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선대위원장과 부위원장들이 방송사 출구 조사 결과 한나라당이 압승한 것으로 발표되자 밝은 표정으로 선거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윗쪽 사진). 9일 오후 서울 당산동 통합민주당사에서 총선 출구조사결과를 손학규 대표등이 지켜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김태형 기자 khan@hani.co.kr
|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52]
야당에 난리가 났습니다. 비주류는 탈당을 무기로 문재인 대표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표 퇴진과 탈당을 왜 연계하는 것일까요? 탈당했다가 문재인 대표가 퇴진하면 다시 돌아오려는 것일까요? 그렇게 야권통합과 정권교체를 갈망한다면 탈당이 아니라 아예 정치를 그만두거나 불출마 선언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 지경에 이르도록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문재인 대표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탈당하겠다는 비주류를 향해 나갈테면 나가라고 맞대응하는 것이 과연 당대표가 취할 태도일까요? 문재인 대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누구의 조언을 듣고 있는 것일까요?
정치는 상대적입니다. 야당이 무너져내리는 동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자기 다리를 꼬집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누리당입니다.
새누리당에서 2016년 4·13 국회의원 선거 목표 의석을 180석에서 200석으로 상향조정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고 제가 얼마전 기사를 썼습니다. 몇 분이 그 근거에 대해 궁금해 했습니다.
목표 상향조정 기류는 새누리당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새누리당 실무 당직자들 중에 고참들이 있습니다. 당 공채 출신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입니다. ‘처음에는 여당에서 따뜻하게 지내다가 10년간 야당을 하면서 길거리로 쫓겨나 굶어죽을 뻔했다’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국회의원을 못해도 정권을 빼앗기면 절대로 안 된다’는 교훈을 체득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이 김무성 대표를 탄탄하게 떠받치고 있습니다. 최근 김무성 대표가 “야권은 분열하고 있다. 우리 여권이 분열하지 않고 단결된 상태로 가면 선거는 무조건 이긴다”고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이들의 분석과 전망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무시무시하지 않습니까?
야당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지휘해본 경험자 한 사람도 내년 선거를 ‘여당 압승, 야당 몰락’으로 예상했습니다. 아니 걱정했습니다. 여러가지 변수와 민심의 흐름이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2007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게 500만표 차이로 참패했습니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인제 후보는 겨우 16만표(0.68%)를 얻었습니다. 일패도지(一敗塗地)였습니다.
2007 대선결과에 좌절한 야당지지자 투표 포기
2008총선 서울 지역구 48개중 한나라당이 40석
여당 압승, 야당 참패한 민심흐름과 매우 흡사
|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4.9 총선을 58일 앞둔 11일 국회에서 통합선언을 한 뒤 악수하고 있다. 양당 통합은 지난 2003년 9월20일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 내 신당파가 `국민참여통합신당‘으로 국회에 교섭단체를 등록하면서 옛 민주당이 공식 분당된 뒤 꼭 4년5개월만이다. 연합뉴스
|
충격에 휩싸인 야권은 2008년 4·9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합당에 나섰습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합쳐 통합민주당(대표 손학규)이 만들어졌습니다. 4·9 선거는 의석이 가장 많은 통합민주당이 기호 1번, 두번째로 많은 한나라당이 기호 2번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결과 통합민주당은 겨우 81석으로 주저앉았습니다. 참패였습니다.
반면에 ‘돌아온 여당’ 한나라당은 지역구 131석, 비례대표 22석으로 무려 153석을 차지했습니다. 잘 기억이 안 나시죠? 당시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도 마치 선거에서 진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던 이유는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의 성공 때문이었습니다. 친박연대(대표 서청원)는 지역구 6석, 비례대표 8석으로 모두 14석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무소속 당선자 25명 가운데 12명이 친박무소속연대였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당시 친박무소속연대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2008년 선거 결과>
한나라당 153(지역 131+비례대표 22)
통합민주당 81(66+15)
민주노동당 5(2+3)
자유선진당 18(14+4)
친박연대 14(6+8)
창조한국당 3(1+2)
무소속 25(친박무소속연대 12)
숫자로만 얘기하니까 감이 떨어지지요? 당시 서울의 지역구는 48개였습니다. 한나라당이 40개, 통합민주당이 7개, 창조한국당이 1개를 차지했습니다. 통합민주당 당선자는 추미애 최규식 이미경 박영선 전병헌 김희철 김성순 7명뿐이었습니다. 손학규 김덕규 김근태 유인태 신기남 정동영 등 거물들이 모두 나가 떨어졌습니다. 서울의 48개 선거구 1·2위 득표자 명단과 득표수, 득표율을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서울 선거구별 1·2위 득표수 및 득표율>
종로구 손학규(민) 31,530(44.76) 박진(한) 34,113(48.43)
중구 정범구(민) 14,146(27.60) 나경원(한) 23,609(46.07)
용산구 성장현(민) 24,077(29.39) 진영(한) 47,533(58.03)
성동갑 최재천(민) 28,794(44.17) 진수희(한) 33,455(51.32)
성동을 임종석(민) 26,718(46.67) 김동성(한) 29,533(51.58)
광진갑 임동순(민) 22,123(35.77) 권택기(한) 33,255(53.77)
광진을 추미애(민) 34,854(51.29) 박명환(한) 24,914(36.66)
동대문갑 김희선(민) 24,014(32.86) 장광근(한) 39,127(53.54)
동대문을 민병두(민) 27,187(41.07) 홍준표(한) 37,618(56.83)
중랑갑 유정현(한) 27,419(40.51) 이상수(무) 21,101(31.17)
중랑을 김덕규(민) 27,870(35.56) 진성호(한) 30,983(39.54)
성북갑 손봉숙(민) 30,736(36.80) 정태근(한) 46,260(55.39)
성북을 김효재(한) 38,322(47.25) 신계륜(무) 23,577(29.07)
강북갑 오영식(민) 25,378(44.61) 정양석(한) 27,429(48.21)
강북을 최규식(민) 26,391(43.50) 이수희(한) 22,949(37.83)
도봉갑 김근태(민) 31,335(46.16) 신지호(한) 32,613(48.04)
도봉을 유인태(민) 32,777(45.94) 김선동(한) 37,228(52.18)
노원갑 정봉주(민) 26,251(37.62) 현경병(한) 29,010(41.58)
노원을 우원식(민) 38,104(44.09) 권영진(한) 43,150(49.93)
노원병 홍정욱(한) 34,554(43.10) 노회찬(진) 32,111(40.05)
은평갑 이미경(민) 33,638(45.82) 안병용(한) 26,993(36.77)
은평을 이재오(한) 38,164(40.81) 문국현(창) 48,656(52.02)
서대문갑 우상호(민) 28,185(43.49) 이성헌(한) 33,463(51.64)
서대문을 김영호(민) 20,056(32.08) 정두언(한) 36,931(59.07)
마포갑 노웅래(민) 28,523(45.38) 강승규(한) 30,203(48.05)
마포을 정청래(민) 30,050(37.88) 강용석(한) 36,447(45.94)
양천갑 이제학(민) 25,654(26.82) 원희룡(한) 49,847(52.11)
양천을 김낙순(민) 35,606(47.17) 김용태(한) 38,092(50.47)
강서갑 신기남(민) 41,833(41.28) 구상찬(한) 50,244(49.58)
강서을 노현송(민) 35,918(37.40) 김성태(한) 45,284(47.15)
구로갑 이인영(민) 38,878(45.40) 이범래(한) 39,804(46.48)
구로을 박영선(민) 34,783(47.30) 고경화(한) 29,542(40.18)
금천구 이목희(민) 37,378(43.55) 안형환(한) 37,720(43.95)
영등포갑 김영주(민) 34,163(42.52) 전여옥(한) 35,151(43.75)
영등포을 이경숙(민) 26,603(39.73) 권영세(한) 38,537(57.56)
동작갑 전병헌(민) 38,014(44.86) 권기균(한) 36,891(43.54)
동작을 정동영(민) 36,251(41.50) 정몽준(한) 47,521(54.41)
관악갑 유기홍(민) 45,368(44.03) 김성식(한) 48,133(46.72)
관악을 김희철(민) 43,235(46.50) 김철수(한) 38,618(41.53)
서초갑 박찬선(민) 14,796(22.80) 이혜훈(한) 48,682(75.01)
서초을 고승덕(한) 48,224(60.26) 조남호(무) 15,670(19.58)
강남갑 김성욱(민) 17,251(18.34) 이종구(한) 61,047(64.90)
강남을 최영록(민) 17,231(18.71) 공성진(한) 57,721(62.69)
송파갑 정직(민) 23,006(35.77) 박영아(한) 39,626(61.61)
송파을 장복심(민) 22,421(35.55) 유일호(한) 39,089(61.98)
송파병 김성순(민) 40,623(46.96) 이계경(한) 38,397(44.39)
강동갑 송기정(민) 23,854(28.82) 김충환(한) 49,437(59.73)
강동을 심재권(민) 30,147(39.44) 윤석용(한) 41,652(54.50)
2008년 4·9 야당 참패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2007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좌절한 야권 지지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46.1%였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 하락세>
12대/1985 2.12/84.6%
13대/1988 4.26/75.8%
14대/1992 3.24/71.9%
15대/1996 4.11/63.9%
16대/2000 4.13/57.2%
17대/2004 4.15/60.6%
