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성한용의 정치막전막후 68]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30일 오후 관훈토론회를 했습니다. 언론은 김무성 대표가 4·13 국회의원 선거 이후 대표직에서 물러난다는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가 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기조연설에서 매우 자극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운동권 정당이라는 단어를 기조연설에서만 무려 여섯 차례나 사용했습니다.
“철 지난 이념과 낡은 습관에 얽매인 운동권 정당은 이러한 세기적 변화를 선도할 수 없습니다. 운동권 정당은 승리하면 테러방지법을 폐기한다고 합니다. 국민은 테러로부터 보호를 원하고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을 폐기하면 IS와 북한 김정은 정권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고,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운동권 정당은 승리하면 개성공단을 재개한다고 합니다. 국민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까지 개성공단이 재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운동권 정당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에 반대로만 갑니다. 그런 운동권 정당이 승리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19대 국회는 망국 악법인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정말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낡은 진보로 뭉쳐진 정당, 즉 운동권 정당의 반대 속에 국정 현안들이 적시에 처리되지 못하고 표류했습니다. 그들은 국가 살림은 생각지도 않고 복지 포퓰리즘의 발언만 일삼았습니다.”
패널들과의 질문 답변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체질’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김종인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체질을 고칠 의사를 자처하면서 당대표직을 맡아 전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의사라기보다 분장사 정도 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운동권 중병을 고치기 위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을 하지 않고 손쉬운 화장을 선택했다. 유권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다. 유혹이 끝나면, 연극이 끝나면 화장이 지워져 민낯이 또 드러나게 돼 있다.”
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정당에 정치공세를 퍼붓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수위의 비판은 서로 감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의 이번 ‘운동권 정당’ 발언은 단순히 선거용 정치공세를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보수 기득권 성향의 논객들이 동원한 신종 프레임입니다. 김무성 대표가 이를 받아들여 실전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운동권과 지역이 결합한 낡은 정치 수명 다했다’(조선일보 2015년 12월30일치 사설 제목)
‘더민주 일부 물갈이가 운동권당 종언으로 이어지려면’(조선일보 3월15일치 사설 제목)
3월15일치 사설 내용을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공천에서도 운동권 486, 친노 성향 강경파 상당수가 살아남았다. 막말·갑질 논란을 빚었던 다른 의원들도 경선을 통해 다시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자신들이 본색을 드러낼 경우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선거만 넘기고 보자는 생각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더민주가 운동권당이었던 것은 밖에서 민노총, 전교조, 민변과 같은 세력들이 당을 에워싸고 꼼짝달싹 못하게 해온 탓도 있다. 이들 외곽 세력의 생각과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
“운동권 출신도 얼마든지 현실 정치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운동권 출신 인사 일부는 합리적 태도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상당수 운동권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된 지 오래인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속에 빠져 살면서 무조건 반대와 저항으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들이 이번 19대 국회를 역대 최악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류근일 뉴데일리 고문은 3월24일 ‘운동권 도루묵된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역시 486 운동권 당(黨)이었다. 그동안 김종인 위원장이 한 일은 결국 한판 쇼로 끝난 셈이다. 그동안 있었던 일은 운동권의 세대교체와 정예화(精銳化)였을 뿐이다. 세대교체란 당의 주력이 이해찬 유인태 등 1970년대 ‘민청학련’ 세대에서 1980년대 ‘전대협’ 세대로, 그리고 친노(親盧) 세대에서 친문(親文) 세대로 이행했음을 의미한다. 정예화란 이념에 있어서나 조직력에 있어서나 전투력에 있어 전보다 훨씬 더 ‘쎈’ ‘알짜’들이 당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운동권 정당이며 그 본색을 감추고 있다는 이들의 논리는 김무성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를 분장사로 묘사한 논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해 7월 미국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진보 좌파의 준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우리 새누리당이 진보 좌파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겠다. 이걸 공고히 하는 방법은 새누리당이 더욱 선거에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새누리당을 보수 우파로 포장하고 야당을 진보 좌파로 규정해 보수 우파 집권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프레임과 언술이었습니다. 현실과 전혀 달리, 우리 정치를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대결로 설명하는 이분법 프레임의 배후에는 보수 기득권 세력이 정치지형을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습니다. ‘중도 보수’ 정도의 이념과 정책 노선을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이번 프레임도 그 연장입니다.
