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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25 15:20 수정 : 2018.02.25 15:30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191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에 각 신문 사설 엇갈린 시각
조선일보, 박근혜 정권 때와 다른 이중잣대 적용 논란
2014년 김영철과 회담땐 “대화 피할 이유 없다”더니
2018년 “김영철, 한국 영토 밟게 해선 안 된다” 반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김신조 사건에도 북한과 대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칼기 폭파 지시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
남북 관계 특수성 인정하고 긴 호흡으로 인내할 수 있어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여러분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철 부위원장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실력자입니다. 노동당 부위원장이자 통일전선부장입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북한의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합친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둘째, 2010년 천안함 침몰 당시 정찰총국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그를 ‘천안함 폭침’의 배후 인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물이 남북대화를 위해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하기로 했으니 우리로서는 생각이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첫 번째 얼굴을 생각하면 그의 방남을 남북대화를 이어가고 북미대화의 실마리를 열 기회로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 얼굴을 생각하면 그의 방남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우리 언론에서도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에 대한 시각이 크게 갈렸습니다.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이 22일 발표됐습니다. 23일 치와 24일 치 신문 사설을 살펴보았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일행이 경기 파주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한 25일 오전 소속 의원, 당직자들과 함께 통일대교 남쪽 도로를 점거한 채 “문재인 정부는 개헌을 통해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려 하며, 종국적인 목적은 남북 연방제 통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4일 저녁 7시부터 북쪽 고위급 대표단의 통행을 막으려고 차량을 동원해 이곳을 점거한 채 밤샘농성을 벌였다. 파주/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신문은 <조선일보>입니다. 23일 치 사설의 제목은 ‘천안함 주범이 한국과 유가족 능멸하게 만들 텐가’였습니다. “정부는 김영철이 대한민국 영토를 밟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24일 치에는 ‘김영철 방남 노림수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습니다. “김정은이 김영철을 대표로 보낸 데는 남남 갈등을 일으켜 판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상황은 실제 김정은 계산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동아일보>도 비슷했습니다. 23일 치에 ‘평창에 대남도발 총책을 보내겠다는 북의 노림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대남도발 총책을 보내 우리 사회 내부 갈등을 유발하고 이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관계 개선 의지를 떠보겠다는 심산”이라고 분석했습니다. 24일 치에는 ‘북의 김영철 도발…언제까지 끌려만 다닐 건가’라는 사설을 썼습니다.

2018년 2월23일치 <조선일보> 사설
두 신문 모두 첫날은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 자체를 반대했다면, 둘째 날은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중앙일보>는 좀 다른 태도를 취했습니다. 23일 치는 ‘이방카·김영철 온다…제재 강화하면서 대화 모멘텀도 살려야’, 24일 치는 ‘남·남 갈등 몰고 오는 김영철, 평창 언행 조심해야’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김영철이라는 인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방남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평창에서의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경향신문>은 첫날 ‘북 김영철·리선권 방남, 평창 이후를 준비해야’라는 사설을 통해 “북한의 김 부장 파견은 남북관계 소통채널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의미”라고 평가했습니다. 이틀째에는 ‘새누리당은 2014년에 왜 김영철을 환영했나’라는 사설로 자유한국당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조선일보>도 비판했습니다. 신문이 사설로 다른 신문 사설을 비판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2014년 ‘전범인 인물까지 상대해야 하는 것이 남북회담의 현실’이라는 사설로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묵인했던 조선일보가 23일에는 ‘김영철이 대한민국 영토를 밟게 해서는 안 된다’고 정반대 입장을 보인 것도 모순이다. 김 부위원장과의 대화는 오직 보수 정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한겨레>는 23일 치에는 ‘북 김영철의 예상 밖 폐막식 참석에 거는 기대’라는 사설을, 24일 치에는 ‘북 김영철 사살하라는 야당, 무책임의 극치’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다른 신문 사설 제목도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일보>
북미 중재외교, 신중하고 섬세하게 접근해야
혹시라도 김영철 방남을 무조건 수용했다면

