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실세인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각종 의혹 제기와 새누리당 전당대회 구도 변화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누수 현상이 눈에 띄게 가시화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3년 한-뉴질랜드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계를 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음모·공작설 난무…여야대결보다 더 치열
“우리가 뭘 잘못했나” 친박 억울함 호소
“새누리당 주도세력 교체 시나리오 존재”
우병우 민정수석은 청와대 참모들 중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가장 두터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과도 관계가 좋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민정특보인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그의 후견인격입니다. 그런 우병우 수석의 여러가지 의혹이 언론에 의해 연일 폭로되고 있습니다.
‘의제와 전략 그룹’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이 이런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청와대 수석이 개인적 문제로 언론과 송사를 벌인다는 점, 강남 한복판 1400여억원어치 땅을 넥슨에 처분했고 그 중 4분의 1은 수석의 처가 상속받았다는 점 등은 그 자체로 정권에 부담일 수밖에 없다.
우병우는 청와대의 공격수이자 수비수
롯데그룹에 대한 최경환 의원 의혹에 이어 이번 의혹까지 ‘뭐가 있겠거니’ 하는 의구심이 쌓이게 됐다. 청와대 입장에선 ‘정윤회 문건 논란’의 악몽이 재연될 우려가 생기지 않을까? 게다가 청와대의 공격수이자 수비수인 우병우 민정수석이 엮여 있다는 점은 위기관리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전당대회가 본격화되면 새누리당 비박 주자들이 야당보다 더 매섭게 이런 문제를 따지고 들 것이다.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친박 주자들도 방어막을 두텁게 치긴 쉽잖을 것으로 보인다. 레임덕의 징후는 여권 내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병우 수석을 박근혜 정권의 ‘공격수이자 수비수’로 묘사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윤상현 최경환 의원은 이른바 친박실세입니다. 4·13 총선을 앞두고 두 사람이 공천에 깊숙히 개입한다는 설이 파다했습니다. 윤상현 의원은 김무성 대표에 대한 막말 파문으로 탈당을 하면서도 “공천 개입은 절대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최경환 의원은 지난 6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난 총선기간 저는 최고위원은커녕, 공관위 구성과 공천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 그런데도 마치 제가 공천을 다 한 것처럼 매도당할 때에는 당이야 어찌되든지 간에 저의 억울함을 풀어볼까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김성회 전 의원을 협박하고 회유하는 등 공천에 개입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친박좌장 서청원 의원의 20대 국회 진입을 위해 총대를 메고 나섰던 것입니다.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잖아.”(최경환)
“감이 그렇게 떨어지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최경환)
“까불면 안된다니까.”(윤상현)
“내가 별의별 것 다 가지고 있다니까. 형에 대해서.”(윤상현)
어르고 뺨치는 수법이 시정잡배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똥은 친박좌장 서청원 의원에게 튀었습니다. 전당대회 출마를 위해 정치지형을 살피던 서청원 의원은 자신과 관련된 공천개입 의혹을 불거지자 곧바로 출마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접 김성회 전 의원에게 압력을 가한 통화 내용도 드러났습니다.
윤상현·최경환 통화 내용 누가 공개했을까
그런데 참 궁금합니다. 윤상현-김성회의 통화 내용, 최경환-김성회의 통화 내용, 현기환-김성회의 통화 내용이 모두 공개됐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분노한 김성회 전 의원이 서청원 의원의 대표 출마를 막기 위해 통화 내용을 공개한 것일까요? 김성회 전 의원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과 친박 공천개입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세력에 커다란 악재입니다. 두 개의 큰 파도가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형국입니다. 19일과 20일 아침 몇몇 신문 사설 제목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하고 특임검사 조사받아야’(동아일보)
‘“대통령 뜻” 휘두른 최경환·현기환…친박이 레임덕 부추기나’(동아일보)
‘우병우 수석에 대한 의혹이 국정흔들기라는 청 시각’(동아일보)
‘청 실세 처가와 넥슨 수상한 땅거래, 어떻게든 진상 밝혀야’(조선일보)
‘공천 회유·협박 드러난 친박, 사당정치의 추악한 종말이다’(조선일보)
‘석연치 않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처가 건물 매각 과정’(중앙일보)
‘박 대통령, 배신 행태 보여준 친박 먼저 버려라’(중앙일보)
‘민정수석, 언제까지 논란의 한 축으로 있을건가’(중앙일보)
‘최경환·윤상현 공천 개입 불법성 규명해야’(중앙일보)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른 우병우 민정수석’(한겨레)
‘청와대, 우병우 감싸기 대신 사표 받아야’(한겨레)
‘대통령의 직접 해명 필요한 친박의 공천 횡포’(한겨레)
언론의 집중 공세에 견디기 어려웠을까요? 이례적으로 우병우 민정수석이 20일 직접 해명에 나섰습니다. 우병우 수석은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이제 여론은 잠잠해질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최근 우병우 수석 의혹과 친박 공천개입 사건의 배경에는 단순한 진실공방 수준을 넘어서는 큰 흐름이 깔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입니다. ‘현재의 권력을 지키려는’ 대통령과 ‘미래의 권력을 차지해야 하는’ 여권의 싸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등을 중심으로 하는 ‘친박’과, 그밖의 모든 여권 세력을 망라하는 ‘범여권’의 대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기 전 윗쪽을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현대원 미래전략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박 대통령, 김재원 정무수석. 청와대 사진기자단
친박 대 범여권의 권력투쟁 성격
‘범여권’에는 2017년 대선 재집권을 목표로 하는 거의 모든 집단과 사람들이 포함됩니다.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과 친박 공천개입을 계기로 ‘범여권’에 해당하는 모든 세력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새누리당 친박세력에 대한 공세에 나서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독주를 방치하다가는 자칫하면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새누리당 대표에 출마한 정병국 의원이 19일 긴급 성명을 발표해 친박 계파 해체 선언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비장한 마음으로 요구합니다. 친박들은 계파 해체를 선언할 것을 촉구합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당의 화합과 정권 재창출을 하기 위해서 계파 해체가 무엇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계파 패권주의가 여전히 살아 숨쉬며 공천개입에 이어 이번 당 대표 선거까지 개입할 경우 새누리당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 갈 수는 없습니다. 새누리당을 완전히 개조해야 합니다. 그래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무성 전 대표, 김문수 전 지사, 오세훈 전 시장, 남경필 지사, 원희룡 지사, 나경원 의원 등 기라성 같은 잠재적 대권후보를 앞세워 정권 재창출을 이뤄 낼 수 있습니다.”
