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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16 18:00 수정 : 2015.12.17 17:39

안철수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생각에 잠겨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51]

생각할수록 궁금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을 도대체 왜 탈당한 것일까요. 표면적으로 보면 그가 제안한 ‘혁신전당대회’를 문재인 대표가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꼭 탈당까지 해야 했을까요? 당 대표까지 했던 사람이 그 정도 이유로 탈당을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는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런 결론을 내린 이유가 뭘까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둘 다 그동안 혁신을 강하게 외쳐온 사람들입니다.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끼리 협력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헤어진 진짜 이유가 뭘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단서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15일 부산을 방문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두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을 만들었을 때, 연합에는 ‘외연을 넓히고 많은 사람들과 손잡는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목적이 같은 사람과 손을 잡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와이에스도 3당합당을 통해서 집권하고 군부척결 했잖습니까. 그리고 디제이도 제이피와 연합해서 집권하고 노무현도 정몽준과 손을 잡아서 집권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절대로 야당은 집권한 적이 없습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힘들것입니다. 그래서 큰 흐름에서 생각을 공유하고 조그만 부분들은 다를 수 있잖습니까. 그래서 목적이 같은 사람이 함께 가는 게 연대인데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새누리당이라고 배척을 합니다. 그러면 절대로 집권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면 집권할 수도 없지만 집권해서도 안됩니다. 그렇게 배척하면서 어떻게 집권이 가능하고 집권해서 나라를 잘 경영할 수 있겠습니까. 국정운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안철수 의원은 문재인 대표가 자신을 새누리당이라고 한 것 때문에 탈당을 했다는 얘깁니다. 안철수 의원은 탈당 선언 전날 밤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새정치민주연합 박병석 원혜영 노웅래 의원에게 “생각이 다르다고 어떻게 새누리당이라고 그러느냐”고 문재인 대표를 겨냥해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안철수 의원에게 새누리당이라고 했을까요. 자료를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9월2일 김상곤 혁신위원회의 혁신은 실패했다고 규정하며 △낡은 진보의 청산 △당의 부패 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10월11일 회견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제목이 ‘야당이 집권하려면 ② - 낡은 진보를 청산하고 정권교체의 길로 나가야 합니다’였습니다. 다소 길지만 내용이 워낙 간절해 낡은 진보에 대한 비판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안 의원이 회견 도중 눈을 감은 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저는 우리 당에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왜 운동권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성장에 무관심한가? 우리는 왜 국가안보에 철저하지 못하다는 오해를 받는가? 우리는 왜 60대 이상의 국민에게 지지를 잃었는가? 우리는 왜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지 않고 당은 노쇠화되고 있는가? 새누리당은 40% 이상의 국민 지지를 받는데 왜 우리 당의 지지는 정체되어 있는가?”

“이러한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당의 문제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배타적입니다. 자신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흑백논리로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증오심으로 막말정치와 퇴로 없는 강경투쟁을 일삼습니다. 다른 부분이 많더라도 공통점이 있다면 포용하는 덧셈정치가 아니라, 대부분이 같더라도 하나만 다르면 적으로 돌리는 뺄셈정치에 익숙합니다.”

“선거에서 패배를 반복해도 원인을 밖에서 찾습니다.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실패에는 관대하지만 상대의 실패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비판하고 혹독하게 책임을 물고 늘어집니다. 명백한 이중잣대입니다. 전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타협을 거부하고 한 걸음도 나가지 않는 근본주의에 빠져있습니다. 배타성과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독단적 사고는 비리에 대한 온정주의로 나타났습니다.”

“둘째, 무능합니다. 과도한 이념화는 민생문제의 소홀을 가져왔습니다. 양극화, 빈부격차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국민들을 일으켜 세워드리지 못했습니다. 성장을 말하지도 못했고 분배를 강조했지만 실질적 성과를 내는 데는 부족했습니다. 사회적 약자 편임을 강조했지만 일자리, 복지, 교육 등 삶의 문제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민생보다는 정치투쟁에 골몰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셋째, 불안합니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정치행태와 정책기조가 안정감과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2012년 총선에서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한미 FTA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스스로 부정했습니다. 북한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온정적이고 무비판적인 입장은 안보의식에 의구심을 불러 왔습니다. 핵이나 무력도발, 인권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지난 대선 때 통진당 후보와의 연대는 얻은 표의 몇 배에 해당하는 표를 잃어버린 큰 실책이었습니다.”

