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어 제작 전문가인 김준씨가 지난 17일 제작발표회에서 전통 한지를 이용해 직접 제작한 스피커 ‘한지소리’의 대형 평판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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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한지소리’ 개발한 오디오 명장 김준
한지 소리의 가능성 발견해 제작
닥나무 한지로 진동판 감싸니
음 찌그러짐 덜하나 개선 여지 남아
“아직 부족…세계시장 도전하고파”
오디오 박람회 출품에 후원 줄이어 그렇다면 한지소리의 성적은 어땠을까? 한 참석자는 “18인치에서 나오는 스케일감이 크다. 대단히 감명 깊은 소리였다. 한지소리를 듣고 나니 내 스피커는 못 듣겠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듣는 귀들의 수준이 워낙 높다 보니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일부 나왔다. 이날 발표된 ‘한지소리’ 스피커는 두 세트다. 하나는 8인치·9인치 한지스피커 유닛 한발씩과 4인치 독일 작센베르크 트위터(고역 스피커)가 한발 장착된 대형 평판이고, 다른 한조는 18인치 차이스이콘 독일제 빈티지 유닛의 콘지 대신 한지의 콘과 4인치 트위터를 부착해 시험제작한 대형 평판이다. 18인치 한지소리는 지난해 말 빈티지 오디오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비공식 비교청취회 때 외국의 유명 빈티지 스피커와의 ‘배틀’에서도 훨씬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자 김씨는 한지소리의 특성에 대해 “닥나무 한지가 지닌 진동체로서의 장점에다가 필드코일(전자석)이라는 스피커유닛 구동 방식의 장점을 결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의 18인치 한지소리는 직진성이 부족해 소리가 오다가 끊어지는 단점이 있어, 필드코일 방식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사실 한지로 스피커 콘지를 만드는 실험은 김씨가 처음은 아니다. 그는 2년 전 우연히 한 동호인이 만든 한지 스피커가 고장나서 고쳐주는 과정에서 한지소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2학년 축제 때 앰프 제작에 꽂혀 인켈 제품 등 오디오 비교청취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김씨의 오디오 인생에서 최대 전환점은 1990년 독일 뮌헨의 전자쇼에서 우연히 유명 빈티지 오디오기기 제작업체인 ‘마이학’의 앰프 설계 마이스터(장인)를 만난 것이다. 당시 70대 후반이었던 그는 팩스 강의를 통해 한국인 젊은 제자의 질문에 꼭꼭 집어서 알기 쉽게 가르쳐주고, 98년 죽기 1년 전에는 진공관 앰프의 음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각종 트랜스포머 400여조 등 부품을 헐값에 넘겨주기도 했다. 김씨는 이때 얻은 지식과 부품으로 빈티지 오디오 앰프를 많이 만들어 독일 계통 앰프 제작의 대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앰프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한 스피커 제작이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스피커는 음악을 듣는 귀가 없으면 만들기 힘들죠. 음악적 소양과 음감이 없으면 좋은 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주파수 응답 특성 등 물리적 수치 같은 건 단지 참고사항일 뿐, 가슴에 와닿는 소리를 찾아내야 하니까요.” 서울 인현동의 사무실에서 온종일 좋아하는 음악 소리에 묻혀 지내는 요즘이지만 그의 삶에는 골곡이 적지 않았다. 84년 대우전자 중앙연구소 오디오개발부에서 4년간 재직하다 친지의 권유로 모터개발회사로 옮긴 그는 경력을 쌓은 뒤 직접 모터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20년여 동안 두번이나 “쫄딱 망했”던 것이다. 오디오란 본디 개인의 취향이 강한 영역인데다 외국 유명 기기에 대한 선호의식이 강한 우리의 풍토에서 국산 브랜드를 내놓는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한지소리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한지소리의 사업화는 쉽지 않지만 세계시장에 먼저 도전하고 싶다”며 “일단 후원자들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 조짐이 좋다”고 말했다. 실제 한 후원자는 한지소리의 가능성을 믿고 29~3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2014 국제 하이엔드 오디오쇼’에 한지소리를 출품하는 데 드는 비용 일체를 지원하는가 하면, ‘한지소리’를 새긴 전각을 만들어준 동호인, 스태프들이 입을 유니폼 티셔츠를 제공하고 자원자, 행사진행 도우미를 자청하는 동호인들도 줄을 잇고 있다. 글·사진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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