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 97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 거부는 헌법·국회 무시하는 것
박정희, 1971년 오치성 해임건의안 가결 결국 수용해
대한민국 헌법 제3장(국회) 제63조 1항은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항은 “제1항의 해임건의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의하여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 조항은 우리 헌법에 포함된 의원내각제적 요소입니다. 역사적으로 몇 차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1공화국에서 1952년 1차 개헌과 1954년 2차 개헌을 하면서 국회의 정부불신임권을 신설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3공화국 헌법에서도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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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이 24일 새벽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해임 결의안 통과를 선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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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유신헌법인 4공화국 헌법과 전두환 신군부의 5공화국 헌법에서는 국회의 해임건의권이 아니라 해임의결권을 규정했다가, 1987년 현재의 헌법으로 개정하면서 다시 해임건의권 조항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3공화국 헌법과 달리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부분은 빠졌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를 대통령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일까요, 없는 것일까요? 이 논쟁은 사실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와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 당시 뜨겁게 불붙었던 논쟁입니다.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김철수 <헌법학개론>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부분만 소개하겠습니다.
해임건의 제도의 의의 : 국회의 해임건의 제도는 대통령제를 완화하여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 것으로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이례적인 제도이나 이원정부제인 바이마르 헌법 등에서 인정되었던 제도이다. 이는 국회로 하여금 행정부를 감시, 비판하게 함과 동시에 행정부의 독선적인 행정부 구성을 어느 정도 견제하여 그 절대화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해임건의의 사유 : 헌법상 아무 제한이 없으므로 직무집행상 위헌·위법적 처사가 있는 경우에 한하지 않고, 정책의 과오, 직무집행에 있어서의 무능력, 부하직원의 과오 및 범법에 대한 정치적 책임,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적 책임 등도 추궁할 수 있다. 이점이 탄핵소추와 다르다.
해임건의의 효과 : 3공화국 헌법에서는 단순한 건의에 불과한 것이고 대통령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힘이 없다는 부정설과 어느 정도 대통령을 구속하는 법적 성질을 가진다고 보는 긍정설이 대립되었다. 현행헌법상 대통령제의 해임건의는 법적 구속력이 있으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대통령은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겠다.
헌법학자로 박근혜 정부의 행정자치부 장관을 거쳐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 정종섭 의원은 <헌법학원론>에 이렇게 썼습니다.
구속력의 유무 : 국회의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는 법적 성격상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건의와 요구의 차이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국회의 건의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도 논쟁에 가세했습니다.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 내에서 해임건의권의 의미는 임기중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대통령 대신에 그를 보좌하는 국무총리·국무위원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추궁함으로써 대통령을 간접적이나마 견제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 제63조의 해임건의권을 법적 구속력 있는 해임결의권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문과 부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는 현행 헌법상의 권력분립 질서와도 조화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헌법학자입니다. <헌법학>에서 해임건의에 대해 매우 자세한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대통령제적인 시각에서 의회와 정부에 대한 정치적 통제권의 일환으로 해임건의권을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가급적 의원내각제적인 구속력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이 제도의 뿌리가 의원내각제적인 것임을 간과하고 있다. 해임건의 제도를 헌법상의 제도로 명시한 것은, 이 제도가 헌정 실제에서 유효하게 기능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지 단순히 그 효과가 ‘사실상 무의미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설정된 제도로 이해하여서는 안된다. 이는 특별의결정족수를 명시한 헌법 규정에도 부합한다. 그리고 헌법 규정의 정치성, 강령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 제도가 한국헌법사에서 계속 존치하고 있는 이유는, 이에 대한 헌법적 구속력을 인정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국민주권을 대표하는 의회로부터 불신임당한 정부나 그 구성원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정국의 경색만을 초래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아니한다.
