비판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보다 더 가혹하고 야멸찬 경우가 많습니다.
당 밖에도 분열을 부추기는 여론이 만만치 않습니다. 친여 및 기득권 성향의 논객들은 공공연히 갈라설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야 여당에 어부지리가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야당 성향의 논객들도 내놓고 갈라서라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재인의 협량한 정치력과 무책임”
안철수 의원의 멘토로 알려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12월5일치 <동아일보>에 칼럼을 썼습니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12.3 독주선언으로 한국정치, 특히 야당정치에 일대 격변이 불가피해졌다. 제1야당 지도부의 협량한 정치력, 강고한 기득권, 골수에 밴듯한 흑백논리, 철저한 무책임이 거대한 후폭풍, 민심이반을 불러오고 있다.”
“만일 이런 상태로 계속 가면 유권자의 탈바꿈이 괴력을 발휘할 것이다. 어차피 내년 총선은 틀린 것이고 다음 대선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 한다는 가치판단의 돌연변이가 넓게 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신당을 둘러싼 정치지형이 크게 변할 것이다. 야권재편의 회오리 바람이 불 것이다.”
‘제1야당을 일단 무너뜨려야’라는 표현이 무척 자극적입니다. 한상진 교수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후보와 이른바 친노세력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던 사람입니다.
한상진 교수는 지난 11월18일 ‘천정배 신당’ 창당 선포식에 참석해 “야권이 분열되는 것 아닌가, 집권여당에 어부지리를 주는 것 아닌가 일말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를 변혁시키는 데는 전진과 후퇴의 방법이 필요하다. 개혁을 시작하면 그 안에 기득권, 타성, 고정관념, 패권세력이 생긴다. 그런 체재로 더 나아가기 어렵다.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해야 한다”고 축사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의 대변인을 지냈던 김기만 전 청와대비서관은 얼마전 ‘안철수에게 묻는다. 문재인 결단하라’는 글을 썼습니다. 안철수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안철수, 혁신위원장 안맡고 뒤에서 딴소리”
“문재인 대표가 지난 5월 안 의원에게 혁신위원장을 제안했다. 그건 왜 맡지 않고 뒤에서 딴소리를 그리할까.”
“혁신을 전매특허, 독점계약한듯이 말하지만 그의 수사 속에서 혁신의 어떤 구체성도, 진정성도 발견되지 않는다. 혁신의 실체가 없다. 자신이 볼 때 김상곤 정도는 우스운가. 혁신위원장의 노력은 시쳇말로 뭣도 아닌가. 구상유취 행태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실망 넘어 분노가 치민다. 새누리보다 더 두려운 분들이 당 내부에 득실득실하다.”
두 사람의 글에는 증오와 저주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문재인 안철수 불화의 근본 원인을 주변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치인은 결국 자신의 행위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지는 존재들입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매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당내에서는 두 사람을 ‘양초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 사태를 ‘양초의 난’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양초의 난’을 분석하려면 시시비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사태가 한창 진행중이고 자칫하면 분석이 정쟁에 휘말려 들어갈 수 있으니 비겁하더라도 당분간은 양비론에 그치겠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애초 자신의 리더십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른바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이를 거절하자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않고 총선을 준비해 나가겠다”고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문안박 연대는 왜 제의한 것일까요?
모든 정치적 제안에는 상황에 대한 사전 분석과 기획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문안박 연대는 사실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이상한 제안입니다. 연대는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인데 안철수 의원이나 박원순 시장은 같은 정당 소속입니다. 문안박 연대를 하면 최고위원들의 권한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안철수 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문 대표께 묻습니다. 그 각오와 결기로 전당대회에서 국민과 당원께 재신임을 묻겠다는 선택은 왜 하지 못하십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려면 문재인 대표가 지난 9월 혁신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나왔을 때 찬성을 했어야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11월29일 혁신전당대회를 제안하고 다음날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사흘 뒤 신문에는 안철수 의원이 김치공장에서 김치를 맛있게 받아먹는 사진이 크게 실렸습니다. 어느 당직자가 그 사진을 보고 “당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데 호남에 가서 자신의 대통령 선거 운동만 하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판을 했습니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 안에는 문재인 안철수 어느 한쪽 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직자나 국회의원 중에 문재인 안철수 어느 편도 아닌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내 정치에서 중립지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몇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 결국 이번 일로 문재인도 망가지고 당도 망가질 것이다. 큰일이다.”
“안철수 의원은 2017년 대통령 선거 욕심밖에 없다. 정당정치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전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
두 사람에 대한 실망과 비난이 지금 야당 사람들과 지지자들 사이에 급속히 번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지금 당장은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두 사람의 판단과 선택에 새정치민주연합과 야권 전체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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