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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0 18:50 수정 : 2015.01.19 16:21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19일 한겨레신문사 옥상 하니정원에서 <칼날 위의 평화-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을 써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 ]
참여정부 균형외교 ‘속살’ 기록한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2005년) 9·19 공동성명은 한반도를 넘어서 동북아 전체의 안보지도를 바꾸는 엄청난 합의였다. 아마 이 성명이 제대로 이행되었다면 지금쯤 한반도 평화체제가 한창 건설되어 있고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가 가동되었을 것이다. 또한 남북경제협력이 심화되어 우리는 한반도경제 시대를 열어가며 새로운 도약을 해냈을 것이다.”

참여정부 때 정권 인수위를 거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통일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분야 핵심 측근이요 실세였던 이종석(56·사진) 전 장관이 최근 저서 <칼날 위의 평화-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 비망록>(개마고원 펴냄)에서 한 얘기다. 책을 쓴 2014년 지금 시점에서 한 얘기다.

현실에서는 무망한 역사적 가정을 한번 해보자. 만일 그의 말대로 됐다면 천안함 사건도 연평도 포격사건도 없었을지 모르고, 많은 학생들이 금강산·묘향산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있을지도 모르며, 북에는 개성공단 같은 남북 합작 공업단지들이 여럿 생겨나고, 꽃게잡이가 한창인 경기와 황해도 서해 연안은 남북 자유항행 및 어로 안전해역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쯤 북한을 경유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려는 관광객과 화물들로 서울역과 부산역이 법석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터뷰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9·19성명 엄청난 합의 이행됐다면
동북아 안보지도 바뀌었을 것
전략적 유연성 등 참여정부 실리외교
객관적 사실로 보여주려 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이유들이 많겠지만, 이 전 장관은 9·19 합의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미국 재무부의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 의혹’ 제기를 결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그리고 북의 달러 위조지폐 유통 혐의와 얽힌 방코델타아시아 의혹을 의도적으로 유포했건, 결과적으로 이용했건 그것으로 9·19 합의를 결국 좌절시킨 “강대국의 일방주의”, 특히 “종교적 선악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면서” “김정일을 감정적으로 혐오하고 그를 대화와 협력 상대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를 파탄 요인으로 지목했다. 그것은 2005년 9월로 남북간에 내정했던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까지 무산시켰다. 2000년 6월15일에 이어 2005년 9월에 2차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렸다면 한반도 역사는 또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당연히 많겠지만, 이 전 장관은 지난 4년간 자신의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방대한 자료와 증언들을 준비해 600쪽에 가까운 책에 풀어 놓았다.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무척 궁금해할 만한 내용들이다.

“내 개인적인 얘기들도 있지만, 거의 모두 국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 관한 증언들이다. 7~8할은 이 책에서 처음 공개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께서 했어야 할 얘기들이나, 떠나고 안 계시니 나라도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통’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친중반미’ 딱지 붙이던 이들
박근혜 정부엔 ‘균형외교’ 찬사
통일대박론, 원론 과잉 실행전략 없어

19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이 전 장관은 예전보다 건강해 보였다. “일주일에 두어번은 5킬로미터 이상 뛰고 걷고, 또 서너시간씩 산길도 걷는다.” 장관 퇴임 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고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이기도 한 그는 연구 활동과 강연, 강의, 학술회의 등으로 여전히 바쁘다고 했다.

그는 책을 쓴 이유를 다시 한번 설명했다. “참여정부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수행했던 일들에 대해 그 성공과 실패, 성취와 시행착오, 긍지와 아쉬움을 왜 그렇게 했는지 또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함께 있는 그대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역사적 책무를 느꼈다.”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그는 9·19 합의 이행 무산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인정을 주권 포기라고 보는 ‘오해’, 사실을 왜곡해가면서까지 참여정부를 비난하고 겁박했던 유력 보수언론과 정부 안팎의 기득권세력의 준동 등을 꼽았지만, 그중에서도 정권 초기에 내걸었던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당시 한-미 동맹 파기니 “한국이 무슨 능력이 있어서 미-중 간에 균형자가 된단 말인가?” 따위의 비판들을 쏟아놓고, ‘친중 반미’라는 딱지까지 붙이던 세력들이 7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는 ‘균형외교’를 지지하는 걸 보면 “후안무치하다는 생각과 함께 놀랍고 반갑기도 하다”고 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에 비판적인 국가들과 중국 등의 지지까지 얻게 해준 참여정부의 균형외교 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미국이 주한미군 부분철수까지 연계시키면서 요구한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이 전 장관은 참여정부가 미국이 개입하는 동북아 지역분쟁에 한국이 자동적으로 말려들지 않도록 하는 유보조항을 달아 대만 유사사태 등 미-중 충돌 시에 주한미군기지를 발진기지로 상정하고 있던 미군의 의도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오히려 더 득이 된 면도 있다며 그 현실주의 노선을 평가했다. 한-미 동맹도 “자주적 동맹이냐 (대미)의존적 동맹이냐에 따라 대중국 외교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책을 쓴 또 한 가지 이유는 이렇다. “노 대통령이 자랑스러운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로써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통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부당하게 씌워진 각종 이념적·감정적 비난과 의혹들을 사후에라도 바로잡고 싶었다.”

“당시의 역사를 끄집어내 사실을 왜곡하고 저주하며 흑칠을 해야 존립이 가능한 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라거나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건강한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이 기득권 위에 눌러앉아 호통을 치는 게 꼴 보기 싫었다”는 표현도 썼다.

이 전 장관은 문성근 대통령 특사의 방북, ‘개념계획 5029’를 한미연합사가 주도하는 ‘전쟁용 작전계획 5029’로 바꾸려던 미국의 시도 거부,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 북핵 문제와 연계시켜 남북관계 진전에 활용했던 이라크 파병 등에 얽힌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을 드러내고, (미국의 의도대로) 슬그머니 넘어가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체제,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거부 등에 대한 우려도 털어놓았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에 대해 그는 “통일대박론 등 원론적 의지는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강하나 그것을 현실화할 전략, 하우 투(how to)가 없다”는 걸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았다.

인터뷰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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