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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02 11:03 수정 : 2016.01.06 14:57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오른쪽)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30일 오전 도봉구 창동성당에서 열린 고 김근태 전 의장 4주기 추도미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54]

2016년으로 넘어오기 이틀전인 2015년 12월30일 김근태 전 의원 4주기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창동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에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참석했습니다. 두 사람은 미사 전에 잠시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 그대로입니다.

“신당 작업은 잘 돼갑니까?”(문재인)

“예, 지금 시간은 촉박하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연말연시 다 없을 것 같습니다.”(안철수)

“총선 시기에 맞추려면 시간이 별로 없죠?”(문재인)

“네네,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선거구제 획정도 끝나지 않아서. 지금 어떻게 진행돼가고 있습니까?”(안철수)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면서 잠시 말이 얽혔다가 대화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종교가 가톨릭이신가요?”(문재인)

“저희 아내와 딸도 견진까지 다 받았습니다.”(안철수)

“우리 안 대표는요?”(문재인)

“하하하. 저는 가톨릭학생회 출신입니다.”(안철수)

그리고 두 사람은 미사를 드리러 성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가톨릭학생회 출신이지만 종교가 없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추모미사에 이어 진행된 추도식에서 문재인 대표는 매우 인상적인 추도사를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배님. 우리는 선배님이 없는 네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이곳에 오는 내내 선배님과의 추억들, 특히 고문 후유증 때문에 힘들어하시던 모습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지금, 선배님의 부재가 우리를 더욱 춥게 만듭니다.”

“김근태 선배님은 온 평생을 민주주의를 위해 살았습니다. 스스로 투쟁으로 쟁취하고 지켜온 민주주의 안에서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나라를 꿈꾸셨습니다. 선배님이 없는 네 번째 겨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국민의 희망은 절망으로, 꿈은 포기로 바뀌었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무능과 무책임으로 점철된 정부, 고통 받는 국민 위에 군림하는 불통의 정부만 있을 뿐입니다.”

“선배님의 마지막 호소를 아프게 기억합니다. 2012년을 점령하라. 선배님은 병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호소하셨습니다. 그 간절했던 호소는 선배님의 당부를 받들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과 함께 여전히 우리들 가슴에 뜨겁게 살아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김근태가 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미완의 희망을 우리가 함께 해내야 합니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선배님이 우리에게 남긴 말씀입니다. 선배님은 이미 이기는 방법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 더 혁신하고 더 단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 큰 통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더 강한 야당, 더 단단한 야당이 되어 박근혜 정권에 맞서 이겨야 합니다. 그것이 선배님의 간절한 희망을 이루어드리는 길일 것입니다.”

“선배님.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내년 추도식 때는 총선 승리의 소식을 자랑스럽게 보고드리고 2017년의 희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선배님의 유언 집행을 더 지체하지 않겠습니다. 김근태 선배님. 편히 쉬십시오.”

추도식 사회를 맡은 최상명 우석대 교수가 안철수 의원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에게 추도사를 부탁했지만 안철수 의원은 사양했습니다. 박용만 회장은 고인과의 특별한 관계를 회고하는 내용으로 짤막한 추도사를 했습니다. 추모미사가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가는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에게 기자들이 따라붙었습니다.

문재인 대표는 ‘안 의원과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색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앞으로 좋은 경쟁을 해 나가야 하고 언젠가 또 합치기도 해야 하고 길게 보면 같이 가야 할 사이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기자들과 이런 문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추도사에서 야당 통합을 말했다.

“제 원칙은 이미 얘기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까 추도사는 부탁을 받았습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기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사양했습니다.”

-사양하신 이유는?

“저보다 더 많은 노력들을 한 분들이 거기 많이 계신데 저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인영 의원이 앞으로 오라고 했는데 거절한 이유는?

“이인영 의원이 제 앞에 앉으시는게 맞다고 봤습니다.”

-어떤 의미인가?

“고 김근태 고문께선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 정신을 기리고 그리고 계승할 책무가 있습니다. 또 인재근 의원님 사실 처음 선거에 나서실 때 제가 도와드렸습니다. 당시 유일하게 제가 두 분을 도와드렸습니다. 제가 노원 선거 때 당이 다른데도 제가 무소속이었는데도 직접 오셔서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지금 현재는 같은 복지위 소속입니다. 그런 깊은 인연들이 있습니다.”

