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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19 19:02 수정 : 2015.01.19 16:26

토종배추는 개량종에 비해 길이가 서너배쯤 긴 것이 특징이다. 사진은 전남 담양에서 토종배추 종자의 맥을 잇고 있는 향토사학자 이동호씨가 지난해 가을 텃밭에서 수확한 토종배추로 손수 김장을 하고 있는 모습. 이동호씨 제공

[한겨레 ]
향토사학자 이동호씨

“토종배추 직접 보시면 놀랄걸요. 한번 와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는 뭔가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토종배추? 뭐 그런 게 따로 있었나?’ 이런 궁금증에 천리길 마다 않고 차로 전남 담양까지 달려갔다. 주인공은 뜻밖에도 ‘농부’가 아닌 ‘원조 소쇄원 지기’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난 향토사학자 이동호(52)씨였다.

그는 국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토종배추 종자 지킴이’이라고 명함을 내밀었다. 담양군 수북면 경산길 68번지 자택의 50평 남짓한 텃밭에서 한해 200포기 정도 토종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게 예사롭지 않은 일처럼 다가왔다.

키 70~80㎝…개량종의 2~3배
섬유질 많고 매콤한 맛 강해
종자 보급·배추꽃 축제도 했으면
‘원조 소쇄원 지키미’로 더 유명

“지금 우리가 담가 먹는 배추김치는 다 개량종입니다. 1950년대 우장춘 박사에 의해 들여온 것이 현재에 이른 거죠. 그래서 우리 땅의 사람들이 정작 우리 배추의 참맛을 모르고 사는 게지요. 개량종 배추가 진짜인 줄 알고 먹고 있으니까요.”

이씨의 설명은 이랬다. “우선 토종배추는 일반 개량종에 비해 키가 2.5~3배는 크다. 병충해와 기후변화에도 강하다. 그래서 농약이나 비료 없이 자연재배가 가능하다. 수분 함량도 적어 저장성이 매우 강하다. 김치를 담가서 3년까지 먹을 수 있다. 수분이 많아 시간이 지나면 물러져 녹아버리는 개량종에 비해 긴 보존성이 가장 뛰어난 장점이다. 섬유질도 많다. 대신 뻣뻣하다. 개량종에 비해 속은 실하지 않다. 노란 속잎이 없고, 전부 푸른 잎이어서 비타민C와 엽록소가 풍부하다. 배추 특유의 매콤한 맛과 향이 강하다. 갓과 비슷한 매콤한 맛은 항암 성분이다.”

그가 홀로 지키고 있는 토종배추 종자는 원산지가 지중해로, 중국 당나라를 거쳐 신라 때 국내에 들여온 것이란다. 고려 때는 왕실에서 재배했고, 약으로도 쓰였다. 원래 ‘숭 또는 숭채’라 했고, 조선시대 들어와 본격적으로 일반인들에게 재배를 권장했다. 이씨는 “아직도 이렇게 종자가 살아 있는데도 학계에는 공식적으로 멸종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저 역시 종자를 잃을 뻔했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토종배추를 직접 키워 김치를 담가주시다가 어느날 개량종으로 바꾸었어요. 그런데 맛이 없다며 제가 안 먹으니 다시 재배를 시작했어요. 그때 그렇게 정성을 쏟지 않았으면 우리 집안에서도 종자의 대가 끊겼을 겁니다.” 20년 전 어머니로부터 토종배추 재배법을 이어받은 그는 10년 전부터 직접 본격 재배에 나섰다.

이씨는 “전남 나주농업기술원에 문의해봤더니, 담당 연구원이 ‘이런 토종배추 종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굉장히 귀한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우선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고, 씹을수록 맛이 납니다. 특유의 매콤한 맛과 향도 좋고요. 섬유질 많고 뻣뻣하니 구강 강화 차원에서 좋습니다.”

토종배추는 개량종에 비해 줄기가 얇고 가늘어 속이 거의 차지 않는다.
꽃이 핀 상태에서 측정해본 토종배추의 키는 135cm로 껑충하다.

그는 토종배추의 보급 및 확산에 관심이 많지만 조심스럽다고 했다. ‘귀한 것일수록 귀하게 보급’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아직은 저 먹을 양 정도만 소량 재배하고, 계속 씨를 받고 있어요. 대대로 집안에서 그렇게 해왔어요. 억지로 보급하려고는 하지 않았죠. 하지만 정부 차원이나 연구기관에서 좋은 의미로, 국부 창출 차원에서 활용·보급한다면, 그리고 상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적극 나서겠습니다.” 그는 “개량종 배추는 농민들이 로열티를 지불하고 종자를 사온다. 엄청난 돈이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종배추는 키가 훤칠한 게 특징이다. 겨우내 땅기운을 머금은 씨앗이 봄이 되면 절로 자라나는데 꽃이 피면 130~150㎝까지 솟는다. 여름에 씨를 맺으면 그것을 받아서 8월10일께 다시 심으면 90일 뒤인 가을에 김장용으로 수확이 가능하다. 그때 보통 크기는 70~80㎝인데, 비옥한 곳에서는 1m까지 자란다. 먹을 만큼만 캐고 남겨두면 겨울을 나고 봄에 꽃피우기 전에 어린순을 ‘봄동’으로 먹어도 된다.

이씨는 “토종배추 씨는 좁쌀만해서 반말 정도, 즉 10ℓ 정도를 확보하면 수백만평을 심을 수 있다”며 “관상용으로도 유채꽃처럼 보기 좋아 노란 토종배추 꽃축제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의 본업은 ‘한국정자문화진흥원’ 대표로, 문화재 지킴이다. 일찍이 담양의 ‘소쇄원’에서 12년 동안 살며 연구하고 가꾸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전국적 명성을 얻기에 앞서 그 가치를 발굴해냈다. 이후 담양 ‘식영정’을 비롯해 남도 일대 ‘선비문화의 유산’인 정자를 지키는 데 앞장서온 그는 지금은 4년째 창평향교에서 살며 한국학과 한국문화 연구모임과 강연회 등을 하고 있다.

“토종배추 종자 되살리기나 정자 지키기나 제겐 다른 일이 아닙니다. 모두 다 우리 삶과 문화의 뿌리를 지키려는 뜻이니까요.” 담양/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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