친박만 빠져주면 새누리당이 재집권을 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잘 배어 있습니다. 친박 해체와 새누리당 재집권을 연결시키는 논리는 언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친박 패권주의를 비판한 <동아일보> 7월7일치 사설의 내용입니다.
“‘꼴박(꼴통 친박)’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강성 친박들은 대선 과정에서도 알량한 당내 다수의 머릿수를 계산하면서 총선 때와 같이 패권주의를 휘두르려 하겠지만 무망한 시도일 뿐이다. 당내 분란만 초래해 여당의 재집권만 어렵게 만들 것이고, 내년 대선에서 야당의 집권을 돕는 결과로 직결돼 친노(친노무현)계처럼 ‘폐족의 낙인’만 찍힐 공산이 크다.”
“요즘 조중동이 한겨레보다 더 독하게 쓴다”
친박들도 범여권의 이런 주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윤상현 최경환 의원의 공천개입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 이른바 ‘강경친박’으로 분류되는 의원을 만나서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 일이 있습니다. 그는 무척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취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세히 전하지는 않겠습니다. 대략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억울하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전당대회에서 물러나라는 것인가. 종편을 보면 너무 한다. 여당 패널이 한 사람 나오고 야당 패널이 한 사람 나온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이 친박을 공격한다. 조중동 사설을 보면 한겨레나 경향신문보다 훨씬 더 독하게 쓴다.”
“조중동은 여권 주도세력을 교체하려는 것 같다. 친박을 여권 주도세력에서 몰아내는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야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그건 정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정병국이나 김용태가 새누리당 대표를 할 만한 사람들인가? 그들이 대선후보 경선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들이 대표가 되면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도 서 대표(서청원)를 중심으로 질서를 잡아야 박근혜 대통령 임기말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래야 재집권도 할 수 있다.”
비박이 집권하면 재집권이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는 논리입니다. 서청원 의원도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당내 경선은 ‘당의 화합’과 ‘치유’의 장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심는 경선이라면 정권 재창출은 불가능해진다”고 했습니다.
친박이 물러나고 새누리당을 혁신해야 재집권한다는 주장과, 박근혜 대통령 임기말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이 옳을까요?
두 사건 모두 <조선> 매체 보도로 불거져
아무튼 새누리당 사람들은 최근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이 <조선일보> 보도로, 윤상현 의원의 공천개입 사건이 <티비조선> 보도로 불거진 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번 보도가 ‘재집권을 위해 친박을 제거해야 한다’는 범여권의 생각과 일정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 때문입니다.
언론의 보도 내용과 시점을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은 기본적으로 ‘특종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4·13 총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기에 사정의 정점인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이 터져 나왔고, 8·9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들이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바로 그 시점에 공천개입 사건이 터진 것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해석의 뒷맛을 남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앞으로가 더 문제일 것입니다.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은 언제까지 어떻게 전개될까요?
여당과 야당은 선거로 싸웁니다. 선거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표를 많이 얻는 쪽이 이깁니다. 이기면 여당이 되고 지면 야당이 됩니다. 심판도 있습니다. 감시자도 있습니다. 선관위와 언론은 심판이자 감시자입니다. 온국민이 참여자이자 관객입니다. 금도가 있습니다. 반칙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은 선거가 아닙니다. 따라서 규칙이 없습니다. 반칙이 허용됩니다. 음모와 공작이 판을 칩니다. 검찰과 언론이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동원됩니다. 때로는 언론과 검찰이 아예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지는 쪽은 모든 것을 잃습니다. 패배자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사생결단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치명상을 입고 물러서기 전까지는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2017년 여당의 대선후보가 선출될 때까지 전쟁은 계속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 사태는 치열한 내전의 예고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언니가 보고있다#27_우병우는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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