해임건의의 구속력을 인정할 경우 대통령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여야 하느냐에 관하여는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지만 제3공화국 헌법의 ‘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권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불신임동의권인 해임의결권과 구별된다. 대통령은 해임건의 제도의 헌법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여 특별한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경우에 대통령은 해임건의에 따라야 한다. 특히 여소야대의 정치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정부 불안정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거대야당의 슬기로운 자제가 동시에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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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이 예정된 23일, 여야는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협상’과 ‘대치’를 반복했다. 특히 애초에 야3당 합의로 해임건의안을 내기로 했던 국민의당이 찬성 당론을 모으는 데 실패하면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의 손끝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국민의당 의원 다수가 야권 공조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새누리당은 대정부질문에서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라는 초유의 ‘시간끌기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사진 이정우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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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 총장의 견해는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가 아니라면 대통령은 국회의 국무위원 해임건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김재수 장관을 해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헌법은 일반 법률과 달라서 해석을 둘러싸고 수없이 많은 논쟁이 벌어집니다. 늘 다수설과 소수설이 대립합니다. 또한 법적 해석 못지 않게 정치적 해석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국회가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가결시킨 것은 다섯차례가 있었습니다. 임철호 농림부 장관(1955년), 권오병 문교부 장관(1969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197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2001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2003년)입니다. 다섯 차례 모두 당사자가 사임하거나 대통령이 해임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 해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회의 해임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첫 사례를 만들게 됩니다.
현행 헌법에 따라 이뤄진 임동원, 김두관 장관 사례를 살펴볼까요?
2001년 야당인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임동원 통일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습니다. 디제이피 공조 파기로 이어진 정치적 사건이었습니다.
해임건의의 기속력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임동원 장관이 사임하는 형식으로 국회의 해임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를 곧바로 대통령 특보로 임명했습니다. 성낙인 총장은 이를 ‘바람직하지 않은 인사권 행사’라고 비판했습니다.
2003년 8월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한총련 시위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였습니다. 당연히 기속력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도 김두관 장관이 사임하는 형식으로 결국 국회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가결됐다는 소식에 나이가 많은 유권자들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1년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10·2 항명 파동’이라는 표현으로 더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시절이라 그런지 군형법에나 등장하는 ‘항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무척 특이합니다.
‘10·2 항명 파동’은 “1971년 10월2일 야당이 제출한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일부 공화당 의원의 가세로 가결됨으로써 공화당의 숙당으로 이어진 사건”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전날인 10월1일 공화당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해임건의안을 부결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김종필계의 당내 주류에 불만을 품고 있던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 등 이른바 ‘공화당 4인방’은 찬성표를 던져 오치성 내무장관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켰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분노는 국가기관에 의한 폭력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성곤·길재호 의원 등은 현역 국회의원이었는데도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실로 끌려가 매우 심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콧수염을 기르던 김성곤 의원은 콧수염을 뽑히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결국 이른바 ‘항명’을 주도한 김성곤·길재호 의원은 탈당해서 의원직을 상실했습니다. 김창근 문창탁 강성원 의원 등은 당명불복종 등을 이유로 6개월간 당권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정보기관을 시켜 국회의원을 두들겨 패던 야만의 시절이었지만 어쨌든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의 해임건의를 받아들여 오치성 내무장관을 해임했습니다.
자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어떻게 할까요? 박근혜 대통령이 김재수 장관을 해임하지 않는 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면 새누리당도 정기국회에 다시 참여할 명분이 없습니다. 각종 법안은 물론이고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게 됩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정부가 마비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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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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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사태를 비교적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애초에 야당의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은 명분이 약했습니다. 김재수 장관이 장관 재직시에 잘못한 일이 아니라 장관에 임명되기 전의 일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린 장관 후보자를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출장 중에 전자결재로 임명했습니다. 유감 표명은 물론이고 사전 설명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야당에 ‘굴종’을 강요한 것입니다.
그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실제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 전까지 상당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김재원 정무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의 사과나 설득 노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야당으로서는 해임건의안을 내지 않으려고 해도 도저히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린 셈입니다.
해임건의안 표결이 이뤄진 23일과 24일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국무총리,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정진석 원내대표 등이 취한 행동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은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이 진행되는 동안 야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달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약을 바짝바짝 올렸습니다.
정부 여당의 이런 태도는 해임건의안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일부 의원들까지 해임건의 적극 찬성으로 돌아서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입니다. 이제 국회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나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의 독선과 아집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정말 참담한 일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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