참 아쉽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정치 경험이 많은 사람입니다. 특히 대화와 타협이 정치의 요체임을 잘 알고 실천하는 뛰어난 정치인입니다. 여당 원내대표 시절 박지원 야당 원내대표와 짝을 이뤄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국회을 잘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념과 색깔론의 색안경을 쓰고 정치와 역사를 재단하는 수구 기득권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시각이 혹시 선친의 친일 의혹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상속자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정면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1987년 6월항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원조 운동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가 야당을 운동권 정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정치적 뿌리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보수 논객들의 글을 읽고 김무성 대표의 말을 들으며 해방 이후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과거 죄악을 감추기 위해 반민특위와 독립운동가들을 좌익으로 몰아붙였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줄임말입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처벌하기 위하여 1948년 8월 제헌국회에 설치했던 특별기구입니다.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키고 특별재판부 재판관과 검사관 등을 선출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친일행각을 벌였던 경찰 간부들은 반민특위 관계자들을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1948년 10월 수도청 수사과장 최난수, 사찰과 부과장 홍택희, 전 수사과장 노덕술은 반민특위 위원 중 강경파를 제거하기로 모의한 뒤 백민태에게 이 일을 맡겼습니다. 처단 대상 15명 중에는 대법원장 김병로, 검찰총장(특별검사부장) 권승렬, 국회의장 신익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모의는 백민태의 자수로 사전에 발각됐고 모의자들은 구속·기소되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김병로 대법원장이 바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의 할아버지입니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박흥식을 체포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특위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반되며 안보상황이 위급한 때 경찰을 동요시켜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반민특위를 견제했습니다. 반민특위 특별재판부장이었던 김병로 대법원장은 반민특위 활동이 불법이 아니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정부의 협조를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행정부의 비협조로 반민특위는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반민특위는 국회프락치사건과 경찰의 특위습격사건 등을 겪으며 와해됐습니다. 해방 이후 민족정기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입니다.
위기를 넘긴 친일세력은 이후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아 나가게 됩니다. ‘힘이 센 불의’가 ‘힘이 약한 정의’를 누르고 정당성을 획득하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김무성 대표 관훈토론회서 “운동권 정당” 6차례 언급 선거용 정치공세 넘어서 기득권 세력 몰염치에 뿌리 둬 독재정권과 결탁해 권력 누렸던 사람들의 야권 이간질 마치 친일파들이 반민특위 무력화시키는 모습과 흡사
29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위원회가 열리는 대표최고위원 회의실에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간다‘ ‘생각하고 말하세요‘등 페이스북 공모를 통해 모인 새누리당의 향한 쓴소리를 담은 백보드판이 설치돼, 김무성 대표가 앞을 지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보수 논객들이 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논리는 옳은 주장일까요?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보수 논객들이 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논리는 옳은 주장일까요? 한번 따져보겠습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 중에는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 경력을 출세의 도구로 삼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덕적 우월감으로 배타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느 집단에나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과거를 미화해 출세의 수단으로 삼고 편가르기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운동권’의 특징이 아니라 ‘인간’의 특징입니다.
보수 기득권 인사들 중에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이 아니라 출신 집안과 물려받은 재산을 기반으로 출세한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도덕적 우월감으로 배타적인 성향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입니다. 그들은 국민을 ‘순수한 국민’과 ‘불순한 국민’으로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을 ‘순수한 유가족’과 ‘불순세력으로부터 배후조종을 받는 불순한 유가족’으로 가르는 사람들입니다.
민주화 운동 경력을 출세의 도구로 삼거나 도덕적 우월감으로 배타적인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의 잘못은 같은 운동권 출신이나 같은 세대 유권자들의 비판으로 바로잡으면 충분한 일입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은 운동권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운동권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세력과 맞서 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보수 기득권 세력은 독재 정권과 결탁해 권력을 잡거나 부를 축적한 사람들입니다.
김무성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통일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1990년 3당합당으로 신군부 쿠데타 세력이 만든 민정당과 손을 잡은 사람입니다. 민주화 운동 세력이나 야당에서 보면 그는 ‘배신자’였습니다. 따라서 김무성 대표는 야당을 운동권 정당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 야당을 자꾸 운동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이유가 뭘까요? 운동권 출신들을 야당에서 제거하려는 이유가 뭘까요? 그 배경에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이 숨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보수 기득권 세력이 독재정권과 결탁하거나 독재권력의 비호를 받아 권력과 부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보수 기득권 세력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를 했고 사주들을 구속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법 제정과 사립학교법 개정 등을 통해 정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이런 시도는 기득권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권력과 재산을 침해하는 매우 위협적인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보수 기득권 세력은 야당의 집권을 저지하거나, 혹시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자신들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운동권 출신’들이 야당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호남과 민주화 운동 세력은 야당의 두 기둥입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은 ‘호남’과 ‘운동권’을 자꾸 분리하고 이간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야당의 힘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이 강력한 이유는 인구 다수 지역인 ‘영남’과 이념적으로 다수인 ‘보수’가 강고하게 결합해 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의 이념 스펙트럼은 ‘극우 보수’부터 ‘합리적 보수’까지 폭이 매우 넓습니다. 운동권 출신 이재오 김문수 심재철 김용태 정태근도 새누리당입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을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운동권’은 그런 연민의 감정이 들어 있는 매우 민감한 단어입니다. 보수 기득권 세력과 새누리당이 ‘운동권’이라는 단어를 ‘나쁜 것’이라는 뜻으로 쓰는 것을 보고 저는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아흔아홉석 부자가 백석을 채우기 위해 옆집 한 석을 탐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보수 기득권 세력과 새누리당의 몰염치한 모습입니다. 막강한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운동권 정당으로 몰아붙이는 장면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 저는 운동권 출신이 아닙니다. 1977년 대학에 들어가 유신 말기의 광기에 놀라 서둘러 군에 입대했습니다. 불의를 외면하고 도망친 비겁자였습니다. 제가 군에 간 사이에 10·26, 12·12, 5·18이 터졌습니다. 군생활을 마치고 복학했을 때 저의 몇몇 친구들은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제적되거나 감옥에 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에게 평생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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