“넷째, 비전이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상징적 인물을 영입하여 정치쇄신과 경제민주화 의제를 선점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당은 민주정부 10년 이후 새로운 발전담론도 제시하지 못했고 개혁의제 경쟁에서도 뒤쳐졌습니다. 인식과 행태는 정체됐습니다. 세상은 변화하는데 변화된 정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상 말씀드린 당의 네 가지 모습을 대표적인 ‘낡은 진보’로 규정합니다. 낡은 진보는 진보가 아닙니다. 낡은 진보는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새로운 진보는 스스로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부단한 검증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결과에 대한 투철한 책임 윤리가 도덕적 기조를 이루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계승은 극복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두 분 전직 대통령은 우리 당의 뿌리이고 자산이며 자부심입니다. 그 정신을 계승하려면 국민의 정부 2기, 또는 참여정부 2기가 아니라, 새로운 정부, 더 나은 정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2007년 이후 우리 당은 포스트 디제이-노무현시대의 새 비전과 역량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두 분의 명망에 기대려는 경향성이 너무나 많습니다. 언제까지 돌아가신 두 분 전직 대통령의 지지가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하며 당권을 호소하고 정권교체를 말할 것입니까? 이것이 진정한 진보성이며 진정으로 두 분의 정신을 계승하는 길입니까? 두 분의 성과 위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권창출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역량으로 집권비전을 제시해야 가능합니다. 저는 이것이 두 분 전직대통령의 뜻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의 지도적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든 분들의 성찰과 각성을 요구합니다. 저도 반성하고 성찰하겠습니다.”

안철수, ‘무임승차론’ 반격할 키워드로
‘낡은 진보 청산’ 내세우며 새 활로 모색
문재인은 ‘안철수, 낡은 진보 청산론’을
새누리당이 새정치 규정한 프레임으로 비판

어느 한쪽만 옳다고 일도양단하기 힘들지만
둘 다 ‘새정치를 진보정당’ 규정 이해안돼
기득권세력이 ‘기득권 대 야당’ 정치구도를
‘보수 대 진보’몰고 간 노림수에 말려든 것

안철수 탈당은 2012년 문재인 밀었던 무당파층
새정치 지지 철회했거나 철회할 거란 사실이다

내용을 보면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이 회견은 안철수 의원이 자신의 생각을 오랫동안 정리해서 작심을 하고 한 발언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문재인 대표의 답변이 10월19일치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서 나왔습니다.

“‘낡은 진보’라는 말이 상당히 마음에 걸린다. 낡은 행태가 있고 그것을 청산하자는 것이 본뜻이라면 100% 공감한다. 진보는 역사가 변하고 시대가 발전하면서 스스로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멈춰 있다면 진보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낡은 진보란 일종의 형용모순이다. 진보는 분배와 복지, 성장과 안보에서도 새 비전을 내세우는 진보다. 낡은 진보라는 것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서 우리 당을 규정짓는 프레임이다.”

“또 하나는 ‘김대중·노무현을 극복하자’는 말이다.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100% 맞다. 당연한 말을 왜 하는가에 의문이 있다. 역대 정부 잘못에는 아무 말 하지 않으면서 왜 그나마 훌륭한 두 정부를 극복하라고 하는가. 폄훼, 부정적 인식이 담겨 있다. 내가 노무현이 아닌데도 끊임없이 나한테 ‘노무현을 극복하라’는 것은 ‘노무현은 잘못했다. 너는 극복 못했지. 넌 그래서 안된다’는 프레임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자부심이다. 안 전 대표의 본뜻과 무관하게 상대 프레임에 이용될 수 있음을 꼭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에서 우리 당을 규정짓는 프레임’이라는 표현이 문제였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새누리당이라는 말에 왜 이렇게 민감할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2012년 문재인 대표와 야권의 대선후보를 놓고 경쟁을 할 당시 ‘무임승차론’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독재정권과 싸울 때 안철수 너는 호의호식했다’는 문재인 대표 지지자들의 비판을 받은 것입니다.

저도 2013년 5월 칼럼에서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세 사람을 평가하면서 각각 문재인은 권력의지 부족, 안철수는 무임승차, 박원순은 대중성 부족이 약점이라고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 본인도 무임승차론에 대해 “나도 이제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한 일이 있습니다.

그랬던 안철수 의원이 3년 뒤인 2015년 정치적 화두로 ‘낡은 진보 청산’을 전면에 들고 나온 것입니다. 안철수 의원의 낡은 진보 청산론은 무임승차론에 대한 대대적 반격인 셈입니다. 과거에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 과거에 정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야당 지지로 끌어들여야 정권교체가 가능하고, 그런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바로 안철수 자신이라는 논리입니다. ‘낡은 진보 청산’은 안철수 의원의 새로운 정치적 활로였던 것입니다.

‘합리적 개혁 대 기득권 수구’의 새로운 정치구도를 짜야 한다는 안철수 의원의 논리, 자신은 과거 민주화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 확장성이 있다는 안철수 의원의 논리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낡은 진보 청산’이라는 표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들고 나온 구호가 ‘낡은 정치 청산’이었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전국을 돌며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완전히 새로운 정치로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낡은 정치 청산’은 과거의 3김 정치, 지역에 기반한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젊은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런 주장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습니다. ‘낡은 정치 청산’ 프레임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13년 뒤 안철수 의원이 ‘낡은 진보 청산’으로 자신과 자신의 비서실장 출신 당대표를 비판할 것이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상이나 했을까요?

