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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13 13:57 수정 : 2016.03.14 15:47

총선을 한 달 앞둔 13일 오후 국회.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65

요즘 여러분의 휴대전화에 정치인들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가 많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여론조사 전화가 자주 걸려오지 않습니까? 각 정당의 20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 공천을 위한 경선이 시작됐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문자가 들어왔습니다.

<문자 메시지 1>

안녕하세요 00000 새누리당 국회의원 예비후보 000입니다. 오늘부터 새누리당 경선 여론조사 전화가 옵니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오니 발신번호 ‘02-’로 오는 모르는 번호도 꼭 받아주십시요. 질문은 5개입니다. 끝까지 답변해서 꼭 000을 선택해 주십시요.

* 질문내용

1) 사시는 지역은?
2) 성별은?
3) 연령은? (꼭 본인 연령 답변)
4) 지지정당은? “새누리당! 또는 지지정당 없다”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5) 선호하는 후보는?《000》이라고 말해 주세요

꼭 당선되어 정직하고 깨끗하게 일 제대로 하겠습니다. 00000 주민들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자 메시지 2>

000을 선택해 주십시오. 여러분께서 가르쳐 주신 4년이었습니다. 퇴근길 긴 줄을 기다려 교과서 국정화 반대 서명해주시던 그 마음을 기억합니다. 더 잘하라며 10만명 온라인 입당으로 힘을 보태주신 그 마음을 기억합니다. 영하 18도 추위에 얼어붙은 제 손에 따뜻한 우유 하나 건네주시던 그 마음을 잊지 못합니다. 정치를 하며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그 마음들입니다.

지난 4년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았단 걸 믿습니다. 한발 더 내딛게 힘을 주십시오. 여러분께서 저의 손을 이끌어주시리라 믿습니다. 000을 선택해 주십시오.

* 경선 투표
 13(일)~14(월) 오전 10:00~오후 9:00

* 참여방법
1. 휴대폰으로 오는 전화 무조건 받기
2. 000 거주지역 확인
3. 지지정당 “더불어민주당” 선택
4. 경선투표 “참여” 선택
5. 적합한 후보 “000” 선택

본선에서 당당한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곧바로 알아차리셨겠지만 ‘문자 메시지1’은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보낸 것이고, ‘문자 메시지2’는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가 보낸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당헌에 “압축된 복수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를 통하여 후보자를 추천한다”고 규정하고 예외적으로 “다만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는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여론조사 경선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규는 선거인단의 30%를 당원으로, 70%를 일반국민으로 구성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20대 총선의 모든 경선을 안심번호 여론조사 방식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예외’가 ‘원칙’으로 바뀐 것입니다.

새누리당은 지난 10일부터 여론조사 경선을 시작했습니다. 공천관리위원회가 선정한 2개 기관이 이동통신사에서 제공받은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사용하여 전화면접을 합니다. 새누리당 지지층과 무당층 중 전화조사에 응답한 사람 각 1000명씩을 조사합니다.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고 답변하면 조사를 중단합니다.

휴대전화 안심번호 비율은 SKT 50%, KT 30%, LG 20%이며, 성별, 연령별, 권역별 할당을 합니다. 후보자별 최종 지지율은 각 기관의 지지율 결과를 산술평균해 도출합니다.

후보자 이름 앞에는 경력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1·2위 후보간 격차가 10%포인트 이하인 경우 1·2위만을 후보로 결선 여론조사를 합니다. 물론 1위 후보자가 과반이면 결선 여론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또 가산점을 적용받아 2명 이상의 과반 지지율이 나온 경우에도 결선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점 추정치를 절대적인 수치로 사용합니다.(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40일 앞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서울시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더불어민주당도 당헌·당규에 국민참여경선, 국민경선, 당원경선, 시민공천배심원경선 등을 복잡하게 규정해 놓았지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20대 총선 공천 경선은 모두 안심번호 여론조사 방식으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3일부터 여론조사 경선을 시작했습니다. 방식은 새누리당과 비슷합니다. 선거구별로 5만명씩의 안심번호를 이동통신사에서 넘겨받아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와 지지정당이 없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안심번호로 선거인단을 구성하기로 한 당헌·당규를 고려해 응답자에게 투표 참여 의향을 먼저 묻도록 했습니다. 이틀동안 다섯차례 전화를 걸어 조사합니다. 5만명을 상대로 조사해서 응답자가 300명을 넘어서면 유효한 조사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결선은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실시합니다. 여성·청년·신인 가산점, 현직 공직자 감산점이 있습니다.

