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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8 14:42 수정 : 2018.04.08 14:46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식’이 열린 지난해 11월14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앞에 생일상이 차려져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00
여권 티케이 지역 인사가 글 보내와
“6·13 지방선거 티케이 고립 전략은 위험
다른 지역 석권한다는 생각은 오만한 것
보수야당 성지 된 것은 인물 못 세운 탓”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식’이 열린 지난해 11월14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앞에 생일상이 차려져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현 집권 세력에게 대구·경북, 이른바 티케이(TK)는 참 특이한 지역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가 대구 출신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맡은 김부겸 의원도 대구 출신입니다. 그러나 현 집권세력은 지금까지 큰 선거에서 한 번도 티케이의 지지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티케이는 기득권 세력의 지역 기반이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 티케이 출신들은 군과 행정부, 사법부의 요직을 장악했습니다. 그야말로 ‘티케이 전성시대’였습니다.

티케이는 부산·경남(피케이)에 지역 기반을 가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에 처음으로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이나 서울에 사는 티케이 실력자들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을 ‘잃어버린 15년’이라고 불렀습니다. 티케이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은 ‘돌아온 티케이’의 황금기였습니다.

지난해 5·9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압승을 거뒀지만 티케이 지역에서는 홍준표 후보에게 졌습니다. 이런 결과는 아마도 티케이의 역사성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자유한국당 지지도보다 3배 이상 높게 나옵니다. 그런데 대구·경북만큼은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높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그러다 보니 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티케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슬며시 포기하는 기류가 감지됩니다.

경북 구미시선거관리위원회가 6일 금오산 벚꽃축제장에서 6·13 지방선거 홍보 캠페인을 하고 있다. 지방선거 참여는 민주주의로 가는 꽃길이란 제목의 행사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 참여를 홍보하고 있다. 구미시선거관리위원회 제공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티케이의 환심을 사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김영삼 대통령에게 건의해 감옥에 있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도록 했습니다. 대통령 재임 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대화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박정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았습니다. 티케이는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 문제에 전혀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당선 훨씬 전부터 영호남 갈등의 본질이 중앙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이라는 것을 꿰뚫었습니다. 일찌감치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어 지방분권 운동을 전개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방분권 정신을 계승했습니다. 3월 26일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 “자치와 분권을 강화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고”라는 대목을 추가한 것도 이런 흐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은 쉽게 말해 티케이에 표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티케이라고 우대하지 않겠지만 차별하지도 않고 원칙을 세워 다른 지역과 동등하게 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매우 오랫동안 특혜에 익숙해진 티케이들로서는 이런 대우가 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티케이가 다른 지역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더불어민주당 안에 있는 티케이들은 정치적 처신이 쉽지 않습니다. 티케이 출신 어느 민주당 정치인이 이 문제로 혼자 냉가슴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티케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처사에 대해 혼자 불만을 터뜨리다가 답답한 심경을 글로 정리해서 저에게 전해왔습니다. 티케이 지역 유권자 시각에서 그 나름대로 호소력이 있는 내용이어서 소개합니다.

지난 월요일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예비후보를 대상으로 한 여당의 면접 심사가 있었다. 그런데 승패를 떠나서 티케이 지역에 대한 여당의 태도에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뜨지 않는 후보들만 가지고 ‘하나 마나 뻔한’ 선거를 하려는 것은 무슨 심사인지 모르겠다. ‘부자 몸조심’인지, ‘의도적 무시’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물론, 여당은 ‘티케이에 공들였지만 털끝만큼도 인정받은 게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기초단체장 한번 배출하지 못한 ‘묻지 마 투표’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런 심정을 이해할 법도 하다. ‘어차피 먹을 수도 없고, 잃어도 별로 아까울 게 없다’는 정서도 내심에는 있을 것이다.

