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92
목청연설 이종걸, 비주류 주자로 존재감 부각
“호남복원” 김상곤, 유력 정치인 발돋움 계기
추미애 대표 첫번째 과제 전대이후 내부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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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최고위원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이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손을 들어 대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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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패자는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이회창’ ‘이인제’ ‘정동영’처럼 대통령 선거에서 진 사람들은 그래도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 나갔다가 떨어진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은 서운하고 슬프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패자의 존재 자체가 의미없는 것은 아닙니다. 패자가 있기 때문에 승자가 있습니다. 오늘의 패자는 내일의 승자일 수 있습니다.
8·27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추미애 의원(58)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이종걸 의원(58)과 김상곤 전 교육감(67)은 패했습니다. 추미애 대표가 어떤 정치인인지,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는 다른 기자들이 충분히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경선에서 패한 사람들 얘기를 잠시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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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이종걸 당대표 후보가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16.8.27.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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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비주류입니다. 문재인 대표 시절 더불어민주당 비주류는 안철수 의원,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세력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4·13 총선을 앞두고 대거 탈당하면서 세력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종걸 의원이 끝까지 출마를 망설였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종걸 의원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되지도 않을텐데 뭐하러 나가느냐”고 만류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는 도전했습니다. 컷오프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본선에 진출했고 비주류 대표 주자로서 존재감을 충분히 과시했습니다. 대표가 되지는 못했지만 정치적으로 손해를 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최종 득표율에서 예상을 깨고 김상곤 전 교육감을 앞선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종걸 의원의 27일 마지막 연설은 꽤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목청을 한껏 높였습니다. 대표 후보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빼어난 연설을 했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먼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고 수행실장으로 함께 전국을 다녔습니다. 그 당시 광주 양동시장 국밥집에서 후단협의 흔들기로 풀이 죽은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을 가장 곁에서 지켰습니다. 탄핵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싸웠습니다.”
“저는 독선적인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겠습니다. 저는 국정원 대선 개입에 맞섰습니다. 정치검찰 개혁의 선봉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당한 수사와 고초도 당했습니다. 저는 장자연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언론권력을 응징했습니다. 삼성생명 재벌의 핵심을 찔렀습니다. 필리버스터를 기획해 야성을 복원하고 총선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경선이 끝난 뒤 이종걸 의원은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습니다.
“저는 당원과 대의원 동지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우리 당이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역동적이고 공정한 경선을 통해 강한 후보를 만들어야 하고, 계파를 뛰어 넘어 단합해야 하고, 더민주를 너머 더 크게 힘을 모으는 야권통합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추미애 당대표님을 비롯한 새 지도부가 당의 단합과 정권교체를 위해 당 주류와는 다른 목소리도 반영해 당을 잘 이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종걸 의원의 앞날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는 5선의 중진의원입니다. 누가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되든 대통령 선거에서 크게 한몫을 할 것입니다. 그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당당한 후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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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김상곤 당대표 후보가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16.8.27.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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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전 교육감은 문재인 대표 시절 문재인 대표의 부탁으로 당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친문재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상곤 전 교육감은 추미애 송영길 두 사람에 비해 대표 출마 결심이 너무 늦었습니다. 출마 선언을 했을 때 친문재인 성향의 전현직 의원 대부분은 이미 추미애 대표와 송영길 의원을 돕고 있었습니다. 입도선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에서도 누구를 돕겠다고 일단 약속하면 사정이 달라져도 그 약속을 번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이 일찌감치 대표 출마에 나섰더라면 이번 당내경선은 판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은 경선에서 진 다음날 페이스북에 긴 글을 띄웠습니다. 추미애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를 향한 ‘간곡한 부탁’입니다.
“호남 없이 우리당은 없습니다. 호남 없이 정권교체도 없습니다. 호남과 영남이 손을 잡고 중부 수도권과 어깨를 걸 때, 이렇게 우리당이 지역통합의 전국정당으로 자리매김할 때 정권교체는 실현될 것이며,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공정한 사회와 우리 후세에게 희망의 미래를 넘겨줄 수 있습니다.”
“대구 경북 지역에서 활동하는 우리당의 활동가들에게서 더 이상 방치됐다는 비애와 비판이 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대구 경북 지역은 열세지역이 아니라 전략지역이어야 합니다. 대구 경북에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한다면 오는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부산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은 이번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당내 유력 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것입니다. 이번 경선을 계기로 국민들에게 김상곤이 누구인지 좀 더 알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가 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경기도나 호남 지역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거나 2017년 대통령 선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셈입니다.