후보들은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경력을 25글자 안에 담아서 자신을 소개해야 합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여론조사 이후
후보자를 선택하는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활용

원내 1·2당이 국회의원 후보 경선을 모두 여론조사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과거에는 ‘하향식 공천심사’로 후보를 중앙당에서 결정하거나, 아니면 경선을 해도 ‘국민·당원 선거인단 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경선은 우리에게 그리 낮설지 않습니다. 과거에 이미 여러차례 여론조사 경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였습니다. 두 군데 여론조사 회사에서 2002년 11월24일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한 두 후보의 경쟁력 조사를 했습니다. 리서치 앤드 리서치 조사에서는 노무현 46.8%, 정몽준 42.2%가 나왔고, 월드리서치 조사는 유효화 조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화됐습니다. 노무현 후보의 1 대 0 승리였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그 이후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그 탄력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여론조사 경선 후보 필승’의 신화가 탄생한 것입니다.

5년 뒤 한나라당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여론조사를 도입했습니다. 2007년 8월20일 대선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로 누르고 대선후보로 당선되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일반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이겼지만, 여론조사에서 밀려 패배했습니다. 당시 여론조사를 선거인단 투표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응답자 한 사람을 5표로 계산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적극적 투표자의 정치적 비중이 전화를 받고 단순히 의사표시를 한 응답자에 비해 5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당과 정치인들은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다른 정당과 후보 단일화를 할 때 여론조사는 ‘현실적으로 가장 유용한 도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후보 단일화를 하긴 해야 하는데 여론조사 이외에 달리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조사원들이 여론조사를 하고 있고 있는 모습.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0년 지방선거에서 경기지사 후보로 나선 민주당의 김진표 후보와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는 국민참여경선과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를 했습니다. 국민참여경선에서는 김진표 후보(52.07%)가 유시민 후보(47.93%)를 앞섰지만 여론조사에서 유시민 후보(53.04%)가 김진표 후보(46.96%)를 앞서 유시민 후보가 단일후보가 됐습니다. 그리고 유시민 후보는 본선에서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2011년 4·27 경남 김해을 재보선에서 민주당 곽진업, 국민참여당 이봉수, 민주노동당 김근태 후보가 여론조사로 후보 단일화 경선을 했습니다. 이봉수 후보가 아슬아슬하게 곽진업 후보를 꺾었습니다. 그리고 본선에서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노무현-정몽준 사례로 만들어진 ‘여론조사 경선 후보 필승’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론조사 경선이 정당하지도 않고 효용성도 떨어진다면 계속 여론조사 경선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경선을 전면 도입한 이유가 뭘까요.

첫째, 정말로 시간이 없습니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다른 방식으로 공천을 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둘째, 심사 방식은 필연적으로 계파공천 논란을 빚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 선거인단 투표는 조직동원과 그로 인한 금품 비리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새누리당은 18대에 이명박 대통령이 공천을 주도하면서 자칫 당이 쪼개질뻔했고, 19대에는 반대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한 공천에 대해 친이세력이 불만을 터뜨려 홍역을 치렀습니다. 더불어민주당도 18대 통합민주당과 19대 민주통합당 시절 계파공천 시비를 겪었습니다. 19대에는 특히 선거인단 동원 시비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았습니다.

따라서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공천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을 추진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하지만 오픈 프라이머리는 선거를 사실상 두 차례 치러야 하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 등 여러가지 문제가 발견되면서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 개시일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14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예비후보자 등록 접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각 정당이 손쉬운 여론조사를 경선 방식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필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경선이 과연 괜찮은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정당 여론조사 실무 당직자·전문가들도 회의적
지지정당 속이는 응답자들의 역선택·조작 가능성 논란도