<서울신문>
논란 속 김영철 방남, 북핵 논의 뒤따라야
남남갈등 경계하며 북·미 대화 문 열어둬야

<국민일보>
트럼프의 복심 이방카와 대남도발 총책 김영철의 방한
김영철 둘러싼 남남갈등·청와대 조급증이 문제다

<세계일보>
북 천안함 폭침 주범 평창 보내 제재 깨려는 것 아닌가
김영철 방남, 두둔성 해명으로 국민 납득시킬 수 있겠나

<문화일보>
북 김영철 평창 빌미 방남 용납할 수 없는 5가지 이유

각 신문 사설 제목만 살펴봐도 우리 언론이 이번 김영철 부위원장 방남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천안함 폭침’의 중요한 배후로 의심되는 인물을 남북회담 대표단 자격으로 평창올림픽 폐막식에 참석시키는 것은 국민 정서에 어긋날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당국자들도 그런 점을 걱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영철 부위원장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최측근 실세입니다. 그 정도 비중이 있는 인물과 대화를 해야 회담의 실효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친북 성향’을 부각해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의도입니다. 아무리 문재인 대통령과 참모들이 싫다고 해도 언론에서 야당의 정략적 의도를 부각시키고 부추기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일성 주석은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이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남침으로 수많은 민간인과 남북한의 군인, 유엔군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틈만 나면 무장한 군인이나 공작원들을 내려보내 죄 없는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죽였습니다. 심지어 1968년에는 김신조 등 특수부대로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 목을 따려고 했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일행이 경기 파주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도착한 25일 오전 소속 의원, 당직자들과 함께 통일대교 남쪽 도로를 점거한 채 “문재인 정부는 개헌을 통해 연방제 수준의 지방자치를 하려 하며, 종국적인 목적은 남북 연방제 통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24일 저녁 7시부터 이곳을 점거한 채 밤샘농성을 벌였다. 파주/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그런 김일성 주석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화했습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북한으로 보내 7·4 남북공동성명을 끌어냈습니다. 경제 발전과 체제 안정을 위해 한반도 평화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2년 김정일 위원장이 베이징으로 보낸 특별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밝혔습니다.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의 테러와 관련이 없는 사람일까요? 그럴 리가 있나요.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으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습니다. 북한의 공작원 김현희씨는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를 받아 비행기를 폭파했다고 밝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천인공노할 민간 항공기 테러 사건의 주범과 만나 남북대화를 한 것입니다. 남북관계의 이런 과거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군 출신인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을 여러 차례 제의했습니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소련 및 중국과 수교하고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이뤄냈습니다. 북한과 고위급 회담을 여러 차례 열어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남북관계의 역사는 이처럼 미묘하고 복잡한 것입니다.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 구도로 풀어갈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총부리를 서로의 가슴에 겨누고 있으면서도 회담을 하고 협상도 해야 하는 것이 남과 북의 운명인 것입니다.

<경향신문> 사설이 언급한 <조선일보> 과거 사설을 찾아보았습니다. 2014년 10월16일치 ‘천안함 도발 주역 내보낸 北과 대화해야 하는 현실’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천안함 도발 주역 내보낸 北과 대화해야 하는 현실

남북 군 당국이 15일 판문점에서 장성급 회담을 가졌다. 남북 간 장성급 회담이 열린 것은 2007년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군사회담은 지난 7일 북 경비정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침범으로 남북 함정이 사격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진 직후 북측이 황병서 총정치국장 명의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군 당국 간 긴급 접촉을 요구하면서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날 군사회담은 아무런 합의 없이 끝났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다음번 회담 날짜도 잡지 못했다. 북측은 자신들이 자의로 설정한 서해 경비경계선 안으로 남측 함정의 진입 금지를 요구했고,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 남측 언론을 포함한 모든 기관의 일체의 비방 및 중상 중지 등을 주장했다고 한다. 북측의 요구는 우리 측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다. 북이 일방적으로 NLL보다 더 남쪽에 그어놓은 경계선을 지키라는 것은 우리에게 해양(海洋) 주권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억지다. 북측은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무슨 중대한 도발인 양 거듭 문제 삼고 있지만 북한도 최근까지 군부대 등을 동원해 남측으로 선전 전단(삐라)을 뿌려 왔다.

이날 회담에 나온 북측 수석대표는 김영철 국방위 정찰총국장이다. 김은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爆沈) 도발의 주역이다. 우리 입장에서 그는 전범(戰犯)이다. 그런 인물까지 상대해야 하는 것이 남북 회담의 어려움이고 현실이다.

정부는 이날 북측에 오는 30일 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북의 최우선 관심사는 자신들이 ‘최고 존엄(尊嚴)'이라고 떠받드는 ‘김일성-정일-정은' 3대(代)에 대한 비판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북은 올해 초 대남(對南) ‘중대 제안'을 주장할 때부터 대북 전단 문제를 빼놓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이 김씨 왕조의 실체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전단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 노동신문도 이날 똑같은 주장을 폈다.

이런 북한과 마주 앉아 대화하고 합의를 일궈내는 것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대화를 피할 이유도 없다. 긴 호흡으로 남북 대화를 이어 갈 원칙과 분명한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4년 10월16일치 <조선일보> 사설
어떻습니까?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특히 마지막 대목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북한과의 대화에는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대화를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 긴 호흡으로 남북대화를 이어 갈 원칙과 분명한 방향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유효한 제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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