그동안 티케이 지역 유권자들은 현 여권 인사들에게서 진정성을 보지 못했다. 어떤 정치인은 총선에서 단 일합만 겨루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렸다. 또 어떤 정치인은 ‘지역의 호소’를 외면한 채 지방선거 불출마 고집을 꺾지 않았다.

피케이 지역이나 다른 지역에 비하면 ‘공들였다’는 주장도 민망한 수준이다. 다른 지역에는 차기대선후보급이나 정권 초실세를 내세우면서 유독 티케이에는 패배에 익숙하고 패배를 예감케 하는 약체 인물만 고집해왔다.

현 집권 세력에게 ‘깊이 내재된 비주류 의식의 발로’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불평불만은 제대로 된 집권여당의 태도가 아니다. 여당에게 티케이는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내버리기도 아까운’ 계륵만도 못한 것인가? 과거 여러 번의 선거에서 지금의 여당에 표를 줬던 지역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티케이 고립’이 여권의 지방선거 전략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티케이의 선거 결과만 동떨어진 모양새, 즉 자유한국당을 딱 티케이에만 고립시키는 것이 여당의 큰 그림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영남 고립’ 전략은 오만할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를 몇십 년 후퇴시키는 매우 악의적인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티케이 이외’ 전 지역을 사실상 석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면, 참으로 오만한 여당이 아닐 수 없다. ‘부자 몸조심’은 결코 공당의 선거 전략일 수 없다. 야당의 지리멸렬로 여당의 승리 전망이 많지만, 그래도 선거는 해 봐야 안다. 어떤 일이든 오만하면 안 되지만, 특히 선거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다.

특정 지역 고립 전략의 시초는 1990년 ‘3당 합당’이라고 할 것이다. 이후 호남 고립은 심화되었고, 총선·대선 등 주요 정치 변곡점마다 영남 대 호남, 또는 호남 대 비호남의 대결이 펼쳐졌다. ‘티케이 고립’ 전략은 서양의 뿌리 깊은 ‘인종주의’처럼 배제와 무시의 ‘지역주의’ 망령을 부활시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우리 정치에서 30년 만에 ‘지역주의’를 부활시키는 것은 노무현의 길이 아니다. 노무현은 단순히 ‘호남 배제’에 저항했던 것이 아니라, ‘지역을 기준으로 한’ 배제와 무시를 타파하고자 열망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끝까지 괴롭혔던 ‘호남 차별론’도 노무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티케이 지역 유권자들도 지역 내 건전한 경쟁이 사라지면 지역의 정치·경제적 발전도 물 건너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야 후보 중에서 고민하는, 제대로 된 선거를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티케이 지역이 ‘보수야당의 성지’처럼 되어 버린 것은 현 집권세력이 그만한 대안 인물을 내세우지 못한 탓도 크다.

티케이는 지금보다 더 대접받을 자격이 있다. 티케이의 역사적·정치적·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후보를 내놓는 것, 상실감·박탈감에 사로잡힌 지역에 여당이 할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여당이 먼저 할 도리를 다할 때, 티케이도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기회를 줄 것이다.

과거 여당의 ‘동진정책’에서는 지역에 대한 애정은 없이 정치공학만 있었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을 통해 티케이를 대한민국 중심에서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고 싶다. 여당의 정치적 상상력이 발휘되기를 바란다. 당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서라면 강제 징발을 배제할 이유도 없다. 결코 어떤 후보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기 바란다.

어떻습니까? 핵심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6·13 선거 전략이 혹시 티케이를 의도적으로 포기하고 자유한국당을 티케이에 고립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전략 참모 중에는 실제로 그런 선거 전략을 구상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도 사실입니다. 저에게 글을 보낸 민주당 티케이 인사는 6·13 선거에서 현 집권세력이 그런 전략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얄팍한 정치공학적 계산으로 티케이 유권자들을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당에는 한 차례 전국 선거의 승패가 중요할 수 있지만, 대통령과 정권 차원에서는 국민통합이 더 크고 중요한 가치입니다. 민주당 티케이 인사의 이런 고언을 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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