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 2월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공천 신청자 면접 심사에서 부산 사하구갑 김장실(왼쪽부터), 김척수, 허남식 후보들의 인사를 받으며 지나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64
이한구 새누리 공천관리위원장,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
홍창선 더민주 공천관리위원장, 엉뚱한 말 장황하게 늘어놔
1997년 외환위기로 기업체에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집단해고의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각 그룹 비서실이 아예 구조조정본부로 바뀌었습니다. 구조조정본부에서 계열사 집단 해고를 지휘한 책임자들이 있었습니다. 각 계열사에는 해고 대상자를 결정한 실무 책임자들이 있었습니다. 집단해고가 마무리되자 해고 업무를 주도했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결국 사표를 냈습니다. 동료들의 목을 자르고 자신만 회사를 계속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칼잡이’는 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자신이 휘두른 칼의 살기가 언제 자신을 해칠지 알 수 없습니다. 요즘 정가에 두 칼잡이가 화제입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관리위원장입니다.
새누리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인 이한구 의원은 1945년생으로 만 71세입니다. 대우경제연구소 사장 출신인 그는 2000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온 4선 국회의원입니다. ‘친박 경제통’으로 불립니다.
김부겸과 재대결 앞두고 불출마 선언
이한구 위원장은 4년 전 대구 수성갑에서 52.77%를 득표했습니다. 민주통합당의 김부겸 후보는 40.42%를 득표했습니다. 대구에서 가장 적은 득표율 차이가 났습니다. 선거 중반까지 김부겸 후보가 맹렬히 따라붙었지만 대구 지역주의를 넘지 못했습니다.
김부겸 전 의원은 2년 뒤인 2014년 다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해 40.33%를 득표했습니다. 특히 수성갑에서는 50.1%를 얻어 권영진 시장의 득표율(46.7%)을 넘어섰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 대구 수성갑에서 이한구-김부겸 맞대결이 벌어지면 이번에는 김부겸 전 의원이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한구 위원장은 2015년 2월13일 갑자기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지역의 젊고 유능하고 열정적인 후보자를 미리 정해 충분히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기 위해 당협위원장직을 사퇴한다. 남은 국회의원 임기 1년 동안 경제혁신과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러가지 설명에도 불구하고 당 안팎에서는 그가 김부겸 전 의원을 이기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고 물러서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한구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친박 인사’였습니다. 그 덕분인지 우여곡절 끝에 20대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지역구 경쟁력이 떨어져 총선에 불출마하는 사람이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을 맡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새누리당에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공부 못하는 낙제생이 시험을 포기했는데 시험감독을 맡기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웃었습니다.
아무튼 공천관리위원장이라는 완장을 찬 이한구 위원장의 위세가 지금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와의 힘겨루기에서도 이한구 위원장이 우세하다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평가입니다. 이한구 위원장이 김무성 대표의 상향식 공천 원칙을 사실상 무너뜨리고 현역 의원을 탈락시켰는데도 힘이 없는 김무성 대표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정당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든 그건 그 정당 내부와 정치인들의 관심사일 뿐이지 국민적 관심사가 아닙니다. 또 상향식 공천을 하기로 되어 있는 당헌·당규를 무시하고 편법적으로 사실상의 전략공천을 하는 것도 크게 문제삼기는 어렵습니다. 정당은 국가기관이나 행정기관이 아니라 같은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자유로운 조직입니다. 상당한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 기자들과 언쟁도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한구 위원장의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좀 지나친 편입니다. 이한구 위원장은 지금 자신의 권력을 한껏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고위원회에 출석해 회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이제 자신을 부르지 말라고 위세를 부렸습니다. 급기야 10일 오후에는 김무성 대표와 가까운 황진하 사무총장과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이 이한구 위원장의 독주에 항의해 공천관리위원회 활동 중단을 선언하는 등 사달이 났습니다.
이한구 위원장은 기자들과도 마찰이 잦습니다. 툭하면 기자들에게 “저성과자”라고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하는 기자에게는 “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 “어떻게 기자들이 그렇게 바보같냐”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여론조사 유출 파동이 났을 때는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면서 기자들과 언쟁을 벌였습니다.
그의 이런 태도가 본래 성격 탓인지 ‘박근혜’라는 정치적 배경을 믿고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둘 다인 것 같습니다. 이한구 위원장의 ‘전성시대’가 언제까지 갈지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10일 브리핑에서 “추천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당사자들에게는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인생이 걸린 문제다. 그러기 때문에 최대한도로 많은 정보를 갖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래야 할 것입니다.
홍창선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총선 경선지역 18곳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공천자료가 담긴 태블릿피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가장 먼저 전화 한 기자에 상 주겠다?
더불어민주당의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은 1944년생이니까 72세입니다. 응용역학 박사인 그는 과학 분야 전문성으로 17대 국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김종인 대표는 새천년민주당 17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은 17대 국회 막판에 이합집산을 거쳐 통합을 했고 두 사람은 같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홍창선 위원장은 17대 국회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던 사람입니다. 그가 공천관리위원장을 맡는다고 발표되던 날 더불어민주당의 당직자나 보좌관들 중에는 그가 국회의원을 했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 홍창선 위원장에게 고도의 정무적 판단과 리더십이 필요한 공천 작업을 맡긴 이유가 뭘까요? 당내 계파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김종인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홍창선 전 의원을 공천관리위원장에 앉힌 것은 아무래도 실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홍창선 위원장은 9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경선지역을 발표하기 전에 느닷없이 기자들이 전화를 너무 많이 한다는 등 기자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업무용 휴대전화 번호를 불러준 뒤 가장 먼저 전화를 하는 기자에게 상을 주겠다며 전화한 기자에게 펜을 주었습니다. 홍창선 위원장의 이런 행동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몇몇 당직자들은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김종인 대표가 어떻게 저런 인물을 공천관리위원장에 임명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기자들에게 대신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10일에는 김성수 대변인이 기자회견장에서 공식 발표를 한 뒤 홍창선 위원장은 카메라가 없는 대변인실에서 기자들과 따로 간담회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간담회도 황당했습니다. 홍창선 위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다가 자가 말에 도취해 엉뚱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횡설수설했고 오락가락했습니다.
앞뒤도 맞지 않고 알아듣기 힘들어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정청래 의원의 마포을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홍창선 위원장은 “정청래 의원의 막말은 귀여운 수준이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막말이 꽤 많이 있는걸 보고 정청래 의원에게만 들이대는 잣대가 있구나 그런걸 느꼈는데 아무튼 모두가 그렇다고 주장을 하고 그런 면이 있는거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앞뒤도 맞지 않고 무슨 소리인지도 알기가 어려운 이상한 설명입니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뒤로 하고 홍창선 위원장이 대변인실을 떠나자 어떤 기자가 대변인에게 “홍창선 위원장이 공천의 배경과 의미는 설명하지 않고 이상한 소리만 한다. 앞으로는 대변인이 취재를 해서 배경 설명을 해주는 것이 낫겠다”고 요청하는 희한한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정치인 중에는 자신에게 위임된 권한을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정치를 잘 모르면서 자신이 정치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금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책임자들이 혹시 그런 사람들은 아닐까요?
걱정입니다. 정당의 공천관리위원회가 신뢰를 잃으면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승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의정치와 정당정치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공천이 자칫하면 선거를 코앞에 두고 혼란을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큰일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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