아무튼 낡은 진보 청산을 해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안철수 의원의 주장과, 낡은 진보 청산은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의 프레임이라는 문재인 대표의 주장은 어느 쪽이 더 맞는 말일까요. 저는 둘 다 맞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의원이 기존 야당세력의 단독집권은 불가능했고 연합정치를 통해서만 집권이 가능했다고 본 관찰은 옳은 것입니다.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낡은 진보 청산이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의 프레임이라는 문재인 대표의 말도 옳은 것입니다. 12월15일치 <조선일보>에 실린 류근일 칼럼의 제목은 ‘낡은 진보 청산해야 한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친노 패권주의, 이런 ‘철밥통’ 노조, 이런 꽉 막힌 운동권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 물음에 그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난 안철수 의원은 ‘낡은 진보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안철수 스타일’에 대해선 ‘늘 간만 보고 다닌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박원순-문재인-친노(親盧)-486운동권 앞에선 그는 너무나 어설펐고 순진했다. 그에겐 콘텐츠가 없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낡은 진보’로는 안 된다고 한 그 부분만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은 있으나 이제야 뭘 좀 깨친 것 같은 표현이었다.”

“오늘의 야권과 과격파 쪽에서 부는 흙바람은 결국 그들의 세계관-역사관-정치경제학의 ‘낡은 틀’ 때문이다. ‘야당을 어찌할 것인가?’ ‘노동계를 어찌할 것인가?’ ‘진보를 어찌할 것인가?’는 따라서, 그들의 ‘낡은 진보’를 대치할 ‘합리적 진보’ 그래서 보편적 상식과 정서에 맞는 야당을 새로 짜는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낡은 진보’와는 쌍방향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안철수, 김한길, 조경태, 황주홍, 유성엽, 박준영의 말을 귓등으로라도 들을 것 같은가? 어림도 없다. 그들 ‘낡은 진보’는 ‘합리적 진보’를 개량주의라고 매도하던 극렬파였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그들의 생각은 지엽적으로는 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류근일 칼럼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안철수 의원의 낡은 진보 청산론과 이 칼럼의 논지가 일치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대한민국 기득권 연합의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안철수 의원의 ‘낡은 진보 청산’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프레임이라는 문재인 대표의 반격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논쟁을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고 어느 한쪽은 전적으로 그른 주장이라고 일도양단하기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안철수 의원이나 문재인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진보세력이나 진보정당이라고 규정하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진보세력이 아닙니다. 진보정당도 아닙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는 혁신세력과 진보정당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진보정당이 있습니다. 정의당입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한 통합진보당이 진보정당이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냥 야당입니다. 이념 노선을 굳이 따지자면 중도보수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제 정책이나 안보 정책 어디를 봐도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저는 현재의 야당을 자꾸 진보세력이나 진보정당, 또는 좌파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의 음모적 시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그냥 기득권 세력입니다. 보수의 핵심 가치는 법치와 도덕성,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그런데 지금 집권세력과 주변에서는 그런 가치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기득권 세력이 ‘기득권 대 야당’의 정치 구도를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환치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도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에 대해 깊이 성찰했던 사람입니다. 퇴임 이후 <진보의 미래>라는 책도 썼습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학구적 성찰은 높이 평가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세력을 보수와 진보로 분류한 그의 시도는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논쟁을 야당 정치인들과 야당 지지세력의 역사와 연결시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1987년 김대중 총재가 창당한 평화민주당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이 1990년 3당합당으로 여당에 흡수됐기 때문입니다.

평화민주당 당원들 중에는 호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8년과 1992년, 1995년까지 여러 차례 재야인사들을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면서 학생운동권 출신의 이른바 386세대를 수혈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제이를 ‘존경’하는 호남 사람들과 자유분방한 운동권 출신들은 기질이 많이 달랐지만 마찰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디제이의 카리스마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랬던 새천년민주당에 새로운 유권자층이 대거 유입된 것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가 되면서부터였습니다. 호남이나 재야인사들에 비해 노무현 지지자들은 매우 젊은 계층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당직자와 국회 보좌진으로 대거 밀려들었습니다. 이들은 호남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난닝구 빽바지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했다가 다시 합쳐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야당에는 또다시 새로운 세력의 유입이 이뤄졌습니다. 기존 정치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던 무당파층이 ‘안철수 현상’을 타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입니다. 문재인 대표가 2012년에 받은 1469만표에는 과거 무당파층이었던 유권자들도 꽤 포함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 안철수 의원의 탈당 사태는 문재인-안철수 두 정치인의 결별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처럼 2012년에 ‘문재인 지지’로 모아졌던 야당 지지 유권자 계층의 결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무당파층이 새정치민주연합과 문재인 대표에 대한 지지를 이미 철회했거나 앞으로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깁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야당의 이런 역사적 맥락까지 고민을 했다면 지금처럼 결별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의 이번 선택이 야당의 재기불능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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