-오늘 성찬을 안했는데.

“예 저는 영세는 받지 않았습니다. 가톨릭학생회 출신으로 거기서 제 아내도 만나고 했습니다.”

-미사에서 김근태 정신 얘기가 많이 나왔다. 신당 추진과 맞닿아 있을까?

“아까 신부님을 포함해 여러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김근태 전 고문님, 그 생각과 정신을 기리고 꼭 후배들이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표가 김근태 정신을 얘기하며 통합을 강조했다.

“통합에 대해서는 제가 벌써 세번에 걸쳐 말씀드렸습니다.”

-문재인 대표에게 선거구 협상을 물었는데?

“사실 지금이 소선거구제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몇달전부터 간절하게 바랐지만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밤새워서라도 여야가 협의해서 소선거구제를 조금이라도 바꾸길 바랍니다. 지금 바꾸지 못하면 20대 국회에서 현재 의원 300명 전원이 바뀌더라도 똑같은 모습이 됩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정의화 국회의장님과 여야 대표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주길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김근태 4주기에 만난 문재인과 안철수
어색한 짧은 대화 뒤 미사집전 함께해

“여기 올 자격없다”는 싸늘한 눈길엔
김근태 민주대연합론과 반대된 행보 때문
그건 바로 연합의 기본이 양보에 있는데
문재인·안철수는 서로를 불신하고 있고
두 지지자들 ‘안빠’ ‘문빠’ 부르며 증오

김근태가 말한 민주대연합론의 참뜻을
두 의원은 뭐라고 응답할까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각자 차를 타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추도식 참석을 추모객들이 꼭 반긴 것만은 아닙니다. 추모미사에 참석했던 한 국회의원은 “당을 분열시킨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의원 모두 김근태 정신을 말할 자격이 없다. 오늘 여기에 올 자격도 없다”고 싸늘하게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김근태 정신이 무엇일까요?

최상명 교수가 최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정치인 김근태는 ‘민주대연합론자’이다. 대연합은 힘을 합쳐 보다 큰 적을 이기는 정치전략이다. 그래서 대연합은 약한 소수자의 희망이 될 수 있다. 또 대연합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양보와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대연합이 필요한 국면, 대연합을 말하는 정치인들은, 늘 그 전제에서 ‘나는 예외다’였다. 김근태만이 예외를 스스로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결국 김근태만이 양보하고 희생했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주장하면서 싸운다. 그러나 김근태는 ‘나’를 희생하면서 싸웠다. 정권을 내어주는 일이 그동안 우리 국민의 피와 땀, 열사들의 숭고한 죽음과 희생으로 일구어 온 민주주의를 일순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김근태는 양보하고 희생했다. 그리고 대연합을 이루는 다수의 뜻에 복종하고 헌신했다. 민주주의자의 길이었다.”

김근태 전 의원의 정치 노선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은 1985년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전기고문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재야의 지도자였던 김근태 전 의원은 1992년 ‘민주대연합을 통한 민주정부 수립’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대연합 후보(김대중)는 패배했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은 그 뒤에도 민주대연합을 통해 냉전적 수구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민주대연합론은 김영삼 정권에 면죄부를 주고 3당합당을 사후적으로 합리화시켜준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3당합당을 거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민주대연합론을 비판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태도를 바꿨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근태 전 의원을 통해 정치란 교조의 원칙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기반을 잃지 않으면서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김근태 전 의원은 2007년 재집권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스스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대선주자 연석회의와 대통합신당 창당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최상명 교수의 글에 나온대로 민주대연합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양보와 희생’입니다. 연합을 하려면 서로 양보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같은 정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서로를 불신했습니다. 물론 따져보면 둘 중에 더 잘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했고 야권은 지금 분열하고 있습니다. 추모미사에 참석했던 국회의원이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을 강하게 비판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민주화의 대부’로 불렸던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의 4주기 추모행사가 3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돌아갔지만 김근태 전 의원 4주기 추모행사는 이어졌습니다.

오후 1시30분 마석 모란공원 김근태 묘역에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기동민 전 서울시 부시장이 사회를 봤고 유인태 의원이 제례를 집전했습니다. 홍익표 의원이 축문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원식 의원과 이동진 도봉구청장이 추도사를 했습니다. 우원식 의원이 김근태 전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가 추모객들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근태 형님.