이날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노인, 여성, 청년 세 부문 최고위원 후보들에 대한 대의원 투표도 이뤄졌습니다. 부문별 최고위원은 권리당원 투표 50%, 대의원 투표 50%를 합산해서 선출했습니다.
노인 부문에서는 총 60.14%를 얻은 송현섭 후보(80)가 39.86%를 얻은 제정호 후보(75)를 꺾고 최고위원에 당선됐습니다. 제정호 후보는 연설 도중에 손에 들고 있던 원고의 앞뒤가 뒤바뀌는 바람에 연설을 잠시 중단하고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의 대의원들은 박수와 웃음으로 격려했습니다.
여성 부문 최고위원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원외 양향자 후보(49)가 재선의 현역의원 유은혜 후보(54)를 꺾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현장 대의원 투표에서는 뛰어난 연설로 청중을 사로잡은 유은혜 후보가 52.38%를 얻어 47.63%를 얻은 양향자 후보를 앞섰는데도, 그 전에 이뤄진 권리당원 투표에서 양향자 66.54%, 유은혜 33.46%로 차이가 이미 크게 벌어져 있었기 때문에 양향자 후보가 이겼습니다.
대의원들과 권리당원들의 선택이 달랐던 것은 친문재인 성향이 강한 권리당원들이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표가 영입한 양향자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유은혜 후보도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변인을 지내 ‘친문재인’으로 분류되는 정치인이었는데 이번 경선에서는 친문재인쪽에서 대표 후보 추미애, 여성 부문 후보 양향자, 청년 부문 후보 김병관 셋을 묶어 ‘추미애-양향자-김병관’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벌였고, 유은혜 후보는 비문재인 후보로 밀려났습니다.
현장에 있던 친문재인 성향의 몇몇 대의원들은 결과가 발표된 뒤 “여성 부문이라도 유은혜 의원을 당선시켰어야 했는데 양향자 후보가 되는 바람에 ‘친문재인 싹쓸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고 아쉬워했습니다.
청년 부문에서는 2300억원으로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가장 부자인 김병관 의원(43)이 당선됐습니다. 서울시당 대변인 출신의 장경태 후보(33)와 김상곤 혁신위원회에서 혁신위원을 지낸 이동학 후보(34)는 큰 표 차이로 낙선했습니다. 이동학 후보는 현장에서 뛰어난 연설로 대의원 투표 40.65%를 얻었지만 4·13 총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영입한 김병관 의원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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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새 대표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제2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인사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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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직에서 물러난 김종인 전 대표는 마지막 연설로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 발짝을 떼었을 뿐입니다. 지난 7개월이 정권교체라는 씨앗을 뿌린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싹을 틔운 어린 새싹들이 국민 속에서 깊게 뿌리 내리고, 그늘이 필요한 국민에게 가지가 뻗을 수 있는 튼튼한 거목으로 키워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변화’입니다. 지금 우리는 시대의 변화, 국민의 변화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종래의 낡은 정당문화를 버리고, 국민의 민의를 수용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변모할 때, 국민이 희망하는 집권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지난 총선의 함의는 국민의 생활을 살피는 정치입니다. 다수의 일방적 횡포도, 반대를 위한 반대도 없는 대화와 협력, 양보와 타협의 ‘진짜 정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양극화와 불평등만 야기하는 낡은 경제에서 벗어나 경제성과의 과실을 국민 모두가 고루 나눌 수 있는 새로운 경제 틀을 짜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집권의 길이 있습니다.”
“오늘 선출된 새로운 지도부의 제 1과제는 집권입니다. 꿈을 잃은 청년, 출산하지 않는 여성, 빈곤으로 신음하는 노인,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 총체적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유일한 세력은 우리뿐입니다. 우리에게 집권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당선자가 모두 확정된 뒤 김종인 전 대표는 새로운 당 지도부와 함께 단상에 올라가 함께 손을 번쩍 들고 인사를 했습니다. 김종인 전 대표는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자신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날 연설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김종인 전 대표는 섣부르게 탈당을 하거나, 제3지대에서 정계개편에 나서거나, 특히 자신이 대선후보로 나설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의원들 앞에서 총체적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유일한 세력은 ‘우리’라고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8·27 전당대회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승자인 추미애 대표는 이날 저녁 만찬에서 건배사로 “더불어민주당의 정권교체를 위하여”라고 외쳤습니다. 패자들은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쓸쓸하게 대회장을 떠났습니다. 이제 추미애 대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패자들을 위로하고, 역할을 맡기고, 비주류 인사들을 기용해 당내화합과 내부통합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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