정당에서 여론조사 경선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당직자조차 “처음 가보는 길이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불안하고, 이동통신사도 불안하고, 여론조사기관도 불안하고, 우리도 불안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눈이 밝은 학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강원택 교수가 2009년 <당내 공직후보 선출 과정에서 여론조사 활용의 문제점>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정당이 여론조사 방식에 주목하게 된 것은 개방적 참여는 필요하지만 조직, 돈에 의한 동원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여론조사를 통해 유권자들 사이에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인물을 선출함으로써 본선에서 보다 경쟁력을 갖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공직후보 선출에 활용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

첫째, 선호의 표출이나 의사표현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여론조사는 적절하지 않은 방식이다. 여론조사는 단순한 의견 표명일 뿐 그러한 의사 표현에 따른 결과를 의식하지 않는 반면 투표는 자신의 한 표가 승자 결정과 같은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둘째, 정당 정치를 약화시킨다. 정치적 혐오감이 높은 상황에서 여론조사의 의존은 정치권 외부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만든다.

셋째, 여론조사의 활용은 정당을 대표하는 후보자 선정에 당과 무관한 일반 유권자의 뜻이 반영되는 반면 당원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되는 결과를 낳는다.

넷째, 여론조사는 표본오차나 비표본오차로 인해 기술적으로 항상 정확하지 않다.”

여론조사 경선 전면 도입에 대해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에게 견해를 물었습니다. 박명호 교수는 “참고 자료가 결정적 자료로 사용되어 정당의 책임성이 약화된다. 또 안심번호라는 이름에 걸맞게 기술적 안정성을 확보했는지도 의문이다”라고 회의적인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도 비슷한 견해였습니다.

“정치적 관심과 열의를 가진 진짜 관심층의 고뇌에 찬 의견이 왜소화되고 단순 선호도가 부각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김춘석 한국리서치 이사에게 물었습니다.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정이 정당의 정체성과 노선에 맞는 후보를 공천하는 것인데 여론조사에 편승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안심번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투표자 대표성도, 유권자 대표성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인지도가 낮은 정치신인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유권자로서도 후보의 공약이나 경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다. 없어져야 한다.”

언론에서는 <중앙일보>가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지난 2월22일치 중앙일보 사설은 ‘휴대폰 여론조사에 정치 운명을 맡긴 나라’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우선 우리 정당들이 여론조사로 경선을 할 때마다 불거져온 ‘휴대전화 위장전입’이 재연될 가능성이다. 휴대전화 이용자는 통신사 홈페이지나 콜센터를 통해 손쉽게 주소를 옮길 수 있다. 이를 악용해 경선 예비후보들이 지지층을 지역구 주민으로 둔갑시키거나 그들의 집 전화를 휴대전화로 착신 전환시킬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전화 여론조사 공천이 안고 있는 근본적 한계다. 우선 A당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B당 지지자’라고 거짓으로 응답한 뒤 경쟁력 떨어지는 B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변하면 차단할 방법이 없다. 또 생업에 바쁜 국민이 정당 내부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약과 인품을 충분히 따져보고 여론조사에 응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자연히 명망가나 현역 의원 같은 인지도 높은 후보에게 지지가 몰릴 공산이 커진다.”

“정당 실세가 독점해온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만 보면 의미 있는 시도다. 하지만 아무리 안심번호라는 ‘안전판’을 도입해도 전화 여론조사는 공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데 부분적인 지표로 활용하는 것이 맞다.”

3월8일치 사설은 ‘새누리당 여론조사 문항·기법 공개하라’였습니다.

“여론조사는 상품 시장이나 정치 현장에서 소비자나 유권자의 취향을 가늠해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마케팅 기법이다. 그런 여론조사가 유독 한국 정치에서만은 후보자를 선택하는 최종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습니까? 결국 여론조사 경선은 계파공천 논란과 동원경선 비리에 겁을 먹은 정치인들과 정치와 투표에서도 편리함만을 추구하려는 유권자들의 합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론조사 경선을 해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요? 대한민국이 ‘다이나믹 코리아’이고 아이티 기술이 아무리 세계 최고 수준이라지만, 또 정치가 본래 역동적인 것이라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지지정당을 속이는 응답자들의 역선택, 여론조사 기관이나 면접원에 의한 조작 가능성, 오차범위라는 개념을 무시한 맹목적 승복 강요 등의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요? 정치의 인스턴트화로 인한 숙의민주주의 실종, 정치 혐오증의 심화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가 보다 큰 문제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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