올해도 어김없이 형님의 벗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계절이 바뀌듯 남은 벗들의 삶도 조금씩 변해가지만,

형님을 향한 애끓는 심정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형님.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형님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한데,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그 목소리가 귓전을 맴도는데,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러나 요즘 제게는 형님의 선한 눈빛이 매서운 서릿발처럼 느껴집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는 꾸짖음이 되어 돌아옵니다.

박근혜 정부의 광폭한 노동개악에 맞서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는데도,

국민이 을로 전락한 세상을 바꾸고자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를 비롯한 이 땅의 서민과 점점 더 굳건히 손잡고 가려 하는데도,

어쩐지 형님이 바라던 국민들의 편안한 삶은 험난해져 가기만 하고,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왜곡도 도를 넘어 친일이라는 굴종의 역사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형님이 살아생전 그토록 강조하신 민주대연합,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말씀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져 내리는 암울하고 참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형님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실겁니다.

‘이 땅의 민주세력이 하나되지 못하고 어찌 국민의 고통받는 삶을 지킬 수 있느냐.’

‘혁신을 내부를 갈라놓는 도구로 악용하면서 어찌 세상을 진전시킬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국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만 가고 있는데 힘을 모두 합쳐도 부족할 판에 그 알량한 대권욕 때문에 우리는 부서져만 가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못난 후배들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실 형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다시한번 다짐합니다.

형님은 희망은 힘이 세다고 하셨죠.

저희는 형님이 말씀하신 힘이 센 그것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근태 형을 기억하는 우리들부터 오직 국민의 삶을 위한 길만 가겠습니다.

국민의 삶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형님의 민주대연합의 긴 여정에 함께 했던 우리들입니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을 걷는 심정이지만

반짝이는 별처럼 김근태의 유지를 이정표 삼아 뚜벅뚜벅 걷겠습니다.

더불어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 문익환 목사님, 그리고 수많은 열사와 동지들까지 이 곳에 잠들어 있는 이 땅의 노동의 권리와 민주주의, 통일을 바라던 모든 이들의 염원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근태 형님 앞에서 잡았던 손, 결코 놓지 않고 우리는 여기에 다시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간직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수백 수천의 김근태가 되어 돌아오겠다는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김근태의 이름,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형님.

보고싶습니다. 형님.

또 다시 만날 날까지 편히 쉬십시요.

우원식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입니다. 또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주도한 당 혁신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우원식 의원이 말한 ‘혁신을 내부를 갈라놓는 도구로 악용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힘을 모두 합쳐도 부족할 판에 그 알량한 대권욕 때문에 부서져만 가고 있는 우리’는 또 누구일까요? 우원식 의원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은 혁신을 명분으로 갈등했습니다. 안철수 의원은 혁신전당대회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탈당했습니다. 문병호 황주홍 유성엽 김동철 임내현 권은희 등 탈당한 의원들은 이른바 ‘친노패권주의’를 청산해야 당을 혁신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두가 상대에게 혁신을 외치며 갈라서고 있는 것이 지금 야권의 모습입니다.

부서져 가고 있는 것은 야권 전체입니다. 정당과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도 부서져 가고 있습니다. 안철수 의원 탈당 이후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지지자들은 서로를 ‘안빠’ ‘문빠’라고 부르며 헐뜯고 증오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관계망과 언론을 자세히 살펴보면 야권 분열을 위한 공작도 확실히 작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장면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1987년 12월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실패 이후 두 사람의 지지자들은 상대 후보를 ‘색광’ ‘빨갱이’로 부르며 증오했습니다. 정치공작 세력의 이간책이 틈을 더 벌렸습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는 노태우 민정당 후보의 승리였습니다. 분열의 상처는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와 역사를 뒤틀었습니다.

야권의 갈등과 분열이 시작된 이후 김근태 전 의원이 살아 있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습니다. 우원식 의원의 추도사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다시 합치라는 것은 해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김근태 전 의원이 말했듯이 주먹을 쥐고 악수를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김근태 전 의원 4주기가 야권의 갈등과 분열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 영상] ‘2017 대선’, 절박한 쪽이 이긴다/ 김보협의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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