18대/2008 4.9/46.1%
19대/2012 4.11/54.2%
|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당 창당 계획을 발표한 뒤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의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자 이제 2016년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신당창당으로 야당 지지층이 외연을 확장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 신당에는 지금 호남 출신 탈당자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습니다.
안철수 신당에 호남 출신 탈당자들 대거 몰려
야권의 외연확장보다 야권 분열 마이너스 효과
유권자들 정치환멸 확산땐 투표율 하락 못막아
좀더 두고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대로 가면 안철수 신당의 출현이 ‘야권 전체의 외연 확장’이라는 플러스 효과보다는 ‘야권 분열’이라는 마이너스 효과가 훨씬 더 클 것 같습니다. 여기에 야권 분열로 인한 유권자들의 환멸감이 확산되면 투표율이 2008년처럼 뚝 떨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새누리당에는 친박세력과 과거 자유선진당 세력이 모두 들어와 있습니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 결과에서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박무소속연대를 합치면 ‘153+18+14+12=197’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간단한 산수입니다. 내년 선거 결과 새누리당 200석은 새누리당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얼마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김무성 대표의 공언대로 국회선진화법은 무력화됩니다. 대통령이 지시하는대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행정부 독주’, ‘제2의 유신’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새누리당 안에 대통령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형성될 수 있을까요? 지금 분위기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국회에서 대통령의 독주를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을 잃어버린 야당은 장외로 나서 전면투쟁을 벌일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200석을 차지하면 어떻게 될까요? 힘이 생기면 써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개헌을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면 실제로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야당 국회의원들 중에도 내각책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헌이 과연 될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큰 변수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개헌을 하더라도 권력구조는 미국처럼 4년 중임 대통령제여야 한다고 여러차례 밝혔습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이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이름으로 권력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회로 이동시키려 할 경우 극구 반대할 이유가 있을까요? 최근 청와대가 실무적으로 개헌 가능성과 타당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여권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20대 국회에서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을 추진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 그리고 야당 일부 의원들이 동조할 경우 실제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새누리 180석 이상 얻을땐 국회선진화법 무력화
행정부 독주와 이에 맞선 야당 장외투쟁 예상
개헌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가면 보수 영구집권
그러나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쳐야 이뤄집니다. 따라서 두 가지 변수가 더 있습니다.
첫째, 국민들이 갖고 있는 정치혐오증입니다. 한국사회 기득권 세력이 퍼뜨린 반정치주의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국회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가 지금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갖는 것을 국민들이 찬성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둘째, 경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하는 것으로 보면 장기불황을 피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경제가 곤두박질을 치는데 과연 권력구조 개편을 할 수 있을까요?
어쨌든 분권형 대통령제로 권력구조가 바뀌면 우리나라 정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현재의 정치지형을 살펴보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여권은 어떤 경우에도 분열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일본처럼 보수 기득권 세력의 영구집권 시스템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좀